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부 어민이 주인임을 증명한 회장
1
근대 이전까지 멸치는 연근해어업의 대표 어종으로, 가령 소금으로 버무려 삭힌 과정을 거친 젓갈은 ‘밥도둑’으로 불릴 만큼 서민 밥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할 만큼 선호되었고, 건멸치는 국을 끓일 때 몇 마리씩만 넣어도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우러나게 하는 신비의 천연 조미료여서 그 수요가 가히 폭발적이었다. 특히 문민정부 시대를 연 YS(김 대통령 애칭)는 명절 때면 고향의 부친이 잡고 가공하여 보내준 멸치를 두루 선물하여 사람들은 이를 ‘YS 멸치’라 부르면서 더욱 친근해졌다.
박 조합장 역시 이웃마을인 일운면 지세포에서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멸치어장을 경영하며 관내 어민들의 구심체인 거제수협을 이끌어오던 참이었다.
“아이구 어르신, 그간 안녕하셨는지요?”
박 조합장이 그처럼 황송해 한 것은 옹의 아들(YS)이 2년 전부터 이 나라 최고 통치자인 14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당시 40대 중반이던 박 조합장은 어언 아흔 살을 바라보면서도 평생 직업인 멸치어장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아버지뻘 이상으로 흠모하고 있은 때문이었다.
“박 조합장, 긴히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 시간 좀 내주소.”
“네, 잘 알겠습니다.”
박 조합장은 하던 일을 젖혀두고 한달음에 마산으로 내달렸다. 당시 김 옹은 사재를 털어 십자가를 매단 수정교회 원로장로여서(옹은 모두 다섯 개의 교회를 지었다) 그곳 가까운 마산의 구산면에 머물고 있었다.
응접실에 앉자마자 김 옹이 거두절미로 말했다.
<이하 내용은 월간 현대해양 2014년 9월호(통권 533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현대해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