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몰아내는가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몰아내는가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금융영업단장
  • 승인 2009.06.15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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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북한산엘 갔더랬습니다. 하늘구름은 빗방울을 머금었고 바람은 시원하였으며 초목들 틈으로 아카시는 가지가 찢어지도록 쌀밥 보리밥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간간히 비가 뿌렸지만 등산하기에는 참으로 좋은 날씨였습니다. 구파발에서 대남문을 향하여 한창 산을 오르던 중 가슴 벌렁거리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실족사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서거하였다는 더욱 충격을 주는 뉴스에 발을 헛디딜 뻔하였습니다.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임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후의 사진입니다. 사진속의 대통령은 잠바를 입고 동네 슈퍼에 들러 담배를 꼬나물고서 불을 붙이기 직전입니다. 무심한 표정이 한가로워 보입니다.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진도 있습니다. 자전거 뒤에는 유모차가 달려있고 그 안에는 어린아이 둘이 타고 있습니다. 페달을 눌러 밟는 대통령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 결혼한 딸이 딸이라도 데리고 온 모양입니다. 담요를 둘러쓰고 어린애 앞에서 수퍼맨 흉내를 내는 사진도 있고, 입을 쩌억 벌려 웃으면서 밤송이 따는 사진도 있습니다.

 


 돈에 관하여 재미있는 법칙이 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가 그것입니다. ‘구축하다’는 말은 몰아낸다, 쫓아낸다는 뜻의 한자말입니다. 이는 16세기 영국의 금융가였던 그레샴(Thomas Gresham)이 제창한 것으로, "Bad money will drive good money out of circulation."이라는 원말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당시 영국의 화폐는 금, 은 등의 실물화폐로 그 주조권을 영주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폐가 실물가치이기 때문에 영주가 마음먹은 대로 무한히 주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금의 함유율을 낮추어, 즉 금에 구리를 섞은 금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짝퉁금화를 만든 것입니다. 불량한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이것을 그리셤은 악화라 하고 순금화를 양화로 불렀습니다. 이리하여 시장에선 점점 악화만 존재하게 되었고 결국 사회적 소요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금화가 은화에 밀려나는 것이 아닙니다. 금화나 은화 모두에게 악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상품에 있어서 가격은 같으나 품질에서 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경쟁에 의해 품질이 우수한 것이 열등한 것을 제거하게 됩니다. 그러나 화폐에 있어서만큼은 그와 반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 바로 그레샴의 주장이었습니다.


 악화가 양화를 몰아낸다는 이 화폐법칙은 인간사 여러 부문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가장 많게는 소위 명품에서 자주 보이는 짝퉁이 그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짝퉁 물건 하나 없는 사람 없다고 할 정도이니 짝퉁인 악화에 대한 선호, 알만 합니다. 전자상거래 분야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쇼핑몰 사이트에 게재된 이미지와 다른 상품을 배송한다든가, 대금결제를 받은 후 사이트를 갑자기 폐쇄하고 잠적하는 등의 좋지 않은 사례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안 좋은 시각들이 정상적인 좋은 사이트에 대한 인식마저 좋지 않게 만들어 버릴 위험이 있습니다.

 정치 분야에서 이 법칙은 더욱 돋보입니다. 모략과 술수, 그리고 거짓말에 능한 정치인이 유능하며, 진실하고 정직한 정치인을 몰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재된 능력과 성품보다도 겉으로 드러난 포장된 경력, 외양에 현혹되어 악성 정치인을 선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은 현명하나 대중은 어리석다'는 어느 정치학자의 말처럼 선거 때만 되면 집단 최면상태에 빠진 듯 그릇된 선택을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가 우리에게는 참으로 많았습니다.

 대통령의 사진중 제일 재미있는 사진은 이것입니다. 조그마한 아이에게 과자를 집어 주는 척 하다가 자기가 홀랑 먹어버리고는 “왜, 약 오르지?“라고 말하는 듯한 사진입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고 아이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참으로 소박하고 진솔한 장면입니다. 사진에는 없지만 아마 다음 장면은 계면쩍게 웃는 대통령의 얼굴 클로즈업이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대통령이 양화이고 다른 사람들은 악화라는 것, 당연히 아닙지요. 그러나 양화중의 양화라 할 만한 분이 구축된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애석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서 빨리 데려간다는 말, 실감하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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