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74] 주인 없는 줄 알고 가져가면 절도가 아닐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74] 주인 없는 줄 알고 가져가면 절도가 아닐까?
  • 김민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 승인 2022.11.17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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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삼 특수절도 무죄 사건
김민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김민경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

<여행의 시작>

첫 번째 판례여행인 ‘자연산 개조개 사건’에서 대법원은, 어업권의 취득만으로는 자연적으로 번식하는 수산물의 소유권이나 점유권까지 취득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어촌계는 자연산 개조개를 캘 수 있는 권리가 있을 뿐 자연상태의 개조개에 대해 소유권을 가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자연산 개조개를 몰래 채취해 가더라도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고 수산업법 위반으로만 처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관점에서 절도죄의 인정 여부가 쟁점이 된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이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건에서, A, B, C와 D는 완도, 고흥 일대 해상에서 서식하는 해삼 및 전복을 채취하여 이를 판매한 후 그 수익금을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A는 수산물을 채취하기 위해 타고 갈 선박을 직접 운항하였습니다. D는 관련자들을 모집하여 주도적으로 범행을 계획하고 채취행위에 사용될 준비물을 챙겼으며(산소통 등), 위 선박에 승선하여 주변 동태 파악 및 방향을 정하기로 하였습니다. B와 C는 잠수부로서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잠수하여 손으로 전복 및 해삼을 잡아 가지고 나오는 방법으로 채취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A, B, C와 D는 2021년 1월 12일 저녁 6시경부터 7시 사이 A가 운행하는 선박에 다 같이 승선했습니다. 전남 장흥군 장환항에서 출발하여 고흥군 득량만 일대 해상에 이르렀죠. D는 사전 계획에 따라 주변 동태 파악 및 견시 등을 담당하고, B와 C는 미리 준비된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여 해저에 서식 중인 전복 및 해삼을 채취했습니다. 총 4회에 걸쳐 해삼 약 779.5kg, 전복 약 12.9kg를 채취하였습니다.

이후 2021년 1월 22일 밤 11시 57분과 익일 밤 11시 29분 경까지 다시 같은 방법으로 총 2회에 걸쳐 해삼 약 190kg, 전복 약 5.1kg을 채취하였습니다.

검찰은 A, B, C에 대해 주위적으로 특수절도를, 예비적으로 수산업법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기소하였습니다.

A, B, C는 해삼 등을 채취한 장소가 어촌계 공동어장임을 알지 못했다면서 특수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였습니다.

 

<쟁점>

주인이 없는 줄 알고 가져가면 절도가 아닐까요?

 

<법원의 판단>

3. 관련 법리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8. 8. 21. 선고 2007도8726 판결 등 참조).

4. 구체적 판단

이 법원에서 적법하게 채택·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의 사실 내지 사정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들 A, B, C가 어촌계 공동어장임을 알고 채취행위를 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가. 피고인들을 모집하여 이 사건 수산물 채취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채취에 사용될 산소통을 준비하고 선박에 승선하여 주변 동태를 파악하고 방향을 정하는 역할은 D가 하였다.

나. D는 피고인들에게 공유수면에서 수산물을 채취한다고 말하였다.

다. 피고인들은 채취작업을 한 고흥, 완도 바다에 처음 온 것이었다.

라. 피고인들과 D는 자신들의 행위가 수산업법을 위반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해가 진 이후나 한밤중에 채취행위를 하였고, D는 최소한의 조명을 켜고 운항하였다.

마. 피고인들과 D는 한 번 운항하면서 장소를 옮겨 다니면서 채취를 하였다.

바. 어떤 채취는 앞선 채취 종료 시각으로부터 불과 2분가량 후에 다시 채취가 시작되기도 하였다.

사. 채취 당시 바다에 마을 어장임을 알 수 있는 표지는 존재하지 않았다(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 2022. 1. 20. 선고 2021고단22 판결).

 

<판결의 의의>

과실범죄가 아닌 일반 형사범죄에서는 행위자에게 ‘고의’가 인정되어야 처벌을 할 수 있습니다. 절도죄가 인정되려면 다른 사람의 재물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의 재물과 같이 이용·처분하려는 의사가 있어야만 절도의 고의가 인정됩니다.

또한, 형사 처벌은 가장 중대한 제재이기 때문에 대법원은 ‘유죄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증거에 의하여야 하므로, 그러한 증거가 없다면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설령 어느 정도 절도죄의 고의가 있었을 것 같더라도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도 A, B, C가 야간에 이런 작업들을 능숙하게 수행한 것을 보면 일견 어촌계 공동어장임을 알 수 있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주동자인 D가 채취장소가 공유수면이라고 얘기하였고, 초행지에서 야간에 옮겨가면서 채취를 하였기 때문에 A, B, C가 실제로 공유수면이라고 믿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것입니다.

이 사건의 재판부 역시 그런 가능성이 있어, A, B, C가 채취한 해삼이 주인이 없는 것으로 오해했을 수 있고 그렇다면 절도의 고의가 없으므로 무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여행을 마치며>

이 사건에서 A, B, C가 특수절도죄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고 하여 누구나 쉽게 절도죄의 고의를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A, B, C는 여러 정황상 절도죄의 고의를 부인할 만한 증거가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함부로 고의를 부정하면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오히려 재판부가 뉘우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더 무거운 형을 부과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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