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협을 농협 기준으로 재단해선 안된다
수협을 농협 기준으로 재단해선 안된다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5.06.2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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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준 장관을 실세장관으로 만드는 것은 수산인의 몫


▲ 김성욱 본지 발행인
위기 탈출-전문가 그룹, 수산인들의 솔선수범에 달렸다

문득 고려대 유관희교수가 오래 전에 쓴 칼럼의 제목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았다. 「헛걱정」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인데, 그는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보통사람들이 항상 머릿속에 짊어지고 사는 걱정거리를 재미있게 분석했다.

우리가 늘 하는 걱정거리 가운데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것이고, 30%는 지나간 일에 대한 것, 12%는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걱정, 그리고 10%는 아직 걸리지도 않은 질병에 대한 걱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 가운데 92%는 걱정한다고 해서 그 상황이 달라질 수 없는 것들이라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8%의 걱정거리 가운데서도 4%는 인간이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진정으로 걱정할 만한 일은 겨우 4%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후회하는 일에 낭비하고 있으며 하나마나한 걱정으로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 전체를 불신과 불안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Mers)라는 질병이 우리 사회를 공포와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호흡기 증후군 사스나 일반 독감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감염속도가 빠르고, 사망률이 40%에 달한다는 소문에 온 나라가 마비상태에 빠져들었다. 공포의 괴담이 인터넷과 SNS의 전파를 타고 대한민국 땅덩어리를 순식간에 점령해 버렸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아니라, 공포바이러스 때문에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국민경제마저 파탄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는 자조(自嘲)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나온다. 대한민국은 공포공동체라는 비아냥에 수치심마저 느끼게 된다.

제3의 언론으로 떠오른 SNS의 해악인지, 우리 국민들의 경박함 때문인지, 참으로 혼란스럽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좌파 세력들의 선동에 이끌려 광화문 네거리를 뒤덮었던 촛불시위가 우리 사회에 끼친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우리 국민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 때도 그랬고,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누출사건 때도 그랬고, 세월호 침몰사건 때도 지금과 똑같은 사회적 갈등과 공포의 메카니즘이 그대로 작동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헛걱정」은 공포를 만들고, 국민들의 공포는 인터넷과 SNS를 타고 사회불안으로 확대재생산 된다. 거기에는 이념의 깃발로 무장한 정치세력들이 반드시 끼어 들게 마련이다. 불신-불안-공포-사회적혼란-경기침체-서민의 고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통감하게 된다. 사회적 불안과 공포는 서민들의 생활에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 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한다.

과학자나 의사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풀어야 할 문제를 이념선동가나 SNS누리꾼들의 먹잇감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2년 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노르웨이 수산물위원회의 헨릭 엔더슨 이사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오염수 누출로 인하여, 아무 관련도 없는 우리나라 수산업계가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과학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인데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고 정치인들만 보이는 것이 문제‘라고 신랄하게 꼬집었다.

과학자들이 먼저 수산물의 방사능 오염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국민을 설득한 다음 정치인들은 마지막으로 나와 과학자들의 제안에 따라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투명한 행정, 사실(fact)에 기반한 자료를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라고 충고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느닷없이 닥친 메르스 공포로 또다시 수산물 소비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는 소식에 허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이제는 양심적인 시민들이 나서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수산인들의 각성과 단합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때다.

수협 구조개혁, 경제논리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

수협법 개정안이 초미(焦眉)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IMF사태 때 수협에 지원된 공적자금의 족쇄를 끊어내지 못한 고통이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월급을 삭감하면서 까지 수협회생에 고군분투하고 있는 임직원들의 헌신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진다.

농협법 개정 당시에 격렬하게 논의되었던, 신·경분리(信經分離)에 따른 재정지원 등의 문제점들이 수협법 개정안에 그대로 원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어업인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신용사업과 지도·경제 사업을 분리하는 데 따른 총소요경비 2조원 가운데 예금보험공사가 관리하는 공적자금 1조 1,581억원을 제외한 약 9,000억원의 소요자금을 어떻게 조달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의 쟁점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이 가운데 이차보전(利差補塡)에 지원되는 6,000억원에 대해 연(年) 발생이자 150억원을 5년간, 750억원까지 정부 재정에서 부담하겠다는 정부안(案)에 대해 수협은 최소한도 14년간 2,000억원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그 귀추가 주목된다.

뿐만 아니라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겠다는 정부안도 수협의 정체성과 현재의 실정을 도외시한 탁상공론이라는 업계의 강력한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밖에도 감사위원 인사추진위원회 인적구성문제, 은행장 추천위원회 구성인원 비율, 수협은행 이사회 구성인원 배분문제에 있어서 외부인사의 비율을 높임으로써 수협의 정체성과 자율성이 심각하게 침체될 수 있다는 반발이 거세게 표출되고 있어서 정부의 합리적 결단이 요구된다.

이 밖에도 중앙회장의 연임허용 문제를 비롯하여 조합장의 비상임화 문제라든지, 상임이사의 추천방식 등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조합장들의 건의가 쇄도하고 있지만, 과연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정부 당국이 수협조직을 농협조직과는 완전히 다른 특수한 협동조합으로 인정하느냐 하는데 그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협의 정체성이 무엇이며, 수산업이 갖는 식량산업으로서 가치가 어떠하며, 수협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을 지금 이대로 방치했을 경우 경제외적인 충격과 정치·사회적인 문제점, 그리고 수산업이 농업과는 달리 국가안보와 외교적 측면에서 갖는 막중한 비중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수협에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해수부장관이 아무리 현정권의 실세장관이라고 하더라도 수협과 수산업의 특수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국회는 물론 국무회의나 경제장관회의에서 어업인의 요구를 끝까지 관철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유기준 장관을 실세장관으로 만드는 것은 수협을 비롯한 전체 수산인들의 책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도 수협조직을 농협조직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우(愚)를 절대로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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