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푸어(Working Poor)의 경제학
워킹푸어(Working Poor)의 경제학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금융영업단장
  • 승인 2009.07.29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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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저축습관은 암만 무서웠습니다. 식구들이 쫄쫄 끼니를 굶더라도 씨나락을 허물어 밥 짓는 것은 생각 밖의 일이었습니다. 헛간에는 씨감자 잘 갈무리해 두었으며 씨옥수수는 처마 밑에 걸어 말려두었습니다. 모두 다음해 농사에 대비하였던 것이지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녁 무렵 밥 지을 때마다 정확하게 한 종지 쌀을 덜어 작은 항아리에 담는 것,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니 고등학교 등록금이다’라고 말하면서 씨익 웃곤 하였죠.

  우리나라의 가계 저축률이 세계 최저수준이라는 놀라운 분석이 나왔습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즉 OECD 주요 국가중 꼴찌에서 네 번째라고 하네요. 내용인즉 올 연말 전망치가 5.1%, 내년에는 최저수준으로 3.1%라고 하니 거의 저축이 없다는 말이나 진배없습니다. 18개 국가 가운데 스웨덴(15.6%)이 가장 높고 스페인(14.1%), 오스트리아(13.7%), 프랑스(13.2%), 독일(12.5%)이 뒤를 이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일본(3.3%), 노르웨이(4.6%), 덴마크(5.0%)입니다.
  내년(2010년)에는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스웨덴이 16.3%로 1위를 기록하고, 우리나라는 3.2%로 일본과 공동 꼴찌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과거 우리나라 가계저축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가계저축률이 20%대에 달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수입의 일정 부분은 무조건 저축을 하는 것으로 알던 시대였지요. 그렇게 모아진 자금이 개발투자로 이어졌고 수출을 통한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후 저축률은 급락했고, 이제 5%대, 그리고 내년에는 3%대로 주저앉습니다.

 총저축률은 30%대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저축률이 10~15%정도, 정부저축률 또한 10% 내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저축은 IMF이후 소극적인 투자와 현금재고를 늘려온 것이 이유이며 정부저축은 국민연금 등 각종 연금의 축적에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문제는 가계저축률이 급하게 낮아지고 있으며 낮아도 너무 낮다는 것입니다. 1988년 IMF 금융위기시 최고수준인 24.9%를 기록했던 것이 십 수 년 사이 사상 최저수준으로 낮아진 데는 당연히 그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빚을 내 집을 사면서 이자내기가 벅차기 때문이겠지요.

 또 사교육이 성행하면서 크게 늘어난 교육비 지출 때문이라는 것,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용은 거의 고정적이어서 쉽게 줄일 수 없다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의 저금리 추세로 저축의 매력이 줄어들었습니다. 게다가 고용여건이 악화되어 실질소득이 감소한 것도 좋은 이유가 되겠습니다.

 사실 저축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국가 경제적으로 투자자금 확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소비를 통한 내수시장 확대라는 면에서는 부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가계 측면에서는 ‘기본적인 저축’은 필수입니다. 저축을 해야 가정경제를 최소한이나마 안정시킬 수 있고 어쨌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기초자산을 형성할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의 쌀 항아리처럼 말입니다.

  가계저축과 관련하여 정말 심각한 문제는 워킹푸어입니다. 워킹푸어(Working Poor), 근로빈곤층으로 번역되는데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부지런한 가난뱅이라고나 할까요. 즉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데도 저축할 여력이 없어 작은 질병이나 실직의 경우 곧바로 절대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는 계층을 말합니다. 직업이라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겠지만요. 언론은 우리나라 워킹푸어가 300만명에 이른다고 말합니다. 

 어떤 워킹푸어는 ‘지난 10년간 하루 6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떤 부부는 ‘매일 오전 10시에 나가 이튿날 새벽 2시에 집에 돌아’온다고 하소연합니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 셋이 밥 먹고 학교 다니면 남는 게 없으니 간신히 생활유지만 될 뿐,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고 토로합니다. 투잡(Two Job)에서 쓰리잡(Three Job)까지, 한마디로 닥치는 대로 일하지만 ‘저축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니 당연히 전체 가계저축률이 바닥 수준일 수 밖에요.

  “공부하는 놈하고 저축하는 놈이 무서운 놈이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입니다. 공부하는 것과 저축하는 것이 왜 무서운 것일까요. 꾸준하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희망, 꾸준한 희망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 그 자체니까요. 

 요새 국회주변 여의도 공원근처는 데모 천지입니다. 당연히 경찰천지이기도 합니다. 가계저축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워킹푸어는 나날이 늘어나는데 ‘미디어법’은 무엇이고 ‘방송법’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 법률들이 우리에게 희망을 갖다 줄까요. 제발 爲政者들은 모름지기 ‘희망만들기’에 보다 더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Working Poor가 Working Rich가 되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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