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방향이 옳으면 속도는 별문제
세금, 방향이 옳으면 속도는 별문제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5.02.0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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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노나라에서 말직에 있던 공자는 35세에 이르러 제(齊)나라로 갑니다. 고국 노(魯)나라의 군주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시대는 춘추시대, 지역의 제후들이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제각각 부국강병을 앞세워 세력을 확대하던 때입니다. 천하의 질서만이 아니라 지역 내에서도 기강이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노나라에서도 귀족가문인 삼환(三桓)의 세력이 제후인 소공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소공은 군주의 권위를 세울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삼환(三桓)의 하나인 계손씨의 수장 계평자가 소공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삼환 가문에 균열이 왔다고 판단한 소공은 군대를 거느리고 계손씨를 공격했으나 패했습니다.

소공은 제나라로 도망갔고 공자 역시 소공을 따라 제나라로 갔습니다.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태산(泰山)을 지나는 길에 한 여인이 슬피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자인 자로(子路)를 보내 사연을 묻자 여인이 대답합니다. “예전에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는데, 이제 남편과 아들마저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자로가 묻습니다. “아니 그 지경이 되도록 왜 이사하지 않았습니까?” 여인의 대답. “그래도 이곳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로가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자 공자가 탄식하며 말합니다.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구나(荷政猛於虎)!”이때부터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혹독한 정치, 높은 세율에 시달리는 백성의 고달픔을 상징하는 고사성어가 됐습니다.

미국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인들이 일을 더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를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차이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즉, 미국인들은 소비에 대한 욕구가 강한 반면 유럽인들은 여가에 대한 욕구가 강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측은 잘못된 것이란 것이 드러났습니다.

1970년대 후반까지 프랑스인들이 미국인들보다 일을 더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반대로 미국인들보다 3분의 1정도 일을 덜하고 있습니다. 이는 프랑스인들이 삶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세금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의 세율은 49%에서 59%로 상승했습니다. 그 기간 미국의 세율은 40%로 유지됐습니다. 그 결과 프랑스 근로자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1970년대 초에는 미국 근로자들보다 1시간 더 많은 24.4시간이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17.5시간으로 대폭 감소했습니다. 반면 미국 근로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25.9시간으로 증가했습니다.

근로시간과 세율과의 관계는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일본은 미국보다도 세율이 낮고 일본 근로자들은 미국 근로자들보다 더 많이 일합니다. 가장 세율이 높은 이탈리아의 경우 가장 일을 적게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1974년의 어느 날,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래퍼(Arthur Laffer)는 언론인, 정치인들과 함께 워싱턴의 한 식당에 앉아 세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냅킨 한 장을 꺼내들어 그 위에 세율을 낮추면 조세수입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간단히 그림으로 표시해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아무도 래퍼의 주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실현가능성이 의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래퍼가 그린 그림, 래퍼곡선(Laffer curve)이 후일 레이건 대통령 후보를 사로잡았습니다. 레이건은 자신이 래퍼곡선을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는 영화제작 사업으로 돈을 벌고자 했어요. 전비조달을 위해 소득세 최고세율이 90%까지 올라 있던 때였는데, 당시 영화를 4편만 만들어도 최고세율을 내야 했구요.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3편만 만들고 작업을 중단한 채 시골로 내려가야 했답니다.”

높은 세율은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덜 하게 만들고 낮은 세율은 일을 더 하게 만듭니다. 1980년 레이건은 미국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세금삭감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미국의 세율이 너무 높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의욕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세율을 낮추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할 유인이 생겨 경제적 효과도 다방면으로 발생하고 조세수입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레이건은 당선에 이어 재선에 성공하였고 그의 감세정책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래퍼와 레이건의 이런 견해는 ‘공급주의 경제학’으로 불립니다. 학계에서 래퍼의 이론은 지금도 논란이 있습니다. 찬성과 반대, 그리고 중립적인 견해까지 있습니다. 미국보다 세율이 높은 나라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스웨덴의 근로자들은 약 80%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받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이 세율을 낮추었더라면 조세수입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연말정산 대란이 발생했습니다. 세수(稅收)증대에 눈먼 정부가 몰래 거위 털 뽑듯 중산층 직장인의 세금을 더 긁어내다 벌어진 일이라고 언론은 비난합니다. 그러면서 “세금을 토해내서 화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세제가 바뀌어 세금이 늘 수 있다는 걸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분노가 치미는 것”이라는 직장인의 분노를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없을 것입니다. 정부는 이번 연말정산으로 세수가 9300억원 증가하고 부담을 더질 납세자는 200여만 명 정도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200여만 명이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일부가 그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불만을 제기한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보완대책을 만들어 연말정산을 두 번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다고 불만이 없어질까요. 어쩌면 여론주도층이 불만층의 한가운데 있는 것 아닐까요?

이 번 문제는 공평과세를 위한 세법개정의 결과입니다. 방향이 옳으면 그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차제에 불만층의 감정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그 방향성을 확실하게 구현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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