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참치를 예찬한다
다시 참치를 예찬한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5.02.02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선각자와 고마운 미국 어로장을 기리며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우리나라가 참치잡이에 뛰어든 지 어언 반세기-. 그간 각고의 노력과 허다한 희생으로 세계바다를 정복해 왔는데 지금은 EEZ확대를 비롯한 어획 쿼터량 설정 및 각국의 규제라는 장애물에 봉착하면서 궁지에 몰리고 있다.

참치는 회(膾) 혹은 통조림 등으로 우리 식탁을 풍성하게 장식하지만, 이전까지는 구경도 못한 딴 세상 물고기였다. 미국인들이 튜너(Tuna)라 부르고, 스페인에서는 아뚠(Atun)이라 칭하며, 생선을 주식으로 삼다시피 하고 있는 일본인들도 마구로(まぐろ)라는 별칭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러지 못 했다. 사정이 그랬던 건 그 물고기가 하필이면 한반도 3면 바다로는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아, 그래서 우리 어부들은 고등어나 전갱이 혹은 명태만이 세상 물고기의 전부인 양 세상문을 닫고 있어서였다.

그 귀한 물고기에 관심을 쏟게 된 것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 미군정청(美軍政廳)으로 파견 나온 모건(Morgan)이라는 수산고문관 덕분이었다. 튜너선장 출신인 그는 한국이 경제부흥을 달성하려면 특히 원양으로 나아가 튜너를 잡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이라 주장한 것.

그러면 고등어보다도 1백배는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서, 가난을 떨쳐내는 것과 함께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첩경이 된다고 부추겼던 것이다. 1957년도의 일이었다.

거기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당시 ‘몽고간장’ 심상준(沈相俊) 사장이었다. 그 역시 한국인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무주공산인 바다로 나아가 노다지를 캐듯 고기를 잡는 방법이 최선이라 확신하고 나름대로 원양출어의 꿈을 키워왔는데, 그 무렵 미국으로부터 원조 형식으로 들여온 배(시애틀수산연구소 소속 ‘워싱턴’ 호)가 용처를 찾지 못한 채 마냥 물결에 희롱당하고 있음을 보고 전 재산을 털어 불하를 받는 데 성공했고, 그에 고무된 모건 씨가 동참하면서 비로소 한국 역사상 최초가 되는 ‘튜너시험조업’에 나서게된 것이었다.

하지만 동부태평양 조업이 경험의 전부이던 모건 씨는 동아시아 해역의 자료를 전혀 갖지 못 하여, 그 결과 대만 인근 동지나해에서 수차례나 주낙을 깔았는데도 낯선 그 물고기는 한 마리도 구경하지 못 했다.

이유는 이랬다. 지금은 지구온난화 덕분으로(?) 열대성 회유어인 튜너가 제주 앞바다에 자주자주 출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은데다가 설상가상 조업요령의 시범을 보이던 그가 허리를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가는 바람에 역사상 처음 시도된 튜너시험조업은 그만 물거품이 되고 말 처지가 된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수대 어로학과를 나와 어업지도선을 타고 있던 윤정구(尹鼎求) 선장이 포기하지 않고 어부들을 다독여 한 달도 더 고군분투한 끝에 멀리 인도양 어귀인 안다만 해까지 진출, 비로소 몇 마리 참치류를 잡는 데 성공함으로써 한국 수산업이 세계로 나아가는 기틀을 마련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이름도 예쁜 참치

그 소식을 접하고 기뻐한 분이 다름 아닌 ‘건국의 아버지-이승만 대통령’이었다. 미국 유학 시절 튜너 살코기를 버무려넣은 샌드위치를 맛보고 그 담백함과 맛깔스러움에 혹한 나머지 언젠가 우리나라도 우리 어부가 직접 잡은 튜너를 먹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해 온 참이었다.

“그래, 우리 어부가 참말로 튜너를 잡았단 말인가. 그 귀한 물고기를 내가 직접 보고싶으니 좀 갖고 오도록 하게.”

대통령의 뜻을 전해 들은 심사장은 그 중 큰놈 한 마리를 당시 KNA 단발기에 실어 경무대로 공수했다.

“아이고, 정말 크기도 하네. 이게 말로만 듣던 튜너란 말인가?”

사진을 찍기에 앞서 대통령이 감탄했다.

“그렇습니다, 각하!”

심사장은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본의와 다르게 틀리는 답변이었다. 널빤지에 못질되어 경무대 뜰에 일으켜 세워진 그 거대한 물고기는 튜너와는 종이 다른 기다란 주둥이뿔을 가진 ‘흑새치(Black Marline)’였으니 말이었다.

어쨌거나 그 날 대통령을 경탄시킨 그 물고기는 일약 최고의 생선으로 인식되면서 세인의 뇌리에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문제가 생겼다. 우리 어부들이 잡는 갈치·넙치·준치·멸치 등 거개 물고기가 ‘치’ 자 돌림의 이름을 갖고 있는데, 마냥 튜너라고만 불러서야 되겠느냐는 게 그것. 그 말을 들은 어류학자 정문기(鄭文基) 박사(부산수대)가 궁리 끝에 ‘다랑어’라는 이름을 내놓았으나 널리 통용되지 못 하다가 어느 수산인(아쉽게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이 돌림자 ‘치’에다 ‘진짜 귀족 생선’이라는 뜻의 ‘진(眞)’ 자를 붙여 ‘진치’라 명명하였는데, 어감(語感)이 조금 거칠다하여 ‘참치’로 고쳐 부른 게 지금의 아름답고 멋진 어명(魚名)을 탄생시킨 계기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8년, 드디어 워싱턴 호(지남 호로 개명)가 남태평양으로 출어하면서 이후 매년 1억 달러 이상씩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효자산업으로 각광 받으면서 오늘 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수산대국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참치를 우리 손으로 잡으면서도 당시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그림 속의 떡이었다. 당시 경제사정이 어려워 식탁에 올리는 대신 한 마리라도 더 수출하는 게 보릿고개도 넘기고 가난도 떨쳐내는 첩경이라 여긴 탓이었다.

여기에서 모건 씨가 튜너 시험조업을 부추기며 한 말을 인용한다.

“이 물고기를 유럽에서는 ‘바다의 닭고기(The chicken of the sea)’라 부릅니다. 요리를 하면 닭고기 맛과 저작감(詛嚼感)을 내기 때문이지요. 또 미모의 유럽 여인들이 최고의 미용식(美容食)으로 치는 것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고, 두뇌발달 촉진과 성인병 예방에 특효인 DHA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건 씨의 그 말은 물론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이름도 예쁘고 영양만점인 참치 요리를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어서다. 그러니 제발, 우리 모두 귀족식품인 참치를 마음껏 먹으면서 아이들 두뇌에 자극도 주고 경제발전에도 일조하는 일석이조의 ‘수산보국(水産報國) 대열’에 앞장섰으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