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법(船主法) 제정의 필요성
선주법(船主法) 제정의 필요성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5.03.0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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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해안전을 도모하는 선원법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선원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선원법(船員法)은 있으되 그 대칭점에 서 있는 선주(船主)와 관련된 법은 없다. 그 모순점을 고찰해보기로 하자.

선원이란 선장을 제외한 모든 승조원을 지칭하는 바, 선원법은 그들이 준수하여야 할 갖가지 책무와 의무를 소상히 규정하고 있다.

그 법규가 얼마나 까다롭고 엄격한가는 제 21조 ‘선내질서 유지’ 대목을 보면 일목요연해진다.

그 첫 줄에서, 선원은 상사(上司)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것과 업무를 태만히 하거나 타 선원의 직무를 방해해서 안 된다는 금기(禁忌) 사항을 시작으로 △선장이 지정하는 시간까지 승무할 것 △선장의 허가 없이 선박을 떠나지 말 것 △선장의 허가 없이 주요 장비를 만지지 말 것 △선장의 허가 없이 전기·화기 사용 및 지정된 장소 이외에서 흡연하지 말 것 △선장의 허가 없이 물품을 반입하거나 반출하지 말 것 등을 일일이 적시하고 있고, 거기에 △식료품 및 식수를 남용하지 말 것과 △쟁투(爭鬪)나 난취(亂醉) 등 폭력행위를 하지 말아야 하며,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으로 △기타 선내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한다는 총체적 내용까지 재강조함으로써 선원들이 얼마나 완강한 고리에 묶여 있는가를 웅변하면서 아울러 선원으로 승무하는 일이 얼마나 난해한 직업인가를 되새기게 하고 있다.

따라서 선원이 되려면 수첩(手帖)을 발급받기에 앞서 마치 갓 입소한 훈련병들처럼 그 모든 준수 사항을 하나 빠짐없이 외우는 수고를 거쳐야 하고, 승선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극히 제한된 개인사 말고는 모든 행동거지가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기계 부속품과 같은 처지가 되고 만다.

이유는 물론 명확하다. 선박이란 원래부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전혀 예측 불가능한 대자연(바다)과 마주하고 있어서 항해의 성공적인 완수를 위해서는 안전항해의 성취가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원이 위의 금기사항 가운데 단 한 가지라도 어기게 되면 가차없이 징계에 넘겨지는데, 그 징벌의 정도도 만만치 않아 최고 10일까지 상륙을 금지당하거나 심하게는 영원히 승선취업이 불가능하게끔 강제하선(强制下船)이라는 극단의 처분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 모든 통제는 물론 선장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법은 선장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몇 가지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데, 7조의 지휘명령권에서부터 앞서의 징계권(22조~24조)과 강제하선권(28조)에다 사법권에 준하는 수장집행권(水葬執行權 ; 15조)까지 보태고 보면 그 권한은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극대화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보편화된 오늘날까지 그 권한이 여전 유효한 것은 선박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 때문인데, 언제 어느 때 괴변을 부릴지 모르는 제어불가능한 세계에서 갖은 난관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항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부득불 선장 1인에게 선원들의 개별적 돌출 행동을 제어하는 권한을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주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

그렇다고 그것으로 안전항해가 보장될 수 있는가, 아니다. 그에 앞서 선주에게도 특별히 향후 안전항해를 뒷받침할 완벽하면서도 견고한 선체(船體)의 제공과 함께 충분한 자격의 해기사(海技士)를 충원시켜야 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고, 그게 잘 지켜지고 있는가의 감시와 독려는 해운 관청 몫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견지에서 보면 선주와 선원은 동전의 양면이 아닌,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관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빈발하는 갖가지 해난사고(海難事故)가 증명하는 것처럼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우선 선장을 포함한 해기사 확보 문제부터 짚어보자. 경감조치(輕減措置)라고 한다. 군에서 장교에 해당하는 선박 사관은 선박직원법(船舶職員法) 등의 엄격한 기준에 의해 소지한 면허 종류와 승선경력에 따라 그 직급이 부여된다. 하지만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해 출항이 지연될 경우 당국은 다소 자격이 미흡하더라도 임시적으로 자격요건을 완화시켜 주는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데, 그게 곧 경감조치다. 그런데 일부 선주들은 이를 악용, 생판 무자격자를 고용(雇傭) 신고하거나(수첩 바꿔치기로) 심지어 유령(幽靈) 해기사를 내세우는 등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세인을 경악케 하는 참사를 불러일으킨 게 저간의 행태였다. 바로 이 대목이 선원법의 대칭점인 선주법(船主法)을 제정하여야 하는 이유다.

이제 두어 척 선박을 보유하고 있다고 스스로 해양인이나 수산인을 자처하는 시대는 지났다. 진지하면서 치열한 정신을 요구하는 냉엄한 바다에 도전하려면 무엇보다도 철저한 해양사상(海洋思想)의 무장(武裝)이 선결 조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중순, 그간 공석으로 있던 해수부장관에 해양법(海洋法)을 전공한 유기준 씨가 임명되었다. 한 사람의 해기사 출신인 필자가 그의 전공에 주목하는 것은 지금까지 거개의 수장(首長)들이 비해양인(非海洋人)으로 선임된 데서 비롯된다. 도대체 대자연인 해양이라는 곳이 얼마만큼 절박한 공간이며, 그곳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십분 고려한다면 바다와 아무 인연을 갖지 못한 문외한(門外漢)들에게 그 책무를 맡겨온 게 과연 옳은 처사였던가를 반문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불과 아홉 달 후면 총선(總選)에 나서겠다는 신임 수장의 예비된 행보가 그것. 그 요긴한 자리를 잠깐 동안의 쉼터가 아닌, 보다 긴 안목과 통찰력을 겸비한 전문 해양인에게 맡기는 일이 그렇게도 난해하단 말인가. 오늘날 대한민국은 해운을 비롯한 수산 및 조선 등 관련 산업분야가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을 만큼 ‘해양강국(海洋强國)’으로 우뚝해 있는 위상(位相)에서랴.

새삼 선원법의 대강을 운위한 것도, 거기에 지금까지 세인을 경악케 한 대형 참사의 원천적 책임이 갑(甲)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대다수 선주들에게 있음을 상기할 것도 없이, 이 같은 당면문제들이 법 제정의 필요성임을 더욱 강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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