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자연재앙에 고기 씨가 말랐다
인위적 자연재앙에 고기 씨가 말랐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09.08.3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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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양어장에서 들려오는 비보(悲報)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최근 남대서양 ‘말비나스’(‘말비나스’는 포클랜드를 가리키는 아르헨티나 인들의 현지어임) 어장에서 돌아온 P원양 조보근(曺甫根) 이사의 보고(報告)는 실로 충격적이다. 참치잡이배 선장 출신인 그는 출어 중인 자사 소속선의 조업지원을 위해 지구 반대편인 포클랜드 현장으로 출장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말도 마세요. 우리 어부들이야 입만 열면 언제나 불황이라고 엄살이지만, 이번만큼은 진짭니다! 불황도 이런 불황은 난생 처음이라니까요. 아예 고기 씨가 말라버렸다는 게 옳을 겁니다.”

 그러면서 더욱 놀라운 사실 한 가지를 덧붙였다.
 “지난 20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온 어장이 최근 들어 그 판도가 확 달라졌습니다. 생전 구경도 못한 참치까지 트롤선 그물에 담겨오니 말입니다. 엘니뇨니 지구온난화니 하는 말이 맞긴 맞는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들은 필자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주 먹이인 정어리나 멸치 등 군집어군(群集魚群)을 추적하기 위해 오로지 표층(表層)만을 회유하던 참치가 아귀나 가오리처럼 수백 미터 깊이의 해저에 가라앉아 있다가 그물에 함께 담겨 올라왔다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트롤선 입장에서야 값비싼 참치가 걸려들었으므로 대박을 만났다고 기뻐하였을지 몰라도, 참치잡이 선장 출신인 조 이사 생각으로는 그 일이야말로 이변(異變)에 틀림이 없어서 오히려 머리끝이 주뼛하더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변괴가 있었기에 마음껏 표층을 회유하던 참치 무리가 아귀나 가오리처럼 해저 밑바닥으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단 말인가.

 포클랜드라면 1982년 4월, ‘철의 여인’ 대처의 영국과 갈티에리 군사정권 하의 아르헨티나 두 나라 간에 섬 소유권을 둘러싸고 벌인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전쟁이야말로 이전의 모든 세계전쟁을 통틀어 지상군인 육군이 배제된 채 오로지 양국 해군함정만으로 치러진 순수 해상대결(海上對決)이었다는 점에서 세인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었다.

 누가 보더라도 열세가 분명한 아르헨티나가 대영제국의 해군함대를 상대로 사생결단 전쟁을 불사한 것은 오랜 군사통치에 의한 국내혼란 등으로 만연한 악성 인프레에다 눈덩이처럼 늘어난 외채, 거기에 국가적 고질병이 되다시피 한 실업률 증가 등으로 맨날 반군부(反軍部) 데모가 그치지 않아 극도로 이반된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말비나스’여, 돌아오라!

 그러나 갈티에리 대통령의 그 같은 기도(企圖)는 무참히도 깨어지고 만다. 전쟁은 결국 1만 마일도 더 떨어진 북구해(北歐海)로부터 발진한 영국해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종결되었지만, 그럼에도 영국 해군은 3척의 초현대식 구축함과 상륙정을 잃은 반면, 아르헨티나는 구식인 순양함과 잠수함 두어 척을 잃는 데 그쳐 허다한 군사 전략가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국가경제가 워낙 말이 아니어서 해군력 증강에 힘쓸 겨를이 없었던 아르헨티나가 막강 영국 함대의 주력 구축함을 연이어 격파한 것은 화력만큼은 함대함 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은 덕분이었던 것이다.

 결국 영국에 포클랜드 섬을 빼앗긴 아르헨티나는 그로부터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우리 땅 말비나스여!>라는 구호를 조석으로 외치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유독 황무지에 진배없는 말비나스를 두고 아르헨티나 인들이 그처럼 안타까워하고 또 애석해 하는가. 그것은 북반구의 영국과는 달리, 아르헨티나 해안으로부터 겨우 300마일 남짓 떨어져 있는 그 섬은 오래 전부터 포경어업의 기지로 유용하였을 뿐 아니라, 잠재적 연간 생산량이 500만 톤을 웃도는 오징어의 대량 서식지이면서 새우를 비롯한 대구와 가자미, 게ㆍ가재ㆍ가오리 등 저서어족(底棲魚族)들이 밀집한 천혜의 어장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인류의 마지막 식량자원인 크릴새우(Krill)가 연간 2억여 톤도 더 회유하고 있으니 그게 어디 예사로운 바다인가. 그리하여 나라가 빚 투성이인 데다가, 약간의 목축업(牧畜業)을 하는 이외에는 달리 자국 경제를 견인할 산업을 갖지 못한 아르헨티나가 그 같은 천혜의 어장을 빼앗겼다는 사실은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잃어버린 슬픔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 어장으로 한국의 원양어선들이 비싼 입어료를 내며 출어한 것은 포클랜드 전쟁이 끝난 다음의 1985년도부터였다. 마침 세계는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로 새로운 해양질서가 확산된 시점이기도 하여서, 비록 비싼 입어료를 부담할지언정 어렵사리 기회를 얻어낸 한국의 처지로는 그곳이 지구상 마지막 남은 어장이라 여기고 지금까지 20여 년 이상 그럭저럭 기름값이나마 뽑아내면서 미래의 식량자원인 크릴 어업에 대한 희망과 꿈으로 버텨왔는데, 그 어장이 근년 들어 이상하게 돌아가면서 어획이 급감한 것은 물론, 생전 구경조차 하지 못한 참치가 트롤선 그물에 담겨 올라오는 기상천외한 사태까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북태평양 어장에서 온 e메일

 지난 5월 말, 감천항을 뒤로하고 쓰가루 해협을 거쳐 북태평양으로 출어한 꽁치잡이 ‘제 305창진’ 호의 보고는 더욱 비관적이다. 305창진 호는 어장에 도착하자마자 꽁치잡이배의 눈(眼)이자 레이더인 어군탐지기 ‘소나’가 고장 나는 바람에 부득이 오륙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는데, 수리를 마친 다음 다시 어장으로 회항하느라 보름여의 날짜를 까먹기는 하였지만 출어하고 두 달도 더 지난 지금까지 잡은 어획량이라야 기껏 10여 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인이면서 금년도 ‘한국해양문학상 공모’에서 해양중편소설 <쇄빙항해>를 응모하여 우수상을 받음으로써 ‘기염을 토했다’(국제신문)는 평가까지 받은 305창진 호의 이윤길(李允吉) 선장은 20여 척의 한국 꽁치잡이배 선장 가운데서도 가장 경험이 화려하여 선단을 이끌다시피 하고 있는데(승선기간 33년), 최근(7월 27일자) 그가 보내온 e-mail 한 통으로 저간의 상황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전략)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라 합니다. 여기라고 하나도 다를 바 없습니다. 물고기는 돌아오지 않고, 파도만 부풀어 올라 하루 종일 시앵커에만 선체를 내맡기고 있습니다.……내달 7일경 캄차카 어장으로 이동할 예정인데, 거기엔 고기가 있을까요? 스승님과 따뜻한 정종이나 한잔 하였으면 합니다.……

 얼마나 날씨가 혹독하면 따끈한 정종 생각이 다 날까? 지금 그곳의 기온은 18°C를 오르내린다고 한다.
305창진 호는 지난 해(2008년) 6월부터 11월말까지 6개월의 출어기간 동안 1,500톤의 꽁치를 잡아 20억 원의 어획고를 올렸었다. 그 전해(2007년)는 기관고장과 러시아 경비정에 붙잡히는 등으로 조업이 순탄치 못 하여 1,150톤을 잡는 데 그쳐 3억여 원의 적자를 본 데 비하면 작년은 그나마 본전치기는 한 셈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출어하고 두 달이 더 지났는데도 소형 화물차 10대분에 불과한 겨우 10여 톤을 잡고 있으니 그 불황의 골이 얼마나 깊은가 하는 것이다.

 불황은 비단 이 선장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북태평양에 출어 중인 20여 척 한국선 모두 한결같다니 이게 어디 예사로운 일인가. 그리하여 작년 같았다면 지금쯤은 두어 번도 더 운반선 편으로 어획물을 받아들이면서 선주(李京一 사장)는 투자한 출어경비 5억여 원 가운데 얼마만큼은 결재를 하고도 남았을 텐데, 오히려 이달치 가족생계비 지불마저 걱정해야 할 만큼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명사고까지 발생하였으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일까. 다시 거슬러 7월 6일자 e-mail을 보자.

 ……사고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지난 3일, 자고 일어나니 조선족 한 명이 감쪽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야간조업을 하는 봉수망선의 특성상 낮 동안은 모두 잠을 자는데, 그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발을 헛디뎠는지 모르겠습니다. 생명 하나가 지워졌으면 슬퍼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분노가 치미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동료선 몇 척의 도움을 받으며 꼬박 사흘 동안 북태평양을 헤집었으나 허탕이었습니다.……


 기상이변의 주범은 ‘엘니뇨현상’

 인명사고도 애석한 일이지만, 305창진 호 이 선장 경우나 포클랜드 어장처럼 불황은 올해 들어 아주 본격적으로 세계의 바다에 창궐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계절에 맞추어 광활한 대양을 규칙적으로 회유해 온 고기 떼가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꺼번에 사라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이에 대해 세계의 저명한 기상학자들은 입을 모아 지금 이 시각에도 가뭄ㆍ한파ㆍ홍수ㆍ폭풍에다 지진이며 쓰나미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기상이변(氣象異變)이 그 주범(主犯)이라고 한다. 지난 2006년 기승을 부리며 세계 곳곳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엘니뇨(el Nino)’가 지난 6월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해양대기청(NOAA)을 비롯한 세계의 주요 기상 당국은 계절적으로 현재 겨울철이기는 하지만 파타고니아 등 남미대륙 남단에는 예년의 몇 배나 되는 폭설이 강습하여 전 국토를 빙하지대로 만들었고, 그와는 반대로 브라질을 비롯한 호주와 인도 등은 극심한 가뭄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올해 예상되는 수확량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처럼 속출하는 기상이변 모두가 엘니뇨의 농간에서 비롯되었다는 결론인 것이다.

 이웃 일본의 기상청도 그간 분석한 자료를 나름대로 내놓았는데, 그에 따르면 페루 인근의 태평양 수온이 상승하면서 엘니뇨현상이 발생하였고, 그에 따른 적도해류의 이동이 활발해지자 결국 북태평양 고기압을 약화시키면서 이번처럼 장마전선을 한국과 일본에 장기간 머물도록 하여 결국 집중호우와 일조시간 감소 등의 기상이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지난 달 11일 인천에서 개막된 ‘2009 세계환경포럼’에서도 ‘가난?질병 등 인류가 당면한 제반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곧 기상이변’이라고 선언한 것도(반기문 총장)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치는 한반도에서도 확연히 나타나는데, 예년 7월의 경우 평균 6시간 가깝던 일조시간이 무려 2시간이나 감소한 4시간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260mm이던 강수량도 그 두 배인 500mm나 되는 집중호우를 퍼부어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올가을 농사마저 ‘반타작도 어렵겠다’는 비관적 예측이 횡행하는 판이고, 아울러 7ㆍ8월 한 철을 ‘1년 농사’로 알던 전국 각 해수욕장도 흐린 날이 많아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는 판국인 것이다.

 세계의 기상이 이러할진대, 북태평양으로 출어한 한국의 꽁치잡이 봉수망선들이라고 해서 자유로울까.
305창진 호의 경우, e-mail을 보내온 8월 초 당시 일본 홋카이도로부터 1,000여 마일 떨어진 동경 160도와 북위 40도 해역을 쏘다니고 있었는데, 그 무렵 바닷물 온도(水溫)는 고작 15°C 정도로, 작년 이맘때의 18°C에 견주어 무려 3°C나 하강해 있다는 것이다.

 북태평양의 수온하강 원인은 당연히 엘니뇨와 지구온난화에 근거한다. 엘니뇨현상으로 지구가 더워졌고, 지구가 더워지면서 알래스카 등지의 만년빙이 녹아내렸으며, 녹아내린 차가운 물이 북태평양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바닷물 온도를 사정없이 하강시켜 매년 풍어를 노래하던 꽁치 어장을 하루아침에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급작스러운 수온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꽁치 떼가 집단 폐사하였거나 아니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어디로인가 정처 없는 유랑의 길로 떠나버렸다는 결론인 것이다.

 이 선장이 기대를 걸고 있는 캄차카 어장도 그렇다. 8월초부터 어기가 시작되는 캄차카 어장은 러시아로부터 얻어낸 매년 5만 톤의 쿼터에 근거하여 자유로운 조업을 할 수 있는데, 지난해와 달리 세계의 온 바다가 깡그리 뒤집어져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북태평양의 한 귀퉁이가 분명한 캄차카라고 독야청청할 것인가.

 이렇게 되면 당장 올겨울 자갈치어시장의 판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굳이 희소성(稀少性)이 가격을 높인다는 상식(常識)을 인용할 것도 없이, 꽁치 어획이 격감하면 당연히 값은 천장부지로 치솟아 한 마리 값이 몇 천 원을 호가하게 될 판이니 말이다.

 포클랜드와 북태평양에서 들려오는 잇따른 불황 소식은 영구불멸(永久不滅)이던 바다라는 대자연도 급변하는 환경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경고(警告)에 다름 아니고, 따라서 인간이 저지른 환경파괴로 인한 자연재앙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이제는 고기 씨가 말라버리는 극단적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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