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트가드는 더욱 强化되어야 한다
코스트가드는 더욱 强化되어야 한다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10.3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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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은대구 잡이 원양어선 K호의 기관실 화재

1975년 10월 중순, 북태평양으로 은대구 잡이에 나섰던 K호는 당직 기관사 실수로 화재가 발생했다. 배는 침몰하였으나 다행히 선원들은 인근을 순시 중이던 미국 해안경비대[US Coast Guard] 함에 의해 전원 구조되었다.

K호 기관실 화재사건은 지난날의 악몽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필자가 선장을 맡았던 바로 그 배는 연전 만선한 어획물(참치)을 일본 시미즈[淸水] 항에 양륙한 다음 귀로에 똑같은 전과(前科)를 저지른 때문이었다.

발단은 연료 공급용 서비스탱크의 치명적 배치(配置)에 있었다. 배 밑바닥 더블보텀[2중탱크]에 적재된 연료유를 메인 엔진에 공급하려면 1차 모터펌프로 기관실 우측 상단에 매달린 서비스 탱크로 옮겨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넘친 기름이 섭씨 500도도 넘는 배기통(排氣桶)으로 쏟아지면서 그만 불이 붙고 만 것이었다.

화염은 맹렬하여 선내에 비치된 두세 개 소화기로는 역부족이어서 갑판으로 피신한 선원들은 모두 바다로 뛰어들 수밖에 없는 절대절명의 상황에 처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얼굴이 벌겋게 익은 기관장이 달려 나오며 불을 껐다고 소리친 것이다.

“아니 어떻게?”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물은 것은 선장인 필자였다.

나중 안 일이지만, 그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책한 L기관장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판인지라 궁여지책으로 바닷물에 흠뻑 적신 모포로 화염에 휩싸인 서비스 탱크를 덮어씌워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죽음도 불사한 대모험으로, 모포가 용케도 화염 중심부를 정확히 차단한 기적 같은 결과였다. 그 와중에 기관장은 2도 이상의 화상(火傷)을 입었는데, 몽땅 그슬린 머리칼은 흡사 부시맨 꼴이 되어 있었고, 벗겨지고 문드러진 얼굴과 손등 피부는 감자껍질처럼 벗겨져 실로 목불인견이었다.

그렇다면 업종을 바꾸어 은대구잡이에 나선 문제의 K호 역시 똑같은 사고를 당한 게 아닐까. 왜냐하면 대한조선소가 건조한 동형(同型)의 20여 척 가운데 똑같은 사유로 멸실(滅失)된 배가 세 척이나 되었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화재 당시 인근에 미국 코스트가드가 없었다면 선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재론의 여지도 없이 최악의 상황에 처한 선원들을 구조해낸 그들이야말로 국적과 이념을 초월한 해양 파수꾼이자 수호신인 것이었다.

세계 연안경비대의 역할

한국 원양어선 K호 선원들을 구조한 미국 해안경비대는 원래 마약 밀반입과 밀입국자 단속을 목적으로 1790년 창설된 후, 1915년 해안구조대와 합병하면서 오늘의 틀을 갖추었다. 그 역사가 200년도 넘는다.

미국 해안경비대는 원래 항만의 안전확보를 비롯한 해양환경 보호 및 쇄빙활동을 주 임무로 삼았으나, 1942년 항해 및 선박검사, 1949년 항만보안, 1970년 해양오염 방제 업무 등을 떠맡은 데 이어 1976년 어로단속과 1981년 불법이민 단속 업무까지 도맡음으로써 국가안보의 최전선을 지켜 왔다. 그러면서도 1·2차 세계대전 등 유사시에는 육·해·공군 및 해병대에 이은 제5의 전력으로 실전에도 참가했다. 발족 당시에는 교통부 외곽 조직이었으나, 1967년 신설된 운수성으로 소속을 옮겼다.

영국 연안경비대 역시 밀무역 단속과 연안경비를 목적으로 1856년 창설되었는데, 1998년 연안경비청(TCA)과 해양안전청(MSA)을 통합함으로써 지금과 같은 해사·연안경비청(MCA)으로 확대되었다. 구성원 모두 해군사관 출신으로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이름났다.

맥아더 군정에 의해 1948년 5월 1일 창설된 일본 해상보안청(JCA)은 해상에서의 인명과 재물보호 및 치안유지를 주 임무로 삼아 왔으며, 최근에는 수사권까지 행사하면서도 전력증강을 위해 1000톤급 대형 순시선을 10여 척이나 더 건조하고 있다.

예전의 대륙국가에서 해양강국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는 실로 경악스럽다. 지난 해 7월, 종전의 중국해양국(中國海洋局)에다 변방순찰을 담당하던 공안부와 어업관리를 전담하던 농업부 및 밀수단속을 관장하던 해관(海關;세관) 등 4개 부처를 하나로 통합, 막강한 ‘국가해경국(國家海警局)’으로 확대시킨 게 그것. 거기에 함정과 경비함을 계속 취역시키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만도 1998년 이래 경정서(警政署) 산하의 수상경찰국(水上警察局)이 한국의 해양경찰과 유사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주요 연안국(沿岸國)들은 하나같이 자국 해양영토의 수호와 관리를 국가안보 차원 이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오늘의 추세다.

그런데 한국 해양경찰은?

우리나라도 일찍부터 해양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그 파수꾼으로 세계 연안국들처럼 해양경찰(海洋警察)을 선두에 배치했다. 그 역사가 지난 해(2013년)로 어언 60년. 해상경비와 해난구조를 비롯, 오염감시 및 방제활동 말고도 밀수 등 범죄사고 차단 등을 주 임무로 해왔다. 특히 휴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안으로 침투하는 간첩을 소탕한 일과 최근 기승을 부리고 있는 중국선들의 불법조업 단속은 그 업적이 실로 눈부실 정도다. 하지만 지난 4월, 진도 앞바다 세월 호 참사 때 보인 미온적인 대응과 무기력은 온 국민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이에 격분한 박 대통령은 60년 역사의 해양경찰을 해체(解體)하겠다고 발표했다(이 뉴스에 중국 선원들은 만세를 불렀다). 그 안(案)에 따르면 해경을 쪼개어 경비·구조 분야는 국가안전처로, 수사 기능은 경찰청으로 넘기는 한편, 전국 17개 해양경찰서를 해양안전서로 축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해경의 본질적 기능을 전제한 가운데 심사숙고해야 할 당위성을 절감한다. 주변국들이 앞 다투어 코스트가드의 조직과 역할 확대에 국력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3면 바다를 낀 대한민국만 오히려 역행(逆行)하겠다는 게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우는 형국이 아닌가.

대통령 입에서 ‘해체’가 나온 것만으로도 해경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우리의 해양 파수꾼- 대한민국 해경도 사기진작과 함께 오히려 강화(强化)하는 쪽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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