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① 경남 남해군 이동형 씨
새로운 기회, 귀어 이야기 ① 경남 남해군 이동형 씨
  • 장은희 기자
  • 승인 2015.05.06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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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프로그래머에서 귀어인의 멘토로 자리잡은 남해군 이동형 씨

 

귀어 전 거주지역 : 서울
귀어지 : 경남 남해
귀어 전 직업 : 컴퓨터 프로그래머
귀어 결심동기 : 어촌생활 동경
귀어연도 : 1995년
나이 : 52세
귀어 초기자금 : 6~700만원
연간수익 : 6,000만원
사업규모 :
(보유어선) 3.28톤 / 0.44톤 어선 각 1대

▲ 경남 남해군 이동형 씨(좌측) <자료제공=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바다에 대한 동경만으로 시작한 귀어

귀어라는 단어 조차 생경하게 느껴지던 20여년 전, 바다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으로 연고도 없던 어촌마을에서 배를 타기 시작해 이제는 귀어인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경남 남해군에서 어선 어업을 하고 있는 이동형 씨이다.

이동형 씨가 귀어를 한 것은 1995년으로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있던 때였다. 전산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직업으로 하던 이동형 씨는 당시 전산학이 과도기를 맞았고, 사회생활의 어려움까지 겹쳐 직장생활을 관두게 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새로 산 집까지 빚으로 잃은 그에게 삶은 고난의 연속일 뿐이었다.

상당수의 귀어인들이 어촌이 고향이거나, 연고가 있는 곳에 자리잡는 데에 반해 그는 내륙지방 출신으로 막연한 바다에 대한 동경만을 품고 귀어를 결심하게 된다.

이동형 씨는 “바다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며 “귀어를 결심한 때는 30대의 젊은 나이였고, 그 젊은 용기만으로 무작정 남해에 가서 살아보자”고 마음먹게 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좋은 직업을 포기하고 바닷가에 가서 살겠다는 결심은 주변에서 보기에 당연하게도 우려스러운 일이었다. 이동형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어업을 하는 것 보다는 막노동이든 택시기사를 하든 다른 시작을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이 씨를 회유하려 했으나,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연고도 없는 남해에서 정치망 어선에 오르다

최근에는 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지자체나 관련 단체 등에서 귀어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귀어인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당시에는 귀어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더욱이 이동형 씨는 어촌에 연고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어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동형 씨는 “당시에 천리안에 수협에서 전국 어촌 계장 연락처를 공개해 놓았는데, 이것을 보고 남해군 상주면 빈영배 계장에게 배를 타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그 전화를 계기로 이 씨는 빈 계장의 소개를 받아 정치망어선에 취업해 귀어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거의 1년 동안 실업 상태였던 그의 곁에서 묵묵히 3남매를 키워준 아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이동형 씨는 마음을 다 잡고 “먼저 내려가 자리를 잡고 있을테니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라”했다.

그렇게 이동형 씨는 두달 뒤 내려온 아내와 함께 100~200만원의 월급에 월세 10만원 짜리 빈집에 자리잡게 됐다.

▲ <자료제공=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귀어 4년차, 과감한 투자로 성장의 발판 마련

자금력도 정보도 없이 시작한 귀어생활은 많은 시행착오를 담보로 했고, 어촌의 일원이 되기까지 4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동형 씨는 “지원도, 멘토도 없이 어촌에 적응하기 까지, 여러방면에서 어려움에 부딪혔다”며 “특히 초반에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기 힘들었던 이유는 어촌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이었다”고 말했다.

“어촌의 생활과 도시의 생활의 차이점 뿐만 아니라, 이미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분들은 어업을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며 물려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귀어를 통해 도시에서 어촌으로 옮겨와 새롭게 시작하는 어업의 개념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라는 설명이다.

교육 지원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이 어업의 기초부터 배워나가고 체계적으로 운용해 나가기까지의 과정도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이동형 씨가 본격적으로 어업을 시작한 것은 귀어 후 1년 동안 정치망어선을 타며 모은 돈으로 600~700만원짜리 1.7톤의 작은 목선을 장만하면서 부터이다. 그러나 그가 1년 여 어선에서 경험한 것으로는 제대로된 연안어업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낙지든 도다리든 물메기든 보이는 대로 잡으며 열심히 했지만, 벌이는 많지 않았고 겨우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렇게 연안어업을 4년간 이어오던 그는 어로활동에 체계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동형 씨는 우선 수익성이 좋고 작업효율이 좋은 것들을 골라서 하기로 하고, 계절별로 물메기, 낙지, 게, 서대, 조기 같은 구체적인 어종을 선택했다. 또 해당 어종에 맞는 어구를 정해 새로운 모습으로 배에 올라탔다.

이 씨의 계획은 적중했고 그 해 3,000만원의 소득을 올렸으나, 수작업 위주의 작업을 이어온 탓에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낄 정도의 육체적인 부담을 감당해야했다.

또 다른 변화가 필요했다. 그는 그 해결책으로 250만원을 들여 자망 양망기를 설치하고, 330만원을 투자해 어군탐지기와 위치를 알려주는 플로터를 설치하며 다시 한단계 나아간다. 이동형 씨는 “당시에는 큰 돈을 투자하는데에 대한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더 빨리 결정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 도와주는 이 없이 '바다에 대한 동경' 만으로 시작한 귀어. 맨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겨온 이동형 씨는 "바다는 노력한 만큼 돌려주는 곳"이라며 귀어 희망자들에게 용기를 건넨다. <자료제공=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귀어학교를 운영하는 귀어 멘토가 되다

귀어생활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난 해에, 이동형 씨는 보다 효율적인 어업을 위해 작은 목선을 FRP어선으로 교체한다. 이후에는 소득도 6,000만원 정도로 높아지고 작업효율도 개선돼 생활도 좋아졌다.

그는 “힘이 드는 날도 있지만 즐거운 날이 더 많아졌으니 여기에 만족한다”며 “바다는 노력한 만큼 대가를 돌려주는 곳”이라고 귀어에 만족을 표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 아는 이도 하나 없는 어촌에서 어업을 시작한 이동형 씨는 계속해서 벽을 마주하며 역경을 견뎌왔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 바다를 배워왔다.

이 씨는 작은 귀어학교를 만들어 그와 같이 귀어를 통한 새로운 출발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있다. 작은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이 학교에는 교사부터 버스기사까지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찾고 있으며, 이동형 씨는 자신이 쌓은 노하우와 귀어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귀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지원은 현실성 있는 교육을 포함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라며 “귀농의 경우 특성화된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운영되고 있으나, 귀어의 경우 개인과 지역에 따른 맞춤형 교육이 부족하다”고 귀어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귀어를 희망자들의 대부분이 4~50대인데, 귀어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해 막연히 바다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어느덧 귀어 20년차에 이동형 씨는 귀어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귀어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 완전히 다르다”며 “새로운 출발을 꿈꾼다면 무엇보다 용기와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을 전했다.

<자료협조=국립수산과학원 귀어귀촌종합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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