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과 프레이밍(framing)
노벨상과 프레이밍(framing)
  •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4.10.3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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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 시인/산업은행 부장
노벨상이 모두 발표됐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과학부문에서 하나쯤 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없습니다. 일본은 올해 셋씩이나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도합 19명입니다. 문학상이 2명, 과학부문이 17명입니다.

일본의 최초 노벨상은 1949년, 물리학상이었습니다. 일본은 일찍부터 물리학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나라입니다.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유가와 히데키(湯川秀樹)는 패전의 잿더미에 파묻혔던 일본 국민에게 의욕을 불어넣어준 인물로 꼽힙니다. 그는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의 공적은 1934년 발표한 중간자 이론, 당시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일본을 현대물리학 선도국가로 올려놓은 공로자의 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웠습니다. 1934년이면 우리나라는 식민지 시절, 히데끼의 당시 나이는 27살이었습니다.

실은 그 이전에 노벨상을 받을 만한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일본화폐 1,000옌권의 표지인물인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 1876~1928)입니다. 노구치는 엘리트가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에 화상을 입어 왼손을 제대로 쓸 수조차 없었습니다. 게다가 가정이 유복하지 못했던 탓에 요즘으로 치면 중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학력밖에는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독학으로 의사 시험에 합격했고 지방의 전염병 연구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스물네 살 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초청을 받아 세균연구에 매진하였습니다.

노구치에 대한 노벨상 후보 추천은 1913년을 시작으로, 이후 1914년, 1915년으로 이어졌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중인 1915년부터 1918년까지는 수상자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20년, 1921년, 1924년, 1925년, 1926년, 그리고 1927년, 거의 매년 추천됐습니다. 추천 공적은 매독 및 황열병 연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28년, 애석하게도 자신의 연구대상인 황열병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노벨상은 죽은 사람에게는 시상하지 않습니다.

미국 대학의 한국 교수가 국내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미국 학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적 성취를 하는 이유를 아느냐고. 국력과 영어의 힘 아닐까라고 국내교수는 대답했습니다. 한국 교수가 미국 교수들보다 머리가 나쁠 리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자부심입니다. 나의 연구가 인류의 지혜를 한 단계 더 높인다는 자부심!” 미국대학 교수가 단정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면서 부연합니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미국과 다른 나라 학자를 가르는 큰 차이가 바로 이겁니다. 미국 학자는 내가 미지의 영역에 대한 인류 최초의 개척자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애초부터 눈높이와 시야가 다르다는 거죠. 저도 한국에서 공부할 때 좋은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척자로서 인류에 대한 기여 같은 생각은 못 했습니다.”

학문에 대한 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축구에서는 우리 대표팀에게 판판이 깨지지만 노벨상에서는 19:0입니다. 일본 학계는 노벨화학상 예비 후보가 1개 분대(分隊) 정도 있다고 말합니다. 과학무분 전체로는 아마 소대(小隊) 규모는 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예비후보 과학자는 얼마나 되나요.

류현진의 ‘LA 다저스’를 포스트 시즌에서 무너뜨린 ‘STL 카디널스’. 이 팀에 야디에르 몰리나라는 포수가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현역중 최고의 포수로 꼽힙니다. 그가 왜 최고인지는 팀의 에이스 투수인 웨인라이트의 포수별 방어율이 잘 보여줍니다. 몰리나가 공을 받으면 방어율 1.86, 백업포수 피어진스키는 5.11, 크루스는 3.59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벌어지는 것일까요.

야구 전문가들은, 그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보이게 하는 ‘프레이밍(framing)’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합니다. ‘미트질’이라 불리는 프레이밍은 ‘스트라이크존에서 약간 벗어나는 공을 받을 때 미트(포수 글러브)를 미세하게 움직여 마치 존에 들어온 것처럼 보이게 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수동적으로 공을 받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트라이크 존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인 것이지요. 류현진이 등판한 10월 7일 경기, 심판의 오락가락 스트라이크존에 몰리나의 프레이밍이 더해지며 다저스 타자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에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성장통인가요? 문제는 사고가 후진국형이라는 것입니다. 연안 수로를 항해하는 연안여객선이 눈앞에서 침몰해서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환풍구가 무너져 16명이 추락해 숨졌습니다.

‘단통법’이라는 법률이 최근 만들어졌습니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입니다. 소비자와 유통업자들은 유통구조를 개선한 것이 아니라 아예 망쳐 놓았다고 분통입니다. 만들어진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고쳐야 한다고 아우성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허술한 계획이고 안일한 대비를 말합니다. 계획과 대비, 물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현실성이 없다는 게 문제지요. 왜 현실성이 없을까요. 모두 옛날 프레임하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고 상황이 변했는데 우리의 시각과 사고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있는 것에 맞춰 일하는 데는 능숙합니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것, 현재 세상에 없는 것은 눈 밖에 있습니다.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 눈으로 가져오는 것, 우리 눈의 시각을 바꾸는 것, 영점조정이랄까요? 프레이밍을 바꾸는 것이 되겠습니다. 세상이 변한 것만 알지 우리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창의력은 경제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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