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K-해양생물다양성, 세계 최고를 말한다
③ K-해양생물다양성, 세계 최고를 말한다
  • 김종성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승인 2021.11.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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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김종성 서울대학교 교수

[현대해양] 2015년 홍콩대에서 열린 ‘국제해양생물다양성학회-2015’ 때 필자는 우리나라 해양생물다양성이 우수하다는 근거로 2010년 아일랜드 학자가 보고한 ‘세계해양생물센서스’ 연구논문을 언급했다. 우리나라 해양생물 종수가 9,900종, 단위면적당(1,000km2) 종수는 32.3종으로 해당 지수에서 세계 1위로 보고된 논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해양생물다양성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고, 해양수산부도 2013년 우리 연안의 해양생물다양성이 세계 최고임을 주장할 때 인용했던 자료다.

 

아쉬움, 고백, 다짐, 그리고 K-해양생물다양성의 서막을 열다

그런데 위 논문에서 한국의 해양생물 종수에 대한 근거는 학계에서 일반적으로 공식 인정하는 연구논문이 아닌 ‘개인교류(Personal communication)’로 표시돼 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해역에 대한 해양생물 종 목록(혹은 종수)이 국제학계에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우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우리나라의 우수한 해양생물다양성이 국제사회에 처음 소개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홍콩학회에서 바로 그 아일랜드 학자와 나란히 기조강연을 했던 필자는 우리 논문으로 한국의 해양생물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했음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때의 아쉬움을 발판 삼아 필자는 우리나라 바다의 생물다양성을 우리 자료로 증명해야겠다고 다짐했다.

2014년 필자는 해양정책 분야 국제학술지인 ‘해양·연안관리(Ocean and Coastal Management)’에서 발간한 ‘한국의 갯벌’ 특별호 작성을 주관하면서 우리나라 서해 갯벌의 대형저서무척추동물(624종) 다양성이 세계적 수준임을 알렸다. 2017년에는 독도 연안의 대형저서무척추동물(578종) 다양성이 서해 갯벌에 버금간다는 사실을 전 세계 학계에 보고했다. 특히 독도의 해양생물상이 우리나라 동해 바닷가와 유사하고, 일본과는 다름을 밝히고 ‘생물주권’을 강조했다. 우리나라 해양생물다양성이 세계에서 으뜸간다는 ‘K-해양생물다양성’을 표방한 것이다.

기회는 온다! 우리 바다의 해양생물다양성 세계 최고 입증

우리나라 바다의 우수한 해양생물다양성을 세계학계에 소개하면서 자긍심이 늘어남과 동시에 우리의 연구논문을 더 많이 알리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마침 2019년 홍콩에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제9회 ‘국제해양오염생태독성학회(ICMPE-9)’에서 필자는 태안 유류오염사고로부터 우리나라 해양생태계가 빠르게 회복되었다는 내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 당시 좌장이었던 영국 사우스햄튼대학교 스티븐 호킨스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해양생태계와 생물다양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강연을 듣고 난 호킨스 교수는 자신이 총괄편집장을 맡고 있는 ‘해양학·해양생물학 리뷰(Oceanography and Marine Biology Annual Review: OMBAR)’에 한국의 해양생물다양성에 대한 총설논문(리뷰)을 써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OMBAR는 1963년에 창간되어 매년 1회 발간하는 저널로서 당시에 우리나라 저자가 한 사람도 없었으며, 해양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저널로부터 초청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기뻤다.

호킨스 교수의 제안을 받은 지 2년이 경과한 지난 10월, 마침내 논문이 출간됐다. 논문의 제목은 ‘한국의 해양생물다양성’이다. 지난 50년간의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모든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을 전수 조사하고 재검토하여 우리나라 해양생태계 및 해양생물다양성 연구를 총망라했다. 우리나라 해역을 총 38개(서해 16지역, 남해 10지역, 동해 12지역)로 구분하여 종 목록과 종 분포를 지도에 알기 쉽게 제시했다. 129개에 달하는 연구논문을 일일이 검토하고 정리하느라 2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과를 내놓고 보니 뿌듯했다. 지난여름, 내년 1월 홍콩에서 열리는 ‘국제해양생물다양성학회-2022’에 다시 기조강연자로 초청됐는데, 이번 연구논문을 주제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후회 없이 우리나라 바다가 해양생물다양성 천국임을 우리 자료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

우리 바다가 품고 지켜낸 우리 생물

이번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바다의 대형저서무척추동물 생물다양성을 17개 문(phylum)에 속하는 1,915종(연체동물문 670종, 환형동물문 469종, 절지동물문 434종, 극피동물문 79종, 그 외 분류군 263종)으로 정리했다. 조하대(1,326종), 조간대(875종), 하구(244종)에서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있었으며 특히 우리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깊은 바다에서도 매우 다양한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이 살아가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조간대와 하구 갯벌에서 출현한 종수를 합하면 약 1,000종인데 이는 2020년에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770여 종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번 연구가 가지는 시사점은 아주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서해, 남해, 동해를 구분해서 대형저서무척추동물의 종 목록과 종 분포 지도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서해와 동해는 각자의 고유한 종이 많이 살고 있으며, 남해에는 이 종들이 섞여 있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것이 남해(1,103종)에서 대형저서무척추동물 출현종 수가 서해(829종), 동해(621종)와 비교해 월등히 높게 나타난 이유이다.

분류군(생물의 종류) 관점에서 볼 때도 서해, 남해, 동해에서 출현하는 상위분류군(문 수준)의 종류가 대체로 해양환경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갯벌이 잘 발달한 서해에서는 갯지렁이가 속하는 환형동물문(316종)과 게를 포함하는 절지동물문(219종)의 종수가 가장 많았다. 남해는 갯벌과 함께 암반 조간대와 섬 생태계가 고루 발달하여 고둥, 조개와 같은 연체동물문(416종)의 종수가 서해(249종)와 남해(190종)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동해의 경우는 말미잘, 산호와 같은 자포동물문(55종)의 종수가 서해(25종)와 남해(51종)에 비해 많았고, 성게와 불가사리와 같은 극피동물문(31종)의 종수도 비교적 많았다.

특히, 세 바다에 동시에 출현한 종은 환형동물문(61종)이 가장 많았고, 연체동물문(19종), 절지동물문(8종), 자포동물문(4종)이 그 뒤를 잇는다. 갯지렁이가 한반도 전역에 고르게 퍼져 서식하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한편, 제주도는 남해와 연결되어 있으나 남해와는 사뭇 다른 종 조성을 보였다. 이는 지리적으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해양생태계는 고립된 채로 진화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K-해양생물다양성

총 38개 해역을 대상으로 생물다양성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우수하거나 보통 이상의 건강도를 보여주었다. 그동안에는 외국학자에 의해, 또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자료로 해양생물다양성을 평가해왔다면 이번 논문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 바다 전체의 해양생물다양성을 처음으로 평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본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와 국외의 해양생물다양성을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된 점도 큰 성과다. 종 수만 놓고 봐도 한국의 1,915종은 유럽 와덴해 400여 종, 영국 연안 530종, 터키 서부 연안 685종, 북태평양 576종, 북극(대륙붕 포함) 2,636종과 비교할 때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해양생물다양성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나라 바다의 우수성과 건강함을 우리 자료로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뿌듯하다.

이제 ‘K-해양생물다양성’으로 우뚝

해양수산부는 2000년대 들어 우리 바다를 가꾸고 우리 생물을 지키는 보호정책을 추진해왔다. 고유종이나 보호 가치가 높은 83개의 생물종을 해양보호생물(혹등고래 등 포유류 18종, 나팔고둥 등 무척추동물 34종, 삼나무말 등 해조(초)류 7종, 푸른바다거북 등 파충류 4종, 가시해마 등 어류 5종, 넓적부리도요 등 바닷새 14종)로 지정했다. 우리 바다의 가치를 훼손하거나 고유생태계를 위협하는 생물은 유해·교란해양생물(별불가사리 등 유해해양생물 17종, 해양생태계교란생물 1종(유령멍게))로 지정하여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지정’만 하고 ‘관리’를 하지 않는 명목상 보호정책은 해양생물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다. 제대로 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해양생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건강한 우리 바다의 해양생태계를 잘 가꾸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려면 해양생물다양성에 대한 기초연구가 지금보다 훨씬 활성화돼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세계학계에 보고되었으면 한다. K-방역, K-팝, K-드라마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이제는 ‘K-해양생물다양성’이 한류의 일원이 되어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바다의 해양생물 보호에 앞장서는 대한민국 해양수산부의 글로벌 리더쉽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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