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 지켜온 선각자들 제11회
쪽빛 바다 지켜온 선각자들 제11회
  •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8.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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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부 어민이 주인임을 증명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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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1995년 5월 초순, 박종식 거제조합장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의외에도 김영삼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 옹으로부터였다. 옹은 거제시 장목면 대게마을에서 모두 열 척 가까운 배를 보유한 가운데 평생토록 수산업에 종사해온 멸치어업의 대부였다.

근대 이전까지 멸치는 연근해어업의 대표 어종으로, 가령 소금으로 버무려 삭힌 과정을 거친 젓갈은 ‘밥도둑’으로 불릴 만큼 서민 밥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할 만큼 선호되었고, 건멸치는 국을 끓일 때 몇 마리씩만 넣어도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우러나게 하는 신비의 천연 조미료여서 그 수요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문민정부 시대를 연 YS(김 대통령 애칭)는 명절 때면 고향의 부친이 잡고 가공하여 보내준 멸치를 두루 선물하여 사람들은 이를 ‘YS 멸치’라 부르면서 더욱 친근해졌다.

박 조합장 역시 이웃마을인 일운면 지세포에서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멸치어장을 경영하며 관내 어민들의 구심체인 거제수협을 이끌어오던 참이었다.

“아이구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박 조합장이 그처럼 황송해 한 것은 옹의 아들(YS)이 2년 전부터 이 나라 최고 통치자인 14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당시 40대 중반이던 박 조합장은 어언 아흔 살을 바라보면서도 평생 직업인 멸치어장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아버지뻘 이상으로 흠모하고 있은 때문이었다.

“박 조합장,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 시간 좀 내주소.”

“네, 잘 알겠습니다.”

박 조합장은 하던 일을 젖혀두고 한달음에 마산으로 내달렸다. 당시 김 옹은 사재를 털어 십자가를 매단 수정교회 원로장로여서(옹은 모두 다섯 개의 교회를 지었다) 그곳 가까운 마산의 구산면에 머물고 있었다.

응접실에 앉자마자 김 옹이 거두절미로 말했다.

<이하 내용은 월간 현대해양 2014년 9월호(통권 533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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