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리고 사랑과 화해
죽음, 그리고 사랑과 화해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9.06.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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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햄릿왕자의 독백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어느 쪽이 더 사나이다울까?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받아도 참고 있어야만 하는가 ? 그렇지 않으면 밀려드는 재앙을 힘으로 막아 싸워 물리칠 것인가?
 죽어, 잠들다. 그것 뿐이겠지. 잠이 들어 만사가 끝나 가슴 쓰린 온갖 심뇌와 육체가 받는 고통이 사라진다면, 그건 정말 바라는 생의 극치 아닌가.
 죽어 잠을 잔다. 잠이 들면 꿈을 꿀 테지. 이승의 번뇌를 벗어나서 영혼의 잠이 들었을 때, 그때 어떤 꿈을 꿀 것인지, 이게 또 망설임을 주는구나.
 그러기에 이 고해같은 인생에 집착이 남는 법.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사나운 채찍을 견디며 폭군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 버림받은 사랑의 고통스러움, 재판의 지연, 관리들의 오만, 유덕한 사람에게 가하는 저 소인배들의 불손,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참고 지낼것인가?
 한 자루의 단검이면 쉽게 끝낼 수 있는 일 ! 그 누가 이 인생의 지루한 것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진땀을 뺄것인가 ? 다만 한가지, 죽은 뒤의 불안이 있으니 이것이 문제로다.(중략)”

 쉐익스피어의 비극, 햄릿 3막1장에 나오는 독백장면이다. 아버지 햄릿왕을 독살한 숙부 글로디어스, 그 숙부와 결혼한 어머니 거투루드왕비, 햄릿왕자의 연인 오필리아와 그의 아버지와 오빠 레어티스. 그 모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아 가는 숙명적 비극이 불후의 명작으로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능적 고뇌와 번민, 선과 악, 사랑과 증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生)과 사(死)에 대한 원초적 번뇌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옳은 것인지, 세익스피어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숙제를 던져주었다.

 

   김수환추기경과 장영희교수가 남겨준 사랑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인간으로서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게 간직해야 할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김수환추기경은 지난 2월16일 영생의 길로 떠나셨다. 그 분이 평생 동안 사제로서 베푸신 사랑과 헌신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잊을수 없는 크나큰 감동으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 사랑과 화해의 숭고한 뜻을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 깊이 새겨주고 김수환추기경은 그렇게 자연의 섭리대로 평화롭게 우리곁을 떠나셨다. 

 지난 5월 9일 장영희교수도 우리 곁을 떠났다. 소아마비로 하반신을 못쓰는 1급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영문학 박사로서, 교수로서, 작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온 장교수는 8년 동안 세가지 암과 투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안겨주고 천사처럼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유작(遺作)에 이런 글을 남겼다. 장교수가 외국에 유학을 갔을 당시 목발을 짚고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전동타자기를 가지고 정말 어렵게 학위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과 함께 관련 참고서적들을 몽땅 도둑을 맞은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1년 동안 준비하여 또다시 논문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 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그리고 그녀는 박사학위논문 헌사에 이렇게 적었다.「 내 논문 원고를 훔쳐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소중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한다.」

 불행 속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고 좌절 속에서도 삶의 교훈을 찾은 장교수는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고 했다. 기적처럼 살다가 행복처럼 떠난 장교수의 일생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노문현 전대통령의 죽음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참으로 허망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는가. 어찌 이렇게 생(生 )을 마감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일국(一國)의 대통령은, 입으로는 아무리 보통사람이라고 외쳐도 보통사람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만큼 노무현전대통령의 투신자살은 모든 사람들을 허망하고 허탈하게 만들었다.

 가난한 자, 약한 자의 편에 서서 우리 나라를 건강하고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노라고 약속했으면 어떠한 난관이 닥치더라도 그 신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지도자가 지켜야 할 지고지선(至高至善)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고인(故人)은 진보적 가치가 있어야 보수주의는 오만과 나태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선행되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또렷이 깨우쳐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 것이 한 없이 비통하고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고인이 유서에 남긴 마지막 희망처럼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화해의 정신, 사랑의 마음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치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고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이며, 그것이 바로 고인이 이루고자 했던 통일된 조국으로 나아가는 길임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 주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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