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실’인가, ‘능력’인가
‘행실’인가, ‘능력’인가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5.05.04 16: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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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산을 뽑는 용력을 지닌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차지한 한(漢)나라 유방에게는 많은 영웅이 함께 했습니다. 한신과 장량, 소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영웅 중에 진평(陳平)이라는 인물도 있었습니다. 진평은 지모(智謀) 덩어리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진평이 항우의 진을 도망쳐 나올 때 일입니다.

강을 건너는데 뱃사공이 진평의 용모를 보고, 미장부가 홀로 가는 것을 보니 금은보화를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진평을 죽이려 했습니다. 진평은 용모가 출중했던 모양입니다. 이를 눈치 챈 진평은 배 뒤편으로 가 태연히 옷을 모두 벗어버렸습니다. 벌거벗은 채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것을 보여주자 사공은 그를 죽이는 것을 그만두었고, 진평은 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항우로부터 중용되지 않자 탈출해 온 진평은 위무지(魏無知)라는 사람의 소개로 한왕(漢王) 유방(劉邦)을 알현하게 되었습니다. 유방은 진평과 이야기를 해 보고 그 비범함을 인정하여 즉각 도위(都尉)라는 벼슬을 주었습니다. 도위는 군사를 감독하는 자리입니다. 진평은 왕과 같이 수레에 함께 타고 군을 감독하고 다녔습니다. 초나라 항우로부터의 도망객이 하루아침에 자신들을 감독하는 직책에 이르자 한나라 장수들은 불만을 가졌습니다.

그러자 주발과 관영 등 측근 장수가 유방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진평은 확실히 미남자입니다만 비유해서 말하자면 관(冠)의 장식과 같습니다. 외견만 번지르르 할 뿐, 아직 그 속은 알 수 없어 수상쩍습니다. 소문을 듣건대 예전에 형(兄) 집에 있을 때 형수와 밀통했다고 합니다. 형 집을 나와 위나라에 있을 때 중용되지 않았고, 다시 초나라 항우에게 달려갔으나 거기서도 중용되지 않자 우리 한(漢)으로 온 것입니다. 이번에 대왕께서는 그에게 군(軍)의 감독을 명하셨는데 그는 여러 장수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생각을 다시해 주십시오.”

한왕 유방은 진평을 소개한 위무지를 불러 이에 대해 물었습니다.
“진평이 형수와 밀통했다는데 알고 있었는가?” 위무지가 대답합니다.
“예, 저도 그런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러나 확인은 못했습니다.”
“진평이 군중에서 뇌물을 받았다는데?”
“그건 사실일 것입니다. 그는 지금 가세가 빈궁하니까요.”
“그러나 대왕, 주발 등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진평의 ‘행실’이지만, 제가 추천한 것은 그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행실이 고결하더라도 그것이 현재 우리 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부디 그걸 헤아려 주십시오.”

유방은 옳은 말이라 생각하여 되레 진평을 호군중위(護軍中尉)로 승진시켜 모든 장수들을 감독케 하였습니다. 그러자 장수들의 불만은 딱 그쳤습니다. 진평은 이후 중요한 역할을 하여 유방의 천하통일은 물론, 유방 사후의 반란 진압에도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총리가 불미스러운 의심에다 거짓말 의혹을 받고 있던 중 사의를 표명하였습니다. 그 사의 수용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됐으며, 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보도입니다. 어렵사리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인준절차를 밟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라의 형세가 위기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고사(故事)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공자(孔子)의 손자로 자사(子思)란 인물이 있었습니다. 자사는 전국시대에 위(衛)나라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자사가 위(衛)의 군주에게 진언했습니다.
“구변(苟變)을 장군으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러자 군주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구변은 이전에 관리였을 때 백성 한 사람당 두 개씩의 계란을 공출토록 해서 자기가 먹어버린 일이 있다. 이런 자를 발탁할 수 없다.”

이에 자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재차 추천했습니다.
“성인(聖人)이 인물을 등용하는 것은 목수가 재목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좋지 못한 곳이 있으면 그 부분을 버리고 좋은 부분을 살립니다. 예컨대 몇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의 경우, 설령 거기에 몇 척(尺)의 썩은 곳이 있다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는 전체를 버리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왕께서는 이 위기에 처하여 겨우 계란 두 개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인재를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살펴 주시길 청합니다.”

위의 군주는 결국 구변을 장군으로 삼았습니다.

사표가 수리되면 후임 총리를 지명하고 국회는 다시 인사청문회를 열어야 합니다. 인사청문회를 고이 통과한 사람은 드뭅니다. 누구를 후임으로 지명할 지도 오리무중입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도덕과 능력, 둘 다를 갖춘 사람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행실’을 보아야 할까요, ‘능력’을 우선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에, 위무지(魏無知)와 자사(子思)가 지금 여기에 있다면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되묻지 않을까요. ‘지금이 어떤 때라고 생각하는가? 위기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태평시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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