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를 다시 읽다
<어린왕자>를 다시 읽다
  • 이준후/시인, 산업은행 부장
  • 승인 2014.07.3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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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후/산업은행 부장, 시인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흠... 글쎄.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
소설 <어린왕자>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소설속의 話者인 ‘나’가 사막에 불시착한 지 8일째 되는 날, ‘어린왕자’가 지구에 온 지 1년에서 하루를 남겨놓은 날입니다. 둘은 다음 날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그 날은 지구에서 ‘어린왕자’의 별이 보이는 날입니다. ‘나’는 ‘어린왕자’가 죽을 것을 감지하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나 ‘어린왕자’는 말합니다. 자신은 죽은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성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그리고는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납니다, 아니 자기 별로 돌아갑니다.

‘어린왕자’가 사하라사막에서 모래 속으로 사라진 날 이후, 그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고향인 소혹성 B-612로 돌아갔다고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밥나무 아래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랬던 ‘어린왕자’가 1999년 여름 프랑스 파리에 나타납니다.

사하라사막은 아프리카 말리와 리비아에 걸쳐 있습니다. 그 사막을 이동하면서 유목생활을 하는 투아레그라는 부족이 있었고, 그 부족의 한 가족에게는 ‘무사 앗사리드’라는 호기심 많은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이 열 세 살 되던 해에 유명한 자동차 경주대회인 ‘파리-다카르 랠리’가 소년의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많은 취재진중 프랑스 여기자가 있었고, 소년은 여기자가 떨어뜨린 책을 주워 돌려줍니다. 소년의 선한 눈망울을 쳐다보던 그녀, 그 책을 소년에게 선물로 줍니다. 책속의 그림들에 매혹된 소년 ‘앗사리드’는 꼭 프랑스어를 배워서 그림 속 꼬마의 이야기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윽고 소년은 아버지를 졸라 날마다 3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어 학교에 다닙니다. 마침내 프랑스어를 깨친 소년이 읽게 된 그 책이 바로 ‘생 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소년은  ‘어린왕자’가 나타났다 사라진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이 자신이 살고 있는 사막의 풍경과 너무나 똑 같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 ‘어린왕자’가 죽는다는 내용을 읽은 소년은 자신과 같은 어린 왕자의 형제들이 아직 사막에 살고 있음을 말해 주기 위하여 프랑스로 가서 ‘생 텍쥐페리’를 만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리하여 스물네 살 되던 1999년, 마침내 여비를 마련해 프랑스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앗사리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 텍쥐페리’가 미소를 지을 것이라고 흐뭇해합니다.

청년이 된 소년 ‘앗사리드’가 ‘생 텍쥐페리’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생 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정찰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됐습니다.

극적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이 투아레그족 청년 앞에 마술과도 같은 문명세계가 펼쳐집니다. 사막의 천막 속 아이들 모두가 함께 잘 수 있을 만큼 넓은 호텔 침대와 마법처럼 열리는 자동문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나무와 꽃, 넘쳐나는 음식에 수없이 감탄합니다.

하지만 그처럼 많은 것을 가졌건만 문명세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음을 곧 발견합니다.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을 소중하게 음미하지 못한 채 앞만 보며 달려가는 문명인, 이웃과 단절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도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기적으로 가득 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잃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힘들고 거친 생활이지만 사막에는 이웃들과의 깊은 유대가 있었고, 친구들과의 유쾌한 놀이며 사소한 걱정들을 주고받았습니다. 나이든 어른들로부터는 지혜를 배웠고 슬프게 아름다운 하늘은 몇 시간이고 명상하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동무들은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누구도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파리에서 청년 ‘앗사리드’는 금방 사막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눈부신 모래언덕이며 서로 마음을 나누는 진심, 진정한 마음들이 사무쳐 왔습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매우 간단한 거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법이야.“
사막에서 사라지기 전 ‘어린왕자’가 한 말입니다.

말(言)만 많은 세상입니다. 失言과 虛言, 戱言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진정성이라곤 조금도 없습니다. 사막 같은 시절, ‘어린왕자’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 여름, 「어린 왕자」를 다시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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