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비데오에서 온 전화
몬테비데오에서 온 전화
  • 천금성 본지편집고문/소설가
  • 승인 2014.07.31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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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금성 본지 편집고문/소설가
반가운, 혹은 그렇지만도 않은

지난 6월, 한 통의 낯선 전화를 받았다. 맨 앞에 ‘+’ 기호가 붙어 있고, 그 뒤로 열세 개나 되는 숫자가 이어진 번호였다.

누군가 싶어 수신 버튼을 눌렀더니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 이윤길입니다.”

지난 4월 본 페이지에서 필자는 <李 선장의 화려한 변신>이라는 제목으로 북태평양 꽁치잡이배 선장이었던 이윤길(李允吉) 씨가 30년도 넘는 원양출어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 ‘국제과학옵서버’라는 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소개한 바 있다.

그 글에서 필자는 별로 귀에 익지 않은 그 직종(職種)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었다.
- 무분별한 남획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생물의 보호를 목적으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회(CCAMLR) 등 관련국들의 협약에 따라 자격 요건을 갖춘 전문 조사관이 일선 조업선에 직접 편승, 현장 실태를 조사·보고하는 해양 파수꾼.

그 달 책자가 나오기도 전에 이(李) 파수꾼은 곧 사조산업(思潮産業) 소속 ‘오양 75호’에 편승, 지구 반대편인 남대서양 포클랜드 어장으로 향발했었다.

1,500톤급 트롤선인 오양 75호는 지난 10여 년간 알류샨 열도 인근에서 우리의 귀에 익은 북양명태 잡이로 명성을 떨쳤으나 수년 전 사적(社籍)을 바꿈으로써 지금은 세계 최대 선단규모를 자랑하는 사조산업 소속선이 되어 있었다.

한 달 후, 포클랜드 어장에 도착한 오양 75호는 곧 500미터 깊이에 회유하는 심해 오징어를 대상으로 조업을 개시하였는데, 그로부터 두 달 후인 5월말 벌써 두 차례나 만선(누계 3,000톤)을 이루면서 급속냉동으로 선도 만점인 그 어획물을 한국으로 가는 운반선에 실어 주었고, 연료보충을 위해 잠시 우루과이 수도인 몬테비데오 항에 기항하고 있다는 게 이 옵서버의 전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매년 3월부터 6월 말까지의 4개월간이 남대서양의 오징어 성어기인데, 포클랜드 어장은 그만큼 호황의 연속이라 한다.

현재 남대서양에는 30여 척의 한국선이 출어 중인데, 5월말까지 무려 15만 톤 이상을 어획하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75% 이상의 풍어를 기록하고 있다며, 어기종료 때까지는 20만 톤 이상의 어획도 가능하여 업계를 흥분시키고 있다는 것.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내 연근해에서도 6월 현재 3만5천 톤 이상을 어획하였을 만큼 호조세여서, 여기에 포클랜드 산 오징어까지 전량 국내로 반입되면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은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어서 업계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래서 한국원양산업협회는 미리부터 소비촉진을 위해 오징어의 뛰어난 맛과 풍부한 영양가를 홍보하는 한편, 보다 맛있게 먹는 요리법의 시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어쨌거나 李 옵서버의 항해보고는 필자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흔치 않은 항해 체험에다 아름다운 항구 구경까지 하고 있으니, 해양작가의 한 사람인 그로서도 행운이 아닌가 해서였다.

예로부터 몬테비데오는 필자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던 동경(憧憬)의 항구였다. 향료 본산지인 몰루카 제도로 가기 위해 빠른 항로를 택한 마젤란이 난데없이 나타난 육지(남미 브라질 해안)를 보고는 부득불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는데, 남위 35도선의 라플라타 강 어귀에서 봉긋 솟아오른 언덕을 보고 ‘나는 산을 보았다’는 뜻의 ‘몬템 비데오(Montem Video)’라는 소회를 항해일지에 남김으로써 오늘의 지명(地名)이 되었다는 그 항구는 <작은 파리>라 불릴 만큼 미항(美港)으로도 손꼽히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이 엉뚱했다.

“아이구, 골치가 제법 아픕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한국 원양선에 대한 세계인의 질시

여기에서 우리들은 ‘불법 조업국(不法操業國)’이라는 낯선 용어(用語)를 접한다.

근래, EU(유럽연합)는 세계해양 환경의 보존과 유지라는 명목으로 유별난 행동에 나섰다. 남태평양에 즐비한 산호초를 포함한 고래와 상어 등 모든 해양생물들을 멸종의 위기에서 구해낸다는 명분으로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 Peace) 못지않은 칼을 빼어든 게 그것. 그 조치의 하나가 각국 조업선들의 어획 쿼터량(할당량) 준수여부의 감시인데, 행여 1톤이라도 초과할 경우 소속국 전체에 대해 일체의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한편 항만 이용까지도 제한하는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하고 있어서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EU는 최근(7월) 한국에 실사단을 보내 마지막 조사에 착수한 상태이고, 따라서 조만간 최종적으로 불법 조업국 여부를 판가름낼 것으로 예고되고 있는 상태. 만약 한국이 낙인찍히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면, 연간 1억 달러 상당의 대(對) 유럽 수출 길도 막힐뿐더러 나라 체면에도 심대한 오점을 남기게 되어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그 상황에서 오양 75호로서는 이윤길 옵서버의 편승이 눈엣 가시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선내 위성전화도 빌리지 못해 소식이 늦었다면서, 현지에서 구입한 전화카드로 겨우 어려운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오양 호 선원들을 나무랄 수도 없는 일. 그들이나 李 옵서버 모두 자랑스러운 한국의 수산인인 것을.

이에 필자는 한 가지 반론(反論)을 제기한다.

비록 EU로부터 달갑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지만, 그건 지난날 미국 코스트가드처럼 한국인 어부들의 뛰어난 어로기술과 뜨거운 조업의욕을 시샘하는 견제와 재 뿌리기가 아니냐는 게 그것. 만약 한국 어부들의 고기잡이 기술이 미미하고, 조국의 명예를 걸고 이역만리 먼 바다까지 나온 만큼 기필코 만선으로 보답하자는 뜨거운 열정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처럼 세계 최고 수산대국으로 우뚝해 있을 것인가 하는 반론이 그것이다.

수산입국! 해양입국! 대한민국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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