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물이력제, 계속돼야 하나?
수산물이력제, 계속돼야 하나?
  • 정상원 기자
  • 승인 2021.10.1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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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효성 없는 사업’ 논란

[현대해양]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도입된 수산물 이력제가 무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어 이달 열릴 국감에서 주요 의원들의 뭇매를 면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력 추적이 가능하도록 표시가 돼있는 수산물은 국내 전체 출하물량의 8%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진 지금, 실효성 없는 수산물 이력제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산물 이력제 홈페이지
수산물 이력제 홈페이지

유명무실 사업으로 혈세 누수

수산물이력제는 2008년 처음 도입된 제도다. 수산물의 이력정보를 소비자에게 공개함으로써 수산물을 안심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수산물 유통의 관리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27조에 따라 생산부터 판매까지 단계별 정보를 등록하고 관리해 소비자가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부터 가공, 판매까지 추적이 가능한 수산물은 전체 출하물량의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 충남 당진)이 해양수산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갈치, 고등어, 멸치, 오징어, 참조기 등 45개 품목이 참여해 총 6,099톤의 물량이 이력 표시됐는데, 이는 전체 이력제 출하물량인 7만 9,159톤의 8%에 불과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6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지만 표시 물량 비중은 11%에서 8%로 하락 한 것이다. 참여업체의 경우도 2014년 3,229개소에서 2016년 7,066개까지 증가했으나 2017년 6,917개소로 감소한 이후 지난해에는 6,081개 업체만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기구 의원실 관계자는 “생산된 수산물에 가장 먼저 부착되는 이력제 표시가 소비자 밥상까지 가기 위해서는 가공, 유통 과정의 이력도 표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수산물이력제 참여현황 및 투입예산 (자료제공_해양수산부)
수산물이력제 참여현황 및 투입예산
(자료제공_해양수산부)

“소비자들은 이력제 몰라” 믿을 수 없는 성과 지표

수년째 초라한 성적을 내는 수산물이력제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양수산부는 수산물이력제 사업 성과 지표를 설문조사에 따른 소비자 인지도로 설정했다. 최근 3년간 수산물이력제 사업 달성도는 목표를 초과하며 100%를 웃도는 성과를 보일 정도로 높은 성과율을 보이고 있다. 성과 달성에 관련된 자료에 따르면 수산물이력제 소비자 인지도는 2018년 41.1%에서 2019년 42.1%, 2020년 43.6%로 소폭 증가하고 있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지난해 발표한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 및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수산물을 구입할 때 가장 우선시 하는 정보는 ‘신선도’인 것으로 조사됐다. 뒤를 이어 원산지, 외관, 가격, 생산지, 폼종, 포장상태 등의 순이었다. 또한 이력 표시가 부착된 수산물은 시중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현실. 이에 수산물 관련 업체들 역시 수산물이력제에 대한 전국민 인식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굳이 부가적인 일이 수반되는 이력제 등록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산물이력제 참여를 위해서는 수산물 공급자의 자발적 사업 신청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고령 어업인들이 수산물을 생산하고 있어 업체들이 참여 의지가 낮기 때문에 사업의 참여율이 저조한 것으로 파악되어왔으나, 지금은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들로 이력제 참여를 회피하고 있다. 수산물이력제 참여를 희망했었다고 밝힌 A 수산물 업체 관계자는 복잡한 신청 절차로 결국 이력제를 도입을 포기했다고 설명했다.

업체는 수산물이력제를 도입하기 위해 수산물 이력을 나타내는 ‘이력번호’를 부여받아야 한다. 이력번호는 업체(등록) 번호, 제품 유형, 생산 연도 그리고 일련번호로 구성되는데, 때문에 한 업체가 한 번만 참여신청을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고자 하는 수산물의 수에 맞춰 따로 따로 신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재고(수산물)를 쌓아 두고 판매하는 곳이 아닌 이상 당일 당일 경매를 받아 판매하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이력번호를 업데이트해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A 업체 관계자는 “수산물 원산지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수산물이력제의 취지에도 공감해 사업을 신청했으나, 수산물이력제에 대한 소비자의 인지도가 낮다 보니 굳이 복잡하고 손가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게 됐다”라고 털어놨다.

수산물이력제 성과지표 및 최근 5년간 성과 달성도 (자료제공_해양수산부)
수산물이력제 성과지표 및 최근 5년간 성과 달성도 (자료제공_해양수산부)

기로에 선 수산물이력제

수산물이력제 참여 업체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해양수산부는 소비자 인지율이 높아지는 성과를 명분으로 수산물이력제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져 업계 관계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지난 7월 수산물 이력제 의무화 시범사업 중간평가를 실시했다. <현대해양>측은 평가 결과에 대한 자료를 요청했으나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검토가 안된 부분이 많아 자료가 외부로 나갈 경우 혼란을 줄 것으로 염려된다”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사업 용역 수행 담당자로 중간평가에 참여한 신용민 부경대학교 교수와는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는 “일반 국민들은 수산물이력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수산물 이력제는 소비자들에게 전혀 필요하지 않은 제도다”라며 일침했으며 “소비자 홍보보다도 생산자와 유통판매업자들의 유통 이력 기록 표시 인식이 강해야 한다. 원산지 표시 문제로 수산물이력제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해양수산부는 사업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국감을 앞둔 해양수산부가 실효성 없는 수산물이력제를 고수해야 할지, 새로운 방향으로 사업을 전환해야 할지 기로에 서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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