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9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9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9.1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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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를 변용한 「우렁이 아내」가 주는 현재적 의미
우렁각시 표지
우렁각시 표지

향파 선생은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여러 민담과 설화를 동화로 재구성한 소위 전래동화를 많이 창작했다. 재미와 교훈을 적절하게 융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렁이 아내」(《새벗》, 1964)도 역시 그러한 동화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우렁각시」로 명명되고 있는 이 설화의 연원은 오래 되었다.

중국 문헌에는 일찍부터 상서로운 우렁이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우렁이가 여자로 변하는 이야기는 대표적으로 당대(唐代) 문헌인 『집이기(集異記)』 중 「등원좌(鄧元佐)」라는 전기(傳奇)와 도잠(陶潛, B.C. 365∼474)이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수신후기(搜神後記)』에 「우렁각시」(螺女形)가 있다. 후세의 인용자들이 「백수소녀」(白水素女)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수신후기』에는 주인공을 ‘후관사단(候官謝端)’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중국 설화의 결말은 여자가 떠나면서 남자를 부자가 되게 한다든지, 관원을 신통술로 응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는 1927년에 나온 정인섭의 『온돌야화』에 「조개 속에서 나온 여자」로, 1946년 손진태의 『한국설화문학의 연구』에 「나중미부설화」로 실려 있다.

설화의 핵심은 우렁이에서 나온 처녀를 얻은 총각이 금기를 어겨 아내를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옛날 시골에 살림이 어려워 장가도 못 가는 가난한 노총각이 노모와 둘이 살았다. 어느 날 논에서 일하다가 “이 모를 심어서 누구랑 먹고 살지?”라고 하니 “나랑 먹고 살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한 생각에 다시 한 번 “이 모를 심어서 누구랑 먹고 살지?”라고 하니 또 한 번 “나랑 먹고 살지.”라고 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고 논가에 고동이 하나 있어 주워 와서 집 장롱 속에 깊숙이 넣어 두었다.

그날부터 모자가 일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맛나게 볶은 꿩고기와 차진 밥이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 신기하게 여긴 총각이 하루는 일을 나가는 척하다가 몰래 숨어 안을 엿보았다. 그랬더니 장롱 속 고동 안에서 선녀같이 예쁜 처녀 하나가 홀연히 나와 밥을 짓기 시작하였다. 총각이 너무나 신기해 얼른 뛰어들어가 처녀를 꼭 부여잡고서 자기랑 같이 살자고 하였다.

처녀는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으니 사흘(석 달, 삼 년)만 참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미 급한 총각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처녀를 졸라 그날부터 부부가 되어 같이 살았다. 신랑은 혹시 누가 색시를 데려갈까 두려워 절대로 바깥출입을 못 하도록 단속하였다. 하루는 색시가 들에서 일하는 신랑의 점심을 지었는데, 시어머니가 누룽지가 먹고 싶어서 며느리에게 밥을 이고 가게 시켰다. 신랑에게 가던 중 사또 행차를 만나 길을 피해 숲에 숨었는데, 원님이 보니 숲 속에 무언가 환한 빛이 보였다. 신기하게 여긴 원님이 하인을 보고 숲 속에 빛이 나는 곳을 찾아가서 꽃이면 꺾어오고, 샘이면 물을 떠오고, 사람이면 데리고 오라고 시켰다.

하인이 숲에 가 보니 어떤 미인이 밥 광주리를 내려놓고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하인이 가자고 팔을 잡아끄니 색시는 은가락지를 빼어 주며 살려 달라고 했으나, 결국 원님은 색시를 가마에 싣고 가 버렸다. 신랑은 색시를 찾으러 관원에 갔다가 못 찾고 억울하게 죽어 파랑새가 되었다. 원님에게 잡혀간 색시는 밥도 안 먹고 원님을 거역하다 죽어 참빗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설화가 구전되면서 변이가 많이 생겼다. 비극적인 결말을 여러 형태로 변이 시킨 것이다. 행복한 결말로 바뀌는 변이도 있고, 비극적인 결말이 다른 형태로 변이된 것도 있다. 행복한 결말의 변이 중 하나는 원님에게 잡혀간 색시가 웃지를 않자 원님이 색시의 소원대로 거지 잔치를 열어 주고, 색시를 찾아온 신랑이 새 깃털 옷을 입고 춤을 추자 색시가 좋아서 웃는다. 원님이 신기해서 신랑에게 곤룡포와 깃털 옷을 바꾸어 입자고 한다. 신랑이 곤룡포를 입자 색시가 얼른 당 위에 오르라고 소리쳐 원님은 쫓겨나고, 신랑은 벼슬을 얻어 색시와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다.

이와는 달리 원님에게 들키는 변이도 있다. 색시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일도 안 나가고 집에서 빈둥대는 남편이 딱해서 색시가 자화상을 그려 주며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쳐다보며 일하라고 시켰다. 마침 바람결에 화상이 날아가 원님의 눈에 띄어 색시가 원님에게 잡혀가기도 한다. 그리고 색시를 찾고자 원님이 사는 집을 향해 굴을 파다가 굴이 무너져 남편은 죽고, 그곳에는 남편의 이름을 딴 마십이굴이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이러한 여러 변이 중 향파는 변이의 내용을 임금과의 내기라는 새로운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재미를 고조시킨다. 우렁이의 부친을 용왕으로 설정하고, 그 용왕의 도움으로 우렁이 각시의 남편이 내기에서 이김으로써 임금으로 추대되는 행복한 결말을 이끌어 내고 있다. 나무심기, 말타기 내기에서 용왕의 도움으로 이기고, 특별히 마지막 내기를 바다에서 배를 타고 달리는 겨루기로 설정함으로써, 용왕의 도움을 받고있는 우렁이 남편이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바다에 폭풍이 일어나 임금의 배가 뒤집혀 사라짐으로써, 새로운 임금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는 향파 선생은 우렁이 각시를 빼앗아 가려는 임금을 응징하고, 이야기의 결말을 행복하게 마무리함으로써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교훈을 심어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렁이 각시 설화는 남녀의 만남조차도 쉽사리 이룰 수 없었던 하층민의 운명적인 슬픔이나 현실적인 고난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향파 선생이 동화로 재구성했다는 점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하층민의 꿈을 동화에서는 펼칠 수 있는 동화가 지닌 무한한 상상력의 힘 덕분이다.

고전 설화의 전래동화로의 변용은 여러 가지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는데, 우선적으로는 기존 설화의 재탄생으로 해당 작품이 독자에게 친숙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설화의 서사적 틀을 기억해가며 새로운 ‘우렁각시’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기존 설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우선 독자의 흥미를 끌 수 있다는 일차적 장점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인의 삶을 향한 작가의 비판적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우렁각시 설화를 오늘날의 삶으로 끌어들임으로써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보여주게 된다.

이처럼 우렁각시 설화의 전래동화로의 변용은 고전 설화의 재해석 과정을 거쳐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구전되면서 전승되는 설화의 전래동화로의 변용은 일반민중의 생활과 가치관을 생생한 그들의 언어로 전한다는 점에서 현재성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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