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③ 전남 완도군 이재훈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③ 전남 완도군 이재훈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5.06.29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산도 전복 양식의 젊은 엔진


귀어 전 거주지역 : 전남 여수
귀어지 : 전남 완도군
귀어 전 직업 : 대학생
귀어 결심동기 : 부친 건강악화·가업승계
귀어연도 : 2004년
나이 : 30세
귀어 초기자금 : 없음
연간수익 : 10억 원
사업규모 : (보유어선) 10톤 1대 / 1.5톤 선외기 1대
                 (양식장) 전복 가두리 1,000칸
                               전복종묘배양장 1개소(6,611㎡)

▲ 전남 완도군 이재훈 씨 <자료협조=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20살 청년, 가업을 짊어지고 전복 양식에 뛰어들다

여수대학교 양식과에 재학중이던 20살 청년 이재훈 씨의 귀어는 갑작스러웠지만, 담담한 선택이었다. 전복 양식을 하던 부모님을 보며, “내가 이 일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온 그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아버지의 대장암 수술이라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고향인 청산도에 내려가게 됐다.

이재훈 씨는 “양식장을 돌볼 사람도 없었지만, 아버지 건강이 가장 염려됐다”며 “선택의 순간, 평생 가두리에서 사시던 아버지를 이어 양식장 일을 직접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재훈 씨의 아버지는 현재 (사)한국전복산업연합회 회장으로 전복종묘 생산과 국내 가두리 양식의 선두주자로 불린다. 1982년 청산도로 이주해 수산양식의 불모지와 다름없던 지역에서 해조류(톳)양식을 2005년에는 전복 종묘생산 기술을 도입했으며, 많은 지역 어업인들에게 양식 기술을 전파하고 우량종묘생산 보급 등에 앞장서 왔다.

그런 아버지는 이재훈 씨의 엄한 스승이 됐다. 그는 “고향으로 귀어를 한 뒤 무조건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며 “양식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10년 경력의 양식인이자 어촌의 젊은 엔진

이른 나이에 귀어한 이재훈 씨는 이제 10년 경력의 어엿한 양식인이다. 그는 “10년 동안 양식을 해왔지만 아직 아버지께 꾸지람을 듣기도 한다”며 “나만의 노하우를 쌓아가기 위해 끝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씨는 전복 종묘 생산과 더불어 가두리 양식을 병행하고 있다. 귀어를 시작했을 때 보다 종묘생산장의 규모는 2배 이상, 가두리양식장 규모는 3배 가량 늘어났다. 전남해양수산과학원 완도지원으로부터 어업인 후계자금을 비롯해 영어자금 등 약 2억 4,000만원을 지원받아 시설에 투자하기도 했다.

이재훈 씨는 “2012년에는 태풍 볼라벤의 피해로 전복종묘의 절반을 읽고 약 1억 5,000만원의 손해를 조기도 했다”며 “아버지라는 버팀목이 있기도 했으나, 이제는 전복 양식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어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그는 이제 완연한 바다 사람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청산도에 한 사람의 양식인으로 마을 양식장을 종횡무진한 덕에 어촌계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 그는 많은 귀어인들의 겪는 애로 사항 중 하나인, 어촌계 가입에 대해 “5년 이상 거주하며 어업을 행한 경우 등 동네마다 어촌계 방법이 상이한데 조건만 갖춘다면 어려움은 크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며 “다만 예를 들어 가두리 양식과 같은 경우 이미 양식을 하고 계시는 분이 많아 자리가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지고 계신 자리를 사서 해야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기본 시설을 갖추는 것만 해도 최소 3억에서 4억원이 들고 배 구입에도 1억 5,000만원에서 2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정착을 위한 초기자금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이 씨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지원하는 어업인 후계자 및 귀어인을 위한 자금 지원은 귀어인들의 어촌 정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제 그는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하고 양식장 전복의 폐사율을 낮춰, 약간의 편차는 있으나 한 해 약 250톤의 전복을 생산하며 연 1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 20살의 어린나이에 귀어한 이재훈 씨는 이제 10년 경력의 양식인으로, '청산도 전복'의 브랜드화를 꿈꾸는 어촌의 젊은 에너지로 자리잡았다.

어촌 생활의 버팀목이 된 아내와 세 아이

이 씨에게 귀어 정착에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묻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일찍 아내를 만나 결혼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귀어를 시작하며 이른 나이에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삼십대 초반의 나이이지만 이 씨는 벌써 9살, 7살, 3살 세 아이를 둔 아버지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다. 생활이 변하고 어려울 때 결혼을 함으로써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이재훈 씨는 말했다.

그러나 젊은 어업인이 어촌에 살아가는 데는 많은 불편이 따른다. 이 씨는 “청산면에는 30대 중반까지 젊은 인력이 50~60명 정도로 많은 편인데, 문화생활을 즐길 곳이 없어 한달에 한두번은 꼭 목포나 광주 등 주변 대도시로 나가 영화를 보거나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을 키우는데는 병원과 교육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꼽았다.

이재훈 씨는 “완도군에는 아이들을 위한 학원 등의 교육시설은 물론이고, 소아과도 없다”며 “교육시설이 열악하다보니 대부분의 또래 부부들은 아이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목포, 광주 등으로 나가서 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어업의 매력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큰 장점으로 “일을 유동적으로 할 수 있어, 회사생활을 하는 것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점”을 꼽으며 “월차 등에 구애받지 않고 낚시 등 취미 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청산도 전복의 브랜드화를 위해 달린다

이재훈 씨는 귀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그는 “젊은 귀어인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금방 포기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이 씨는 “바다는 위험한 곳이고, 양식 노하우를 체득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요즘은 많은 부분 기계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그 기계도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재훈 씨는 “모든 일이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이, 노하우가 필요한 양식업은 특히 시간을 가지고 차근차근 해나간다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제 이 씨는 다음 스텝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2년 정도 전부터 함께 일을 시작한 그의 형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와 더불어 서울에 매장을 마련해 직접 판로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그는 “전복 판매가 잘 되지 않다보니 최근에는 판로를 확보하는 것이 주요 관심사”라며 “현재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사이트(www.청정수산.com)을 통한 온라인 판매와 동시에 서울에 매장을 열어 도소매를 병행하는 방향을 계획중이다”고 밝혔다.

청산도의 젊은 양식인으로 보다 큰 포부도 있다. 이 씨는 “젊은 양식인들 사이에는 청산도 전복의 브랜드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어느 지역보다 청정한 바다에서 자란 우리 전복의 우수한 품질을 앞세워 ‘청산도 전복’을 명품 수산물로 만들고 싶다”고 희망을 보였다. 그의 젊은 에너지가 지역 어촌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해 본다.

<자료협조=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