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주민의 고통, 해양수산행정의 디렘마
태안주민의 고통, 해양수산행정의 디렘마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8.10.30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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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나는 우스갯소리

 명절을 앞둔 어느날 아침. 남루한 차림새의 촌로(村老)가 바닷가 선창에 앉아 항구로 들어오는 작은 고깃배들을 유심히 바라보면서 무언가 혼잣말을 주절거린다. “조상님! 지금 들어오는 저 배에는 도미가 실려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이 잡수십시오. 저기 오는 고깃배에는 문어가 실렸으니 맛있게 잡수십시오. 저 배에 실린 가자미도 잡수시고, 조기도 잡수시고, 싱싱한 광어도 많이 드십시오.”

 얼마 후 저 멀리서 또 한 척의 배가 들어온다. 그 시골노인은 반가운 마음에 또 두손을 모으고 읊조린다. “조상님! 아버님 어머님! 저기 오는 저 배에 실린 것도 마음껏 드십시오. 많이 많이 드시고 새해에는 끼니걱정 없이 잘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촌로는 연신 두손을 비비며 기원한다. 그런데 멀리 있었던 그 배가 선창가로 다가오는데, 아니 이게 웬 일인가? 조금 전에 많이 많이 드시라고 했던 그 배는 고깃배가 아니라 분뇨(糞尿)를 실어다가 먼 바다에 버리고 돌아오는 분뇨 운반선이었으니 이런 낭패가 또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 촌로는 어찌 할 바를 모른 채 머리를 연신 조아리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또 빈다. “조상님! 조상님!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방금 잡수신 것은 몽땅 토해버리십시오.”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사람까지 있었던 시절, 바닷가에 살던 가난한 사람들의 서글픈 명절풍경을 풍자한 우스갯소리에 불과하지만, 설 명절을 며칠 앞두고 시름에 잠겨 있는 서해안 어업인들 생각에 가슴이 아파온다. 철 없던 어린 시절에 포복절도하며 들었던 이 하찮은 우스갯소리가 서해안 어업인들의 절규와도 같이 회상이 되니 이보다 더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태안주민들의 생계대책 시급하다

 태안주민들이 울고 있다.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 정부는 보따리 싸서 떠날 채비에만 급급한 탓인지, 피해주민들에 대한 쥐꼬리만한 지원책마저도 ‘네탓공방’으로 엇박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시·군은 시·군대로 우왕좌왕, 갈팡질팡이다. 558억원의 긴급생계지원자금을 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시·군은 보상기준 조차 정하지 못한 채 서로 네탓 공방만하고 있다는 보도가 줄을 잇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3일 긴급생계지원비 명목으로 300억원을 충남도에 전달했고, 충남도는 지난 1월 21일에 예비비 100억원과 국민성금 158억원 등 총 558억원의 자금을 피해지역 3만여 가구에 지원하라는 공문과 함께 일선 시·군에 내려보냈다. 320억원을 배정받은 태안군을 비롯한 서산, 보령, 당진, 홍성, 서천군 등 6개 시·군에서는 이 돈의 지급기준을 수립하느라 일주일 넘게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정부나 충남도가 긴급생계지원비를 내려보내면서 지급기준이나 지침을 시·군에 일임한 것을 두고 서로 책임회피성 발언만을 쏟아내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이명박 당선인이 지적한 공직사회의 ‘전봇대 현상’을 뼈저리게 느끼게된다.

 홍콩선적의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Hebei Spirit)호가 태안 앞바다에서 사고를 일으킨 날이 지난 12월 7일이니 이지역 어업인들은 두 달 가까이 수입 한 푼 없이 맨손으로 살아왔다는 얘기다. 끼니를 떼우는 일이 가장 절실한 소망이라고 얘기하는 어느 어업인의 절규가 가슴을 저리게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30일경 부터 한집에 적게는 70여만 원에서 많게는 291만 원까지 생계지원비를 지급하기로 했다는데, 형평성 문제 등으로 그 후유증이 어떻게 표출될 지 걱정이 앞선다. 호미나 망태기 하나로 뻘밭을 일구며 살아온 맨손어업인에게는 끼니를 떼울 단 몇푼의 돈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공무원의 애로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졸속하게 처리했다가는 고스란히 책임을 뒤집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져 있을 때는 원칙과 상식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행정편의주의의 유혹에서 벗어나 주민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다.

 

 해양수산행정 재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서해안 기름유출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해양수산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많은 언론들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설상가상으로 새정부의 조직개편안에 해수부 존폐문제가 포함되면서 그동안 해운과 수산의 이질적이고 이기적인 업무때문에 조직 내외에 걸쳐 쌓여왔던 불만과 비판적 견해가 해수부를 더욱 더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초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개월여 동안 해수부가 취한 조치와 사후관리대책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어도 아무런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연말에 개최된「태안유류오염사고 국제전문가 합동설명회」에서 발표된 내용들을 종합해 볼 때 해수부의 초기대응, 환경영향조사 상황, 그리고 생태계복원을 위한 장기계획 등이 비교적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회의에 참석한 유럽위원회, 유엔공동자문단, 유엔개발계획(UNDP)한국대표부, 미국해안경비대, 미국해양대기청 조사단 등, 세계 유수의 전문가들이 발표한 내용들도 상당히 양호했다. 그동안 시민단체에서 위험성을 제기했던 유(油)처리제의 살포문제에 대해서도 초기대응방안으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살포량도 극소량이어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유엔에서 파견된 「올로프 린덴」은 인위적 정화는 2차 오염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정화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면서 생태계가 복원되는 시기를 1~2년, 그리고 미생물까지 완전히 복원되는 시기를 3~4년으로 예측했다. 「린덴」은 석유유출로 인간의 건강에는 큰 영향은 없다고 밝히고 오히려 담배와 자동차 매연이 더 나쁘다고 발표했다.

 수산계의 경우 지난 1년은 악몽과도 같은 한 해였다. 수산업경영도 어려운데 그나마 의지해왔 던 해양수산부마저 해체된다는 소식에 어업인들의 불안감은 더해만 간다. 문민정부시절 수산인들이 그토록 갈구하던 해양수산부가 탄생했을 때 손뼉을 치며 환영했던 일이 생생히 기억 난다. 수산업 중흥시대가 열릴듯이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11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해양수산계는 또다시 엄청난 디렘마(Dilemma)에 빠져들고 있다. 그동안 해양수산계에 팽배했던 조직이기주의가 빚어낸 어처구니 없는 결과에 낙담하지않을 수가 없다. 사회 구성원 각자가 개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다가 공멸(共滅)하고 마는 이른바「커먼즈디렘마」(Commons Dilemma)에 빠져들고 있다는 생각에 착찹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절망해서는 안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마음으로 해양수산행정을 재정립하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고,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겠다고 헛 욕심을 부리다가 뱃속에 든 것을 몽땅 토해야 하는 어느 가난한 촌로에 대한 눈물겨운 우스갯소리가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자중자애(自重自愛)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08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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