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極), 계획조선 사업과 어선 감축사업
극(?)과 극(極), 계획조선 사업과 어선 감축사업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09.10.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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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발전 위한 특단의 조치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우리 배는 우리 조선소가 만들고, 우리 화물은 우리 배로 운송하자’-. 이 같은 고무적인 구호가 요란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 중반께 일로, 그 구호의 밑바탕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한국의 조선산업(造船産業)을 육성·부흥시키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 담긴 특단의 조치였다.

그것은 정부가 잇달아 제정·공포한 각종 법규에서도 명료하게 나타난다. 1974년, 정부는 해운업과 조선업 및 그와 관련한 각급 산업을 연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해마다 실수요자를 선정하여 그들에게 건조자금을 대주는 한편, 배는 반드시 국내 조선소에서 건조하도록 하는 이른바 ‘해운사업 육성을 위한 방안’을 만든 데 이어, 2년 후인 76년에는 앞서의 법을 좀 더 확대시킨 ‘해운·조선 종합 육성방안’과 관련한 법(法)을 제정하였으며, 다시 2년 후인 78년에는 본격 ‘해운진흥법(海運振興法)’이 제정·공포됨으로써 드디어 ‘계획조선 사업’이 태동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전국의 도크에서는 밤낮 없이 용접 불꽃이 튀어 오르는 조선사업의 황금기가 개막되었던 것이다.

그 법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배는 거의가 단기간에 건조가 가능한 소형 어선(漁船)에 집중되었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때에는 어선 척수가 당초의 5만여 척에서 그 배인 10만여 척 이상으로 증가하였을 만큼 조선산업은 가히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척수만 증가한 게 아니라, 성능 면에서도 비약적 향상이 이루어져 이전 등록선의 50% 가까이나 되던 무동력선이나 소형 발동선은 자취를 감춘 반면, 이제는 거의가 디젤엔진을 장착한 현대식 고기잡이배로 대체되면서 한국의 수산업은 한순간에 수산강국(水産强國)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그 덕분에 국내의 중소 조선소 역시 단기간에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음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거기에 문제가 있었다. 한반도의 제한된 연근해 어장 면적에 비해 어선 척수가 너무 과다하다보니 전국의 항·포구는 배를 정박시킬 부두가 턱없이 부족하여 귀항한 배가 고기를 풀려면 며칠씩이나 기다려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고, 거기에 고기 씨마저 말라버려 출어를 해도 기름값조차 건지지 못 하는 배가 수두룩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어자원(魚資源) 고갈이야말로 한국 수산업을 하루아침에 쇄락의 길로 몰아가는 가장 최악의 현안이었다. 당황한 정부는 그 문제 해결을 위해 곧 팔을 걷고 나섰는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어족이 산란(産卵)하는 기간에는 고기잡이를 금지하는 금어기(禁漁期)를 확대시킨 데 이어, 망목(網目)의 크기도 제한함으로써 치어(稚魚)의 보호에 나섰으나 바다를 가득 메운 배들은 이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난획(亂獲)과 남획(濫獲)을 일삼으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기만 하였다.

그 결과 불법조업(不法操業)으로 걸려들어 거액의 벌금을 물거나 출금(出漁禁止) 조치를 당한 배들이 늘어나면서 전국의 항?포구는 그야말로 정박선(碇泊船)으로 만원을 이루는 지옥의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만 것이었다.

어자원 고갈은 당장 어획량(漁獲量) 급감이라는 엄청난 불이익으로 돌아왔다. 가령 계획조선 사업이 시작되던 1990년 초까지만 해도 연간 어획량이 150만 톤을 상회하던 것이 불과 몇 년 사이에 30%나 감소한 100만 톤 내외로 곤두박질친 게 그 증거인 것이다.

발상의 전환- 어선감척(漁船 減隻)사업

상황이 그 지경에 이르자 당국은 마냥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게 되었다. 사태를 분석해 보면 그것은 뭐니뭐니해도 정부가 계획조선 사업에 너무 과도하게 욕심을 부린 나머지 제한된 어장 면적에 비해 어선이 너무 많다는 뒤늦은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고, 그 악화된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서는 당장 어선 척수를 줄이는 게 최상의 방법이라는 결론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정부는 2005년부터 ‘어선 감척사업(減隻事業)’이라는 희대의 정책을 내세워 대대적인 ‘배 부수기’에 나섰는데, 문제는 배를 건조하는 만큼이나 배를 부수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이었다. 배야 으그러뜨린 다음 고철로 넘기거나 불쏘시개로 쓰면 그만이지만, 선주들에게는 어선 감정가에다 폐업 보전비를 포함한 적절한 보상을 해주어야 했으므로 결국 감척 대상이 된 선주에게는 선가의 두세 배나 되는 엄청난 보상비가 주어지는 결과를 낳기에 이른 것이었다.

그 보상비가 얼마냐 하는 것은 제주도에서의 사례 하나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부의 감척사업 시행을 위임받은 제주시는 향후 5개년의 기간을 설정하여 시작연도인 2005년도에는 17억 원을 투입하여 33척을 감척시켰으며, 06년도에는 40억 원을 들여 95척을, 07년도에는 48억 원을 들여 124척을, 08년도에는 57억 원으로 126척을, 그리고 마지막해인 올해는 62억 원을 투입하여 107척의 배를 선박등록부 원장에서 삭제케 함으로써 그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행되었다고 보고하고 있는 참인 것이다.

경남 통영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사업 첫 연도인 2005년에는 597척을, 06년도에는 112척을, 07년도에는 157척을, 그리고 지난해인 08년도에는 292척을 감척하여 도합 1,000척도 넘는 고기잡이배가 사라지게 하였으며, 특히 마지막 시행연도인 올해는 통영시가 더욱 적극적인 설명회를 가진 끝에 차라리 조업을 포기하고 이참에 보상금이나 두둑이 받다먹겠다고 나선 선주가 무려 500명도 넘을 만큼 대성황을 이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산 문제 때문에(총 100억 원) 모든 신청자를 다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 중 160여 척에게만 기회가 돌아갔다고 통영시는 안타까워하면서, 정부에 대하여는 ‘이 사업을 향후 3년 더 연장해 달라’는 식으로 건의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하지만 그 사업의 이면을 보면 참으로 아픈 상처도 많다. 사업 초기 적에는 호응도가 낮아 정부는 대상 선박을 선정하면서 몇 가지 까다로운 규제를 완화시켰는데, 그러다보니 건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멀쩡한 배까지 감척을 자청하여 고철로 둔갑하면서 국민의 혈세가 줄줄이 새나가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전국적으로 어선 척수는 매년 크게 감소하기 시작하여, 사업을 시작하기 전인 2004년에는 총 9만1,608척(동력선 8만7,203척/무동력선 4,405척)이던 어선 척수가 2005년 연말에는 9만736척으로 1천여 척이 줄어든 데 이어, 06년도에는 8만6,113척으로 보유선 척수가 줄어들면서 매년 5%씩의 고기잡이배가 고철이나 불쏘시개로 전락하는 비운에 처하고 만 것이었다. 그 같은 정부의 5개년에 걸친 의욕적인 감척사업 추진으로 전국의 고기잡이배는 도합 30% 이상 감축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마운 것은 감척사업의 시행으로 어자원의 회복세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상승한 점이다. 예를 들어 제주시 경우, 감척사업을 시행한 이듬해인 2006년에는 2만2,500여 톤의 어획으로 945억 원의 위판고를 달성하였고, 07년에는 2만5,000톤의 어획으로 1,080억 원을, 그리고 08년도에는 2만7,800톤을 잡아 1,210억 원의 위판실적을 올림으로써 어선 척수감축이 어자원 회복에도 기여하였을 뿐 아니라, 연?근해 수산업의 경쟁력 향상에도 힘을 실어주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감척사업의 양지(陽地)와 음지(陰地)

하지만 양지(陽地)가 있으면 음지(陰地)도 있는 법.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한 가지 목적달성을 위한 사업의 추진이야말로 그 이면에는 허다한 관련 사업이 된서리를 맞게 된다는 사실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아킬레스 건(腱)’인 것이다.

우선 정부의 대대적인 감척사업으로 된서리를 맞은 업종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 첫째가 전국에 산재한 중소 조선소와 각급 선박 전문 수리업소 및 어구 등 각종 선용품을 취급하는 선구점(船具店)들이었다. 특히 전국적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부산공동어시장과 자갈치 및 영도에는 수천 개의 관련 업종이 존재하면서 어선을 상대로 각종 선용품을 공급하거나 수리를 해주면서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왔는데, 단기간에 어선 척수가 반만큼이나 줄어들자 그만 할일이 없어져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하루아침에 폐업의 위기에 몰리고 만 게 그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어느 영세 선박전기 사업자는 정부의 감척사업이야말로 허다한 연관 업종은 제외한 채 그 상대를 오로지 선주 하나만 생각한 단견(短見)에서 비롯된 것이라 지적하면서, 청와대에다 ‘우리에게도 그 잘난 보상금을 나누어 달라’고 탄원하는 희귀한 사례(조선일보 9월 1일자 <편집자에게>)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답이야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청와대는 ‘예산이 없다’는 단 한 마디로 그 청원을 아주 깨끗하게 거절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거기에 정부의 감척사업을 계기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행운을 거머쥔 결코 칭찬하기 어려운 일부 선주도 없지 않았다. 우선 △경락 또는 매입하였으나 전혀 조업 실적이 없는 자 △최근 10년 이내에 구조조정 사업자로 선정되었다가 재차 사업에 참가한 자 △사업을 포기하고 5년이 경과되지 않은 자 △다른 법령에 의거하여 이미 보상을 받은 자 등은 당초부터 감척 대상에서 제외하였는데, 가령 금융기관으로부터 과도한 융자를 받아 그 빚이 선가를 훨씬 초과하여 배가 압류된 상황에 처하였으면서도 감척 대상으로 선정되면 빚을 갚고도 남을 만큼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받는 사례도 비일비재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새나간 돈이 무려 192억 원이나 되었다고 한다.

수산업은 국민 식생활과 직접 관련된 1차산업으로, 단순히 경제논리로만 재단할 수 없는 국가적 기본산업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선진 여타 나라에서도 수산업을 보호?육성하고 경쟁력 향상을 위해 조세를 감면하거나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선박이야말로 평시에는 생산성을 유발하면서, 유사시에는 군수품을 운송하는 등 보조 업무의 수행도 가능한 전략적 도구가 아닌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침은 오히려 모자람만 못 하나는 뜻이다. 당초의 계획조선 사업이 아무리 조선산업 부흥을 위한 원대한 뜻에서 출발한 것이라지만, 어느 정도 선에서 그쳤으면 어땠을까. 도대체 어선 척수가 늘어나면 배들은 당장 경쟁적이 되면서 그 여파로 고기 씨가 마른다는 사실을 전혀 헤아리지 못 하였단 말인가. 또 설령 감축사업이 불가피하였다 하더라도 그 아까운 선박을 마구잡이로 폐선처리만 할 게 아니라, 가령 아직도 미개발 처지인 다른 저개발국에다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해주는 방법은 또 어땠을까.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한국의 해양수산정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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