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양문학의 현주소
한국 해양문학의 현주소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09.10.1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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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양국가에서 해양문학 나온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굳이 문학이 역사를 투영하는 시대적 산물(産物)이라는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해양문학은 특히 어느 한 국가의 해양력(海洋力)이 가장 강력하던 시기에 그 부흥과 번영의 꽃이 활짝 피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섬나라인 영국은 ‘지리상 대발견 시대’로 요약되는 중세기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바다를 평정해 온 세계 최강의 해양국가였는데, 그 영광과 번영 덕분으로 수많은 해양 소재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세계의 문학을 선도적으로 이끌어 왔다.

 가령 R. 해클루트는 <영국 국민의 주요한 항해와 발견(1585년)>을 썼고, S. 피처스는 <피처스의 순례(1613년)>를, 그리고 W. 댐피어는 <신세계 일주(1679년)>를 남겼는데, 공통된 것은 그들 모두가 아직도 미지의 세계인 바다를 직접 항해하면서 보고 느낀 바를 ‘항해일지’ 식으로 썼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후대인들에 의해 그 글들이 단순한 보고서 이상의 문학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는 것은 그 글이야말로 불굴의 개척자적 정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과, ‘바다야말로 얼마든지 도전할 가치가 있다’는 교훈을 일깨우기에 조금도 손색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 글들은 분명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동렬에 놓기는 좀 뭣하다 싶을 만큼 문학적 품격이 다소 결여되고 있음에도 오늘날까지 ‘해양문학의 교과서’로 평가 받으면서 서슴없이 고전(古典)으로까지 숭앙되고 있는 것은 후일의 본격 해양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 반열에 드는 본격 해양문학으로 소설에서는 우선 D.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1719년)>와 J.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1726년)>, 그리고 R. 스티븐슨의 <보물섬(1883년)>이, 시로는 S. T. 콜리지의 <늙은 뱃사람의 노래(1726년)>와 G. G. 바이런의 <차일드 해럴드의 편력(1812~18년)>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세계 해양문학의 앞자리를 요지부동 차지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거기에 폴란드 출신 선원으로 영국에 귀화하여 ‘1등 선장’ 자격증을 획득한 다음 세계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그 체험을 바탕으로 <로드 짐> <태풍> <나스시스 호의 검둥이> <청춘> 등을 남김으로써 오늘날 ‘세계 해양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셉 콘래드에 이르면 영국이야말로 바다만이 아닌, 해양문학까지도 세계를 평정한 국가로 평가하기에 조금치의 모자람도 없게 된다. 

 이처럼 해양문학이란 말 그대로 ‘해양에 대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관찰한 바를 토대로 이루어지는 문학’인 만큼, 아무리 쓰고 싶어도 바다에 대한 지식이 결여된 상황에서는 그 접근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만약 영국이 산악국가(山岳國家)인 스위스나 아프리카 오지인 잠비아처럼 해양을 접할 기회가 전무(全無)하였더라면 그 같은 불굴의 명작은 탄생될 소지가 덜하였을 것이다. 

 가령 오늘날 영국 문학사회를 들여다보면, 여전히 해양문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뜨거운 열기로 해서 현재도 해양문학에 천착하거나 연구하는 문학인이 2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문학사적 시각에서 보면 후발국(後發國)이 분명한 미국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허만 멜빌의 <모비 디크>를 두고 오로지 그 작품 하나만 연구하여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가 3천 명에 달한다는 사실도 우리는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이 아닌가 한다.


 
  왜 한국에는 해양문학이 없는가
  그렇게 보면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내륙국가인 말리나 보스와나와는 달리,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가임이 분명한데도, 그리고 그 시대 시대를 풍자하고 투영한 작품들이 허다함에도 유독 해양을 소재로 한 작품만큼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참으로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너무도 명확하다.

 우선 근대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그 인습이나 사회 분위기 면에서 철저히도 봉건적(封建的)인 사고에 몰두한 나머지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함으로써 해양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결여되어 그만 그 중요성을 간과한 때문이요, 그 결과 어부(漁夫)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하여도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하여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어느 부류에도 포함시키지 않았을 만큼 천한 직업 군(群)으로 제외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바다로 나가는 일이야말로 곧 죽음이라는 지극히도 패배적인 생각에서 오로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일방통행 식 가치관(價値觀)만을 숭앙한 나머지 결국 해양문학의 부재(不在)라는 절름발이 문학을 이어올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인 것이다. 

 지금껏 우리 한국문학에는 단 한 편의 해양문학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조선조 시대의 최부(崔溥)나 장한철(張漢喆)이 쓴 같은 제목의 <표해록(漂海錄)> 따위를 두고 우리 국문학계에서는 ‘괄목할 만한 해양문학’이라 높이 평가하면서 흥분하였을 것인가.

 이들 작품은 말 그대로 제주도에서 목포나 해남에 이르는 200리 뱃길을 건너오다가 풍랑을 만나 중국 남쪽이나 류큐열도(琉球列島) 등지로 표류한 자신들의 체험을 고스란히 옮긴 것인데, 그 내용을 보면 아직도 바다에 대한 몰이해(沒理解)와 공포심으로만 가득하여, 정복자적 정신으로 무장한 서구인들처럼 글의 어디에서도 전혀 도전정신과 개척정신이 투영되지 않은 철저한 패배주의자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문학을 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문학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영혼의 구제를 받으며, 또한 극적(劇的)인 서사를 통해 새롭고 힘찬 삶의 향방을 찾아내려는 게 아닌가. 앞서의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 그리고 <보물섬>의 문학성이 뛰어난 것은 그 작품을 읽음으로 해서 이국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받을 뿐 아니라, 바다로 나가는 일이야말로 부(富)를 창출한다는 교훈을 은연중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해양물은 천편일률적으로 바다로 나가기만 하면 예외 없이 조난이나 당하고 표류자 신세가 되면서 먼 이국땅으로 떠밀려가는 게 항다반사적인 주제이니, 그 글을 읽고 어느 누구가 바다로 나가겠다는 마음을 먹기나 할 것인가. 그렇다고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무사한 항해를 할 수 있다는 <심청전>이나 마지막 대목에서 이상향을 건설하겠다며 졸개들을 이끌고 ‘율도국’으로 건너간 <홍길동 전>을 해양문학이라 치부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또 그렇다고 과부가 된 ‘해순이’를 놓고 동네 부랑배들이 겁탈이나 하려고 호시탐탐하는 동해안 어느 어촌마을을 배경으로 한 오(吳) 아무개의 단편소설 <갯마을>이나 해남 바닷가 갯벌을 무대로 파래서껀을 뜯으며 우리 어촌의 가난을 되씹은 한(韓) 아무개의 <목선>을 두고 해양소설이라 우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아무래도 해양소설의 분류에 들려면 삐에르 로띠의 <아이슬란드의 어부>나 해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정도는 되어야 할 거 아닌가. 

  해양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그리하여 근대 이후, 특히 5공화국 출범 이후 우리 사회가 산업화에로의 전개와 함께 해운업과 수산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그에 종사한 인구가 증가한 데 힘입어 ‘비로소 한국적 해양문학이 가능하였다’(한국해양대 구모룡 교수/문학평론가)는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70년대 들면서 그 전까지 생소하기만 하던 해양문학이 점차 우리 곁으로 다가오면서 해양소설과 해양시가 선을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그 열기를 감지할 수 있는 증거의 하나가 곧 각 단체 혹은 지방 단위로 매년 실시되고 있는 각종 ‘해양문학상 공모(公募)’ 제도이다.

 가령 국토해양부가 선도하고 해양문화재단이 주관하는 것과 부산시와 부산문협이 공동 주최하는 것, 그리고 한국해양대와 부산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는 ‘신춘문예 중편 해양소설’ 등 매년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있는 대소 10여 종의 해양문학상 공모전이 곧 오늘날 우리나라 해양문학의 현주소를 명확히 보여 주는 단적인 예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문학에는 아직껏 이렇다 할 해양문학이 나오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가령 미국이 아직도 산업화 단계에 이르지 않았던 시대, 오로지 바다로 나가 고래를 잡는 게 유일한 선택이었던 시대(19세기 중반)에 한 청년(허만 멜빌)이 포경선(捕鯨船) ‘아쿠슈네트’ 호를 타고 남태평양을 항해한 끝에 전혀 생각지도 않은 해양소설 <모비 디크>가 나온 것은 그가 배에서 내리고 난 10년 후였다는 점에서, 그렇다면 한국의 해양문학도 이제 비로소 용틀임할 계제에 도달하지 않았느냐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의 해양력이 세계 수준으로 진입하고 나서 30년도 더 지난 이 시점까지 이렇다 할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도대체 우리 해양문학의 발아(發芽) 자체를 저해하는 요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필자는 그 요인을 다음의 두세 가지로 본다. 

 첫째, 문학평론가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 문학인들이 바다에 대해 너무도 무지몽매(無知蒙昧)하여 아예 해양문학에 대하여는 논외(論外)로 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모처럼 발표되는 해양작품이 있다 손치더라도 그들은 지레 겁을 먹도 접근조차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각 작품에 서술되고 있는 전문적인 용어(用語)조차 생소한 처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러다보니 독자에게도 그 전파가 단절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음은 많은 해양 종사자가 현장에 투입되어 있지만, 그들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중심점에 있다는 강점을 도외시한 나머지 그 현장 기록(記錄)에 아주 무심하다는 것이다. 허다한 선각자들이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적어나간 일기체(日記體)의 기록이 오늘날 문학 그 자체로 평가받고 있음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초등학교 선생들이 방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일기(日記)를 쓸 것’을 숙제로 내는 형편일 것인가.

 거기에다 해양문학을 저해하는 한 가지 요인이 추가된다. 우리 시인(詩人)들의 설익고 허튼 시작(時作) 활동이 해양문학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날 여류시인 K씨가 낸 시집(詩集) 하나를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물론 배를 타본 적도, 그리고 허다한 이국풍물도 전혀 견문한 적 없는 알짜 내륙인(內陸人)이었다. 필자는 그 시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대단한 여류시인은 필자가 낸 창작집 한 권을 통독한 나머지 작품의 배경인 외국 지명과 전문용어를 교묘히 조합(組合)함으로써 아주 성공적으로 해양시집(海洋詩集) 한 권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언어의 교묘한 엮음이 시의 강점인 한에서 그 같은 행위는 일견 예쁘게 보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 전문용어조차 오류(誤謬)를 범하여, ‘키(조타륜)’를 핸들로, ‘스크루’를 프로펠러로, ‘바닷새’를 철새로 묘사하는 한에서 해양문학의 창달을 기대하기는커녕 그 역기능이나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같은 오류는 필자가 최근 간여한 문학 지망생들의 응모작을 심사하는 과정에서도 목격된 것들이다. 그리고 실제 당선된 작품 속에서도 그 같은 낯 뜨거운 오류를 범한 예를 찾아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 책임은 물론 심사를 맡은 사람들에게 있다. 그들 자신이 해양에 관한 한 일견식(一見識)도 없는 무지렁이였기 때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이 같은 지적은, 승선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아예 해양문학에 범접할 생각을 하지 말라는 엄포성 경고(警告)는 아니다. 아무리 생소한 문학세계에로의 도전이라 할지라도 치열한 작가정신을 가다듬지 않으면 문학적 성취는 불가능하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어서다.

 다음 달이면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 모집공고가 줄을 이으면서 다시 한 번 더 우리 문학의 뜨거운 용광로가 점화될 계제이다. 문학, 특히 해양문학을 하려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예비생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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