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에 선장은 무엇을 했나
골든타임에 선장은 무엇을 했나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12.3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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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전 선장이 해야 할 검사의무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30여 년 전, 한국 화물선 하나가 캐나다를 떠나 태평양을 건너오던 중 침몰하면서 선원 모두 실종되는 사고가 있었다. 참사는 예고된 것이었다. 겨우 8000톤 남짓한 배가 무려 1만2000톤의 철광석을 싣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하여 출항 당시 배는 부하(負荷)를 감당하지 못 하고 거의 가라앉다시피 건현(乾舷) 상단까지 물이 찰랑거렸다는 것이다.

적재량(積載量)이라 한다. 어느 선박이건 크기에 따라 최대 적재량이 정해져 있는데, 통상 총톤수의 60˜70%가 그 한계다. 가령 총 톤수가 3000톤이면 최대 2000톤을 실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화물선은 두 배나 되는 철광석을 싣고 있었으니 예비부력(豫備浮力)이 하나도 없는 쇳덩이 꼴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책임은 물론 선주(船主)에게 있었다. 당장 눈앞의 이익(운송비)에만 눈이 먼 나머지 과적(過積)을 종용하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선장의 책임이 면탈되는 건 아니다. 이를 선원법(船員法)은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 8조를 보면, ‘출항에 앞서 선장은 이 배가 안전항해를 감당할 수 있는가부터 면밀히 검사(檢査)하여야 한다’라는 전제 하에 항해장비와 기관의 성능 및 화물의 적하상태 등 제반 준비가 완벽한지의 여부를 깐깐이 점검하여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여기에 법(선박직원법)이 규정하고 있는 자격증 소지자가 두루 승선하고 있는지의 여부도 당연 포함된다. 그 같은 까다로운 규정은 이제 배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항해 길에 오르면 향후 모든 책임은 오로지 선장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당부에 다름 아니다. 이에 대해 법규는 에둘러 언급을 삼가하고 있지만, 만약 단 한 가지라도 미비점이 발견되면 선장은 단호히 출항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 하다. 승선계약서(乘船契約書)에서도 명기되어 있듯이 피고용인 처지인 을(乙)이 과연 갑(甲)인 선주에 맞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선장은 계약을 해지당한 끝에 하선자 처지가 되면서 더불어 체선손실금(滯船損失金)을 물라는 엉뚱한 독촉장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도크에서 내리자마자 나자빠진 배

1972년 어느 여름 날, 남항 앞바다 영도 쪽에서 한 가지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350톤급 원양어선 K호가 마치 세월 호처럼 벌러덩 좌현으로 나자빠진 게 그것. 눈이 부실 만큼 새하얀 페인트칠을 한 것이나 어엿한 선체 외양으로 보나 결코 고의로 배를 어떻게 하려던건 아닌 게 분명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상가(上架) 중 선체 곳곳을 점검하던 검사관이 우현 선저에서 흠결 하나를 발견하고 외판교체를 지시한 게 그 발단. 그러려면 부득불 용접기 사용이 필수적이었으므로 만약의 사태(화재발생)에 대비, 우현탱크의 기름 전량을 일시 좌현 쪽으로 옮겨야 했다. 그런데 수리를 마치고도 기관장이 후속조치(기름 되돌림)를 취하지 않아 그만 좌우평형(左右平衡)이 깨어지면서 배가 나자빠지는 횡액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약간의 화물만 실려있었더라도 배는 영락없이 전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복원성(復原性 ; Stability)이라 한다. 물에 뜬 배는 극히 미세한 외력(外力)에도 민감히 반응한다. 조류나 해류에도 쉽게 떼밀리고, 작은 파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반대편으로 경사하는 게 그것. 그러나 예비부력이 넉넉하고 선체 중심(重心)이 잘 잡힌 배는 곧 원래의 직립자세(直立姿勢)로 돌아오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그게 곧 복원성이다. 선체안정은 그 복원력(復原力)에다 화물적재량의 준수 및 튼튼한 고박(固縛) 여부에 좌우된다. 끝내 침몰한 세월 호의 초기 전복도 최상갑판에 선실을 증축함으로써 중심을 끌어올린 나머지 복원력을 떨어트린 게 그 원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서 침몰한 철광석 화물선은 과욕에 눈먼 선주와 거부하지 못한 선장의 합작품이었고, 후자는 함량미달의 기관장에 의한 해난사고였던 것이다.

서베링해에서 일어난 믿지 못할 일

여기에서 우리는 서(西) 베링해에서 침몰한 ‘501 오룡’ 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배야말로 앞서의 과적선이나 도크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대로 나자빠진 K호의 치명적 약점을 몽땅 빼닮고 있기 때문이다.

선령(船齡)이 무려 36살이나 되는 오룡호는 미드웨이 어장에서 조업하는 동안에도 조업일수보다 수리 날짜가 더 길었을 만큼 고철덩어리였다. 그럼에도 기적처럼 만선을 이루자 부산에서 양륙을 끝낸 다음, 곧장 죽음의 바다인 북태평양으로 향했다.

전통의 바이킹 후예인 북구인(北歐人)들은 ‘한겨울 철 북대서양을 항해해 보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선원임을 자처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만큼 악천후를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일반 화물선이 북대서양을 항해할 때면 화물을 덜 실을 것을 적화법(積貨法)은 주문하고 있다. 겨울철 북태평양도 그에 못지않아 사나흘마다 악천후가 기승을 부린다. 그럼에도 오룡호는 문제의 기관을 점검하지도 않은 채 회사 강권으로 일주일만에 북태평양으로 향했다. 마침 명태값이 오르고 있을 때여서 러시아로부터 추가로 할당받은 어획 쿼터량이 아까웠던 것이다.

여기에 ‘유령선장’이 등장한다. 육상에 근무하는 김 모씨를 선장으로 등재한 다음 자격미달인 3급항해사 김계원을 짝퉁으로 내세운게 그것. 그러니 선장은 지휘권을 행사하기는커녕 오로지 회사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뻔했다. 결국 지난 12월 1일 정오 무렵, 기상이 심상치 않은데도 밤새 잡은 명태를 처리실에 쏟아 붓자마자 재차 그물을 내렸는데, 바로 그 순간이 오룡 호로서는 목숨을 건질 골든타임이었다. 이미 주변 조업선들이 피항에 나선 다음이었으니 말이다.

잠시 후 짝퉁선장은 동료선에 대고 ‘지금 그물을 끌고 있는데 처리실에 바닷물이 넘쳐나고 있다’는 데 이어 ‘……그러면 우리도 그물을 걷고 피항해야겠네요’라는 식으로 중얼거린 다음 회사에 전화를 걸어 ‘어쩌면 좋을까요?’라고 바보스럽게 묻는다. 바로 그 순간 짝퉁은 ‘전 선원 퇴선!’이라고 소리쳤어야 했다. 도대체 세월호 선장과 무엇이 다른가.

분류한 어획물을 팬에 담는 작업장인 처리실은 흘수선(吃水線)보다 높이 위치해 있어 설령 물이 차더라도 쉽게 배수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룡 호는 감당하지 못 했다. 침수는 갑판을 덮친 파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고물딱지 선저에 뚫린 파공으로부터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아무 지시도 받지 못한 처리실의 외국인 선원 40여명이 한꺼번에 수장(水葬)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더 이상 무엇을 말하랴. ‘코리언 드림’을 꿈꾸며 열악한 환경의 한국선을 택했다가 비운에 간 그들의 명복을 비는 것 말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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