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TPP’ 체결 임박··· 수산업 보호책 절실
‘CPTPP’ 체결 임박··· 수산업 보호책 절실
  • 정상원 기자
  • 승인 2022.01.0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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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보조금’,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협상 복병
2021년 5월 울릉군 앞바다에서 어업인들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 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해상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제공_울릉군)
2021년 5월 울릉군 앞바다에서 어업인들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방출 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해상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제공_울릉군)

[현대해양] 한국이 회원국 간 관세를 면제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있으나 수산 분야 대책은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수산단체들과 전문가들은 CPTPP 협정 체결 전 서둘러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상대적으로 느긋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업계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가 CPTPP 가입을 위한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교역·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적·전략적 가치, 우리의 개방형 통상국가로서의 위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고자 한다”며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홍 부총리는 현 정부 임기 내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7일 홍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제 3차 대외경제안보전략회의’를 주재하고 “2022년 4월경 CPTPP 가입신청서 제출을 목표로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CPTPP의 관세철폐율(자율화율)이 너무 높아 수산업계의 큰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발행한 ‘CPTPP 발표에 따른 국가별 반응 및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CPTPP 가입국은 농산물의 95% 이상, 수산물에 대해서는 100% 관세를 철폐했다. 이에 우리나라가 CPTPP에 가입할 경우 수산분야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CPTPP’란

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는 일본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11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협정국간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됐다. 우리나라는 11개 회원국과 교역을 늘려 무역 영토를 확대하기 위해 가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CPTPP는 2015년 미국의 주도 하에 타결됐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한 TPP 협정의 12개국 경제규모는 세계 GDP의 37.4%를 차지했는데, 이를 당시 추진되고 있던 RECP(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이 세계 GDP의 31.3%를 차지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보더라도 ‘메가’ 급 규모의 자유무역협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2017년 1월, 미국이 TPP 협정에서 빠지면서 일본의 주도로 환태평양지역의 11개국이 CPTPP 출범을 함께 추진하게 됐다. 한국은 부처 간 합의를 도출해 가입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결국 결정을 보류했고, 2018년 말 한국을 제외한 11개 국가가 CPTPP라는 다자간 FTA에 참여하게 됐다. 현재 CPTPP에는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부르나이,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페루, 칠레가 가입돼 있으며 최근 영국, 중국, 대만 등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1월 발표한 ‘CPTPP의 미래와 우리의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CPTPP 참가국의 무역 규모는 전 세계 무역액의 15%인 5조 7,000억 달러에 달하며, 11개국의 GDP(국내총생산)는 전세계총생산의 13%인 11조 2,000억 달러를 차지한다. 2019년 기준 CPTPP 11개 회원국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전체 수출의 23.2%를 차지하는 1,260억 달러, 수입은 전체의 24.8%에 해당하는 1,249억 달러다.

 

17개 FTA와 RCEP, 그리고 CPTPP

우리나라 수산분야는 농업분야와 달리 일찍이 세계의 시장경쟁체제에 속해왔다. 지난해 4월 발표된 해양정책연구 제36권 제1호 ‘주요 수입 수산물이 국내산 수산물 가격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 따르면 1994년 서명된 우루과이 라운드 최종의정서에서 수산물은 1998년부터 수입자유화(관세화)가 단행됐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부터는 수산물 관세 인하에 대한 의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됐으며, 2004년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를 개시한 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26개국과 17건의 FTA를 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국내 어업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내보완대책을 수립하고 수산물 생산자에게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에 타결된 RCEP 협상에서는 민감품목에 속하는 새우, 오징어, 돔, 가리비, 방어 등의 수산물에 대해서 현행 관세를 유지하고 기존에 체결됐던 FTA 수준으로 시장개방을 최소화하는 등 국내 수산업에 대한 피해를 줄이고자 했다.

그러나 CPTPP는 올해 2월부터 발효되는 RCEP보다도 개방 폭이 크다. 한국이 가입한 첫 메가 FTA인 RCEP의 경우 관세 철폐 품목 비중을 뜻하는 개방률은 85%대로 낮은 편인데 반해 CPTPP 회원국 간 개방률은 95~100%로 상당히 높다. 국가별 관세 양허 수준을 보면 일본 95%, 베트남 97.9%, 멕시코, 말레이시아, 호주 등이 99% 이상, 뉴질랜드,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이 100% 수준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서 발언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제공_기획재정부)
지난해 12월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에서 발언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제공_기획재정부)

 

가입 복병으로 떠오른 ‘수산보조금’

수산업계는 RCEP보다 수준 높은 FTA인 CPTTP가 체결될 경우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수산보조금 협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CPTPP 협정문 환경 챕터에는 남획과 과잉생산에 기여하는 수산보조금 지급을 규제하는 방안이 담겨있다. 불법어획, 과잉어획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어왔기 때문이다. CPTPP는 과잉어획에 대한 기준을 ‘최대지속가능생산량(Macimum Sustainable Yield)’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획량을 제한해야 하는 어종으로 규정하고 남획을 야기하는 특정 유형의 어업 보조금 제공 등은 ‘구속성(拘束性)’ 조항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수산보조금을 가장 많이 주는 5개 국가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보조금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우리나라 수산보조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어업 면세유 지원금의 경우 6,000~7,000억 원에 달한다. 김성호 한국수산업경영인중앙연합회장은 “RCEP보다 개방의 문이 큰 CPTPP가 체결될 경우 면세유 등 보조금이 사라질 우려가 있으며, 만약 수산보조금 금지로 이어진다면 수산업 전체가 위태로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FTA 체결 이후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 수산업은 어가 경영비 증가 등으로 가격 경쟁력이 약해졌으며, 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약화됐다. 수입산 수산물은 관세감축에 의해 가격 경쟁력 뿐만 아니라, 품질 경쟁력을 갖춰 국내시장을 잠식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에 김도훈 부경대학교 해양수산경영학과 교수는 “CPTPP 협정문이 보조금 문제를 명확히 짚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면세유나 영어자금 등의 수산보조금이 ‘부정적 보조금’으로 규정될지 말지가 논의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시행해 온 수산자원관리의 성과로 수산보조금을 일정부분 유예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우려되는 부분은 수입산 수산물 시장 개방과 수산보조금 문제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CPTPP 체결을 요구할 경우 주도국인 일본이 우리나라에 많은 양보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호 회장은 “일본이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후쿠시마산 수산물 개방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 후쿠시마산 수산물이 수입될 경우 우리 국민들은 수산물 자체에 불신이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다.

 

피해 대책 세우기엔 이미 늦었다?

수산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해양수산부는 “아직은 논의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양수산부 해양정책실 관계자는 “가입 검토 단계이다 보니 지금으로서는 예상 정도밖에 할 수 없다. 영향분석도 가입 이후에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CPTPP 협약의 규모가 크다보니 수산업계 피해 규모 수치가 정확히 얼마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계부처, 업계와 협의해 대응책을 마련해 나가겠다”라고 답했다.

다만,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리나라의 CPTPP 가입이 급물살을 탔지만 수산업계가 대응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김도훈 교수는 “수산분야 규모가 워낙 작다 보니 우리나라 정부가 CPTPP 협약에 가입한 이후 수산을 사후적으로 관리할까 우려된다. 수산보조금을 폐지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경우 정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할지 내놓은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CPTPP 협정 가입을 위해 수산분야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TPP 협정 가입 여부를 고민하고 있었던 2015년부터 해양수산부는 이와 관련된 수산보조금개편 방안 연구 용역을 꾸준히 발주해 왔으나 결과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발표한 바 없다. 최근 개최된 수산계 정책 방향 회의 역시 비공개로 진행돼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지난해 12월 28일, 산업통상자원부는 CPTPP 추진 관련 통상, 외교, 수산, 농림 등 각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화상으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의제는 ‘CPTPP 가입 추진동향 및 향후 정책 방향’으로 수산 전문가로는 김봉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종덕 해양수산개발원(KMI) 원장 등이 참석해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봉태 교수는 “CPTPP 가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내용을 공개하기는 어렵다. 대외비로 용역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으며, 김종덕 KMI 원장 역시 “정부의 동의 없이는 회의 내용을 알릴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와 관련 산자부 관계자는 “회의 내용은 비공개로 모두 발언 정도만 공개하고 있다”며 “간담회가 각 업계의 입장을 들어보는 수준으로만 진행됐기 때문에 따로 해줄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김도훈 교수는 “우리나라 수산업계에 미칠 피해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상황에서 수산보조금 지급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등 정책이 급변할 경우 수산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우려했다.

이에 반해 CPTPP 가입으로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김봉태 교수는 “CPTPP 협정문에 따르면 과잉어획에 대한 보조금 지원을 못하게 규정하고 있기는 하나 그 문구가 명확하지는 않다”며 “대신 우리나라가 수산자원관리를 위해 시행 중인 TAC, 수산물 어획 체장 제한 정책 등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협상이 가능할 수 있다. (가입 협상 단계에)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짧게 언급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바이든 시대 국제통상환경과 한국의 대응전략’ 보고서를 통해 “CPTPP 제20장은 면세유와 같은 연료보조금의 경우 금지 보조금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연료보조금에 대해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보고서는 시장개방 역시 CPTPP의 관세 철폐 수준은 한국이 맺은 기존 FTA와 유사한 수준이기 때문에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민감한 농식품분야의 경우도 CPTPP를 주도한 일본의 관세철폐율(76.2%)이 한국의 기존 FTA 자율화율(78.4%)보다 낮은 데다 CPTPP 가입국 중 한국과 FTA를 맺지 않은 나라는 멕시코가 유일하다고 분석했다.

 

수산단체, 수산업 보호책 마련 촉구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어업인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성호 회장은 “수산보조금 협상이나 CPTPP 가입 등이 국내 수산업에 미칠 충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회장은 “특히 어촌은 고령화와 인구소멸이 심각한 상황이기에 후계인력 양성,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보조금 등을 고려한 획기적인 대책마련을 통해 수산업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본다. 수산업 보호책을 충분히 마련한 후에 CPTPP 가입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정현찬 농어업특위 위원장은 “CPTPP 가입 시 수산분야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 농어업특위의 역할에 맞게 수산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데 힘쓰겠다”며 “또 대안을 정책화해 담당부처가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힘을 실었다.

수산업계의 의존도가 높은 수산보조금 폐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정부는 CPTPP 가입 피해 우려에 대한 정보 공개를 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수산업계는 CPTPP 가입 이전 정부의 수산업 보호책 마련과 친절한 설명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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