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을미년 띠풀이> 유순하지만 위험에 맞서는 양
<2015 을미년 띠풀이> 유순하지만 위험에 맞서는 양
  • 정상박 교수/동아대 명예교수, 민속학
  • 승인 2014.12.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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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과 염소는 다른 종

새해는 간지(干支)로 따져서 양의 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태어난 아이를 염소띠라고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양과 염소를 혼돈하고 있으나 생물학상으로 전연 별종이다. 이렇게 된 연유는 농경을 주로 하던 우리나라에 양이 별로 소용이 없어 기르지 않고 대신 약용으로 염소를 조금 길렀기 때문이다.

소위 양이라는 것은 곱슬곱슬한 울(wool)로 덮어져 있는 면양류를 주로 가리킨다. 이것은 성질이 온순하고 소심하며 건조한 초원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수백 마리씩 무리지어 산다. 그래서 건조한 중동 같은 지역에서 유목하기에 알맞아 사육하면서 고기와 양유를 식용하고 털과 가죽을 생활용품으로 쓴다. 이것을 서양에서 털을 이용하기 위해 기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염소는 산양과 같은 종으로 빳빳한 털(hair)로 덮여져 있고 제법 당당한 뿔과 턱수염을 가지고 있으나 초식동물이라 용맹성이 없다. 그래서 위험이 있으면 민첩하게 바위나 벼랑을 타고 높은 곳에 올라 몸을 피하는 놈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잡아먹기 위해 기르는 것은 물론 이 산양 종류다.

동서양에서 각기 다르게 본 양

서양문화권에서는 면양의 온순한 점 때문에 신자(信者)를 ‘어린양’에 비유하기도 하고 이솝우화 ‘늑대와 어린양’에서 억울하게 당하는 약자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그림(Grimm)이 기록한 게르만민족의 민담 ‘이리와 일곱 마리 새끼양’에서는 우리의 ‘해님 달님’이야기와 같은 구조에 오누이 대신에 어린양을 등장시키고 어미양은 꾀를 써서 이리의 배를 갈라 새끼양을 구출하고 그 배속에 돌을 가득 넣고 기워서 이리를 물에 빠져 죽게 하는 슬기를 발휘하게 한다. 

반면에 한문문화권에서는 염소의 의젓한 긴 턱수염을 강조해 ‘장염주부(長髥主簿)’의 칭호를 붙이기도 한다. 염소가 목에 힘을 주고 버티며 “으메헤”하면서 고고한 척하는 풍모와 물이 묻거나 더럽혀진 풀을 먹지 않고 깨끗한 나뭇잎을 즐겨 먹는 결백성으로 인해 새끼양[羔羊]을 두고 청렴한 군자로 비유해, 모름지기 군자는 “맑은 절개를 지키며 새끼양의 뜻을 따르라(秉淸修之節 蹈羔羊之義)”고 한다. 동양의 고문헌에 나타나는 양은 면양종인지 산양종인지 잘 구별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그 속성으로 보아서 산양류가 많은 것 같다. 한국 문헌에도 고양(羔羊)과 영양(羚羊)을 염소라 했고, 특히 우리가 흔히 보는 재래종인 검은 염소를 고력(羖䍽)이라 했다.

속죄양의 유산

양은 신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가축화했다고 한다. 그리해 옛날에 제사에 동물을 바치는 희생 제물로 많이 썼다. 은나라 때 점치는 뼈에 열 마리의 양과 두 마리의 소를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궁중과 관아의 제례에 중국의 제도를 따라 양을 사용했으나 민간에서는 많이 사육하는 돼지를 희생제물로 썼다. 서양과 중동의 속죄양(贖罪羊)도 그 근원은 이와 같은 희생제물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런 연유로 일찍이 한문에서는 뿔이 난 양의 머리를 상형해 양(羊)자를 만들고 이것을 상서롭다는 뜻으로도 쓴다. 그리고 양(羊)자와 큰대(大)와 합쳐 아름다울 미(美)로 만들고, 먹을 식(食)자를 합쳐 기를 양(養)자로 만들고, 나 아(我)자를 합쳐 옳을 의(義)자로 만드는 등 좋은 뜻의 글자가 되게 했다.

순한 초식 동물이지만 어미양은 이리와 늑대도 함부로 잡아먹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어미양은 새끼를 도망치게 하고 대신 잡아먹히는 모성애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양 새끼는 어미의 은혜를 알고 무릎을 꿇고 젖을 빠는 효심이 있다(羊有跪乳之恩)”고 한다.

한나라 광무제(光武帝)가 “양 머리를 걸고 말고기 포를 팔며, 도척이 공자의 말을 뇌까린다.(懸羊頭賣馬脯 盜跖行孔子語)”고 한탄한 것에서 유래해 내세운 겉과 실제 내용이 다른 경우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한자 숙어를 우리도 많이 쓰고 있다.

이 말과 비슷하게 외면은 화려하나 속이 빈약한 것을 가리켜 양질호피(羊質虎皮)라 한다. 이 말은 “바탕은 양인데 범의 껍질을 쓰고 풀을 보면 즐거워하고 늑대를 보면 두려워함은 그 껍질이 범임을 잊은 것이다.(羊質虎皮 見豺則恐 忘其皮之虎也)”고 한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양을 나약한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어려운 인생살이나 가기 힘든 꼬불꼬불한 산길을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일상어로도 많이 쓴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는 “염소 물똥 싸는 것 봤나?”, “염소새끼 나이먹어 수염이 났다더냐?”, “염소새끼 어미 따르듯 한다.”, “염소 고집이다.” 등등 양보다 염소에 대한 것이 많다.

우리가 인식하는 양

전남 장성의 백양사(白羊寺)는 인근의 내장사와 함께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고찰이다. 이 절에 고승이 법화경을 독송을 하니 경을 읽는 소리를 듣고 백양이 몰려와서 백양사라 하고, 그 스님의 법명도 환양(喚羊)이라고 했다는 전설이 있다.

우리나라에 양과 염소의 전설은 드문데, 흥부와 놀부 비슷한 염소의 민담이 하나 있다. 옛날에 못사는 형이 산에서 나무를 하며 “설 눈은 쌓이고 설 밥은 없고 우리 부모 어떡하나?” 하고 소리쳤더니 앞산에서 염소가 그 대로 흉내를 내어서 말 잘하는 이 염소를 끌고 다니며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부자인 동생이 빼앗아 끌고 가서 돈을 벌려고 했으나 염소가 말을 하지 않아 동생이 그것을 죽이고 그 뼈를 집안에 묻었다. 그러자 거기서 대가 나서 무럭무럭 자라 하늘의 똥보를 찔러 똥이 쏟아져 내려와 파묻혀 죽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무덤에 수호신으로 호석(護石)을 세우는 것은 중국에 없는 묘제라고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양석(羊石)이다. 양만 석조물로 세우기도 하지만 양과 말을 세우는 양마석(羊馬石), 양과 호랑이를 세우는 양호석(羊虎石)이든지, 반드시 양석을 세운다. 양은 초식동물이라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지만, 공격을 당하면 날카로운 뿔로 방어를 한다. 이런 방어적인 동물을 무덤의 수호신으로 삼은 것에서 우리 민족의 비공격적인 어진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위에 든 양과 염소에 대한 비유와 상징이 오랜 세월 쌓여서 양띠의 사람은 성격이 순해 선행을 행하므로 군자 같다고 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한다. 예(禮)를 따라 사회적 질서와 규범을 지켜서 편안한 사람이라 한다. 그러나 양은 높이 오르기를 좋아하고 맹랑해 경거망동을 잘 한다고 부정적인 성격으로 말하기도 한다. 염소가 고집을 피우고 억지를 잘 부린다. 그래서 우리가 소는 몰고 가지만, 염소는 끌고 간다. 이런 점에서 염소 고집이라고 하면서 양띠가 고집이 세다고도 한다. 이런 말들은 모두 인간심리를 양과 염소에 투영시켜서 만든 것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 다르므로 양띠의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양띠 해를 맞이해 날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시대에 우리 모두 양처럼 무리지어 서로 믿고 순하고 선하게 살아 평화롭고 안정적인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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