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 먹이기
용왕 먹이기
  • 김인철 학장/부경대 환경·해양대학
  • 승인 2008.12.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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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철 부경대학교 환경·해양대학 학장
새벽이라기보다는 한밤중인 시간에 아내가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정월 대보름이라 음식을 장만해서 새벽에 용왕을 먹이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일어나 양초도 챙기고 소지종이도 챙겼다. 오곡밥에 나물에 과일과 마른 명태와 막걸리까지 대야에 담아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구덕포 바닷가로 나갔다.

 

 아내가 용왕을 먹이기 시작한 것이 올해로 몇 년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십오 년은 넘은 것 같다. 내가 바닷가 사람이라 우리 집에는 오래 전부터 용왕을 먹였는데 도시 사람이라 그런 것을 전혀 모르던 아내는 처음에는 미신이라며 관심조차 보이지 않더니 나이가 들자 자연 집안의 풍습을 따라 용왕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새 구덕포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아내가 용왕을 먹이기로 하고 바닷가를 정할 때 내가 한적한 구덕포를 권했다. 도시에 가까우면서도 어촌 냄새가 그대로 풍겨났고 무엇보다도 길 바로 옆 바다에 적당히 신성해 보이는 갯바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름답던 구덕포도 차츰 횟집이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상전이 벽해 되듯 변해 버렸다. 가장 큰 변화는 길이었다. 군데군데 시멘트가 떨어져나가 다니기가 불편했던 길이 차츰 확장되고 포장되어 이제는 아예 멋진 펜스를 두른 이차선 포장도로로 변했다. 예전에는 가로등도 없어 꼭 손전등을 준비했는데 이제는 용왕을 먹이기에는 너무 밝아서 용왕님께 죄송한 마음까지 생긴다.

 새벽 네 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더 일찍 나온 사람들이 용왕에게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펜스사이로 군데군데 내어둔 해변 출입구 계단을 내려서서 바위에다 제수를 차렸다. 촛불을 밝히고 소지를 올렸다. 소지는 아내의 소원을 물고 하늘을 높이 날았다. 스물 일곱에 시집와서 곱던 새색시가 이제는 오십하고도 몇 년을 더 넘긴 중년이 되어 어릴 때 내 할머니께서 우리들 형제 이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하던 그 모습처럼 그렇게 소지를 올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바다에는 배도 많고 저만치 송정 바닷가의 네온 불빛도 파도에 더욱 흔들거렸다.

 아내가 빌고 있는 소원이래야 기껏 가족의 건강과 행복일 것 같아 나도 소지를 올렸다. 나는 제법 스케일 크게 나라의 안녕과 경제가 좀 더 잘 되어 국민들이 모두 잘 살기를 빌었다. 그러자 생각이 좀 더 발전하여 전쟁과 분쟁이 없는 세계평화도 빌고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도 일어나지 않도록 빌었다.

 그러고 보니 자연 걱정이 늘어났고 빌 거리가 많아졌다. 날씨에 대해서도 빌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새벽 바닷가의 바람이 과히 살인적이라 두꺼운 파카로 무장을 하고 나왔는데 올 해는 점퍼만 입고 나왔다. 그만큼 날씨가 따뜻한 것이다. 바닷바람도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지구의 온난화에 대한 걱정의 말들이 오고 간 것이 오래 전이었다. 그 영향이 나타난 것인지 올해는 유난히도 따뜻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벌써 봄이 온 느낌이다.

 이상기후로 해마다 겨울이 짧아지고 있다. 올 겨울의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2~3도나 높았다 한다. 한강도 얼지 않았고 해수 온도도 높아져서 벌써부터 기장 앞바다의 멸치잡이가 한창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지구에서 가장 큰 열 저장고인 바다의 해수 수온이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십년도 더 전에 월정사의 탄허 스님이 쓴 책 「부처님이 계시다면」을 읽었는데 거기서 앞으로 해수 온도가 자꾸 올라갈 것이고 남해안의 낮은 지대는 물에 잠긴다는 것을 보고 피식 웃은 적이 있다. 그 분이야 주역에 통하였으니 역학으로 우주원리를 풀이했던 우리가 별 주위 없이 과도하게 사용하는 화석 연료가 이런 기상 이변을 불러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현재 진행형이며 앞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위원회의 4차 평가보고서에는 이 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 온도가 1.8~4도까지 오를 것으로 예측했으며 인류가 유사 이래로 경험하지 못한 최악의 재난을 몰고 올 지구 온난화를 제어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최근 몇 해 사이 세계 곳곳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기상 이변은 이미 우리에게 위험에 처했음을 알려주는 경고이건만 오만한 우리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마치 남의 이야기처럼 흘려듣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소지를 다 태우고 용왕에게 드릴 밥과 나물, 과일 등을 차례로 바다에 던지고 막걸리를 부었다. 어둠속인데도 막걸리를 뿌린 바다가 뿌옇게 보였다. 내가 하는 행위가 바다를 오염시키는 것 같아 죄스러웠지만 용왕님께 드리는 치성물이니 용왕님께서도 너그러이 봐 주실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돌아섰다. 용왕을 먹이고는 절대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고 아내가 말했으나 나는 내가 켜둔 촛불이 잘 타고 있는지를 몇 번이나 돌아다 봤다.

 돌아오는데 경남 번호판을 단 대형 관광버스가 한 대가 구덕포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에서 사람들이 각기 제물을 들고 내렸다. 경남 쪽에도 얼마든지 용왕 먹일 좋은 곳이 있을 텐데 어찌하여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왔는지 참 의아스러웠다. 아무튼 영험이 있는 곳이라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치성을 드리니 구청에서 단속차가 나왔다. 바위마다 촛농으로 얼룩질 것이고 치성 드린 음식으로 바다가 오염될 것이니 단속을 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굳이 강변을 하자면 바다에 오물이나 폐기물을 갖다 버리는 것도 아니고 용왕님에게 올린 깨끗한 제물을 바치는 것인데 단속까지 한다는 것은 좀 심한 것이라 여겼다.

 나는 다행히 일찍 마쳐서 아무런 일이 없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찜찜했다. 내년에도 용왕을 먹여야 하는지 아니면 그만 두어야 하는지 하는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로 용왕님이 계신다면 올해는 그저 용왕님 덕분으로 가족 건강하고, 비바람 순조롭고, 국태민안하고 세계가 평화롭기를 빌었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고 송정 해변의 휘황한 네온 불빛이 파도에 곱게 일렁이고 있었다.


 

약 력

·부산대학교 공대 조선공학과 학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조선공학과 석사
·부산대학교 대학원 조선공학과 공학박사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 조선공학과 교환교수
·부산수산대학교 교수
·현 부경대학교 교수
·현 환경·해양대학 학장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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