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지’와 지식경영
'암묵지’와 지식경영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금융영업단장
  • 승인 2009.10.30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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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금융기관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또 듣습니다. 요즘 은행들의 고민은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위 핵심 기술을 가진 기업이야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상태변화가 많습니다. 시장이 불안정하여 그렇기도 하지만 기업의 경쟁력이 고만고만 하다보니 기업의 성과가 해마다 다르고 같은 해에도 전반기 후반기 다릅니다. 심지어 분기마다 다른 성적을 내는 기업도 있다고 합니다. 은행은 기업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주로 재무제표로부터 얻습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재무제표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고, 회계장부가 있다고 해도 이를 100%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또 시장상황이 워낙 심하게 바뀌고 있으므로 지나간 시점의 회계자료만으로 대출심사를 하기엔 부족하지요. 이 때문에 일선 지점장들은 경험으로 쌓은 자신만의 ‘체크리스트’를 갖고 있습니다. 재무제표나 공시정보가 ‘형식지’라면 ‘암묵지(暗默知)’인 셈이지요. 문서나 매뉴얼로 공식화하기는 어려운, 경험과 학습으로 몸에 쌓인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지요.

가장 쉽고 요긴하게 쓰는 것이 전기요금입니다. 요금을 잘 내고 있는가는 기본이고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점검 항목입니다. 전력 사용량은 공장을 얼마나 가동했느냐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전력 사용량이 전보다 크게 줄었다면 해당 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겠지요. 물 사용량이 많은 업체는 수도요금도 좋은 자료가 됩니다. 해당기업에 갈 때 일부러 점심시간에 대 간다는 지점장도 있습니다. 그 회사의 구내식당에 가서 직원들이 먹는 점심을 같이 먹어본다는 것이지요. 식사의 질이 어떠한가, 즉 외부 식당에서 사 먹는 점심과 맛과 양을 비교해 본다는 것입니다. 좋은 회사가 맛없는 점심을 줄 리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 직원들의 연수프로그램을 체크하기도 합니다. 기업의 성패는 직원일 터이고 직원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도록 하는 기업이라면 그 미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무실이 얼마나 깨끗한가 청소상태를 보기도 한답니다. 공장이라면 특히 의미가 있는 말이겠습니다. 이직이 많은 기업이라면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회사에 대하여 애정이 있고 그 회사에서 자신의 비전을 펼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사소한 불만에 이직할 리 없겠지요. 모 은행직원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엔 전기요금이나 기업 대표의 평판을 살피는 게 첨단 신용평가 시스템보다 더 정확할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모두가 기업에 대한 정보이고 지식입니다. 지식을 말할 때 흔히 두꺼운 사전이나 교과서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지식의 한 단면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식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암묵지와 형식지입니다.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는 ‘학습과 체험을 통해 개인에게 습득돼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태의 지식’을 말합니다. 사람의 머리 속에 존재해 있는 지식으로 언어나 문자를 통해 나타나지 않는 지식입니다. 암묵지는 대개 시행착오와 같은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형식지(形式知, Explicit Knowledge)는 ‘암묵지가 문서나 매뉴얼처럼 외부로 표출돼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책, 데이터베이스, 신문, 비디오와 같이 어떤 형태로든 형상화된 지식은 형식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암묵지가 고도화되거나 암묵지가 형식지로의 변환과정을 거치면 더 높은 가치를 창조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지식경영이란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서류와 보고서, 데이터베이스 등 유형의 지식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머리 속에 잠자고 있는 지식을 최대한 발굴·활용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활동, 즉 구성원의 암묵지를 이용하는 활동이겠지요.

개개인은 형식지화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암묵지를 갖고 있답니다. 달리 말하면 표현할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우리는 암묵지를 무시했습니다. 잘 정리된 보고서나 책자만 믿었습니다. 지금도 과거지식의 축적인 인쇄물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형식지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암묵지 없는 형식지만의 일처리는 기계적입니다. 이 둘의 융합이 필요합니다. 암묵지와 형식지의 상호작용이 계속 반복되면서 조직의 지식으로 확대되어 나갈 때 지식의 창조작용이 이루어집니다. 개인 혼자만으로 그쳐서도 안 됩니다. 개인의 지식창조에서 조직차원으로 나선형으로 회전하면서 공유되는 프로세스를 만들어 갈 때, 창조경영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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