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공영의 ‘마리타임 유니버스’를 꿈꾸다
공존공영의 ‘마리타임 유니버스’를 꿈꾸다
  •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대한조선학회 차기 회장 당선자
  • 승인 2021.09.08 07: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대한조선학회 차기 회장 당선자
이신형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대한조선학회 차기 회장 당선자

[현대해양]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 중 하나는 ‘메타버스’라는 신조어다.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 ‘기계학습’ 등의 생소한 단어들도 그 기초개념을 알게 되면 어렴풋이나마 감을 잡을 수 있듯이, ‘메타버스’도 이미 20여 년 전 유행했던 ‘싸이월드’의 확장개념이라는 걸 알게 되면 쉽게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 상상 속의 디지털 환경에서 현실을 새롭게 구현하는 것이 ‘메타버스’라고 한다면, 여기서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실재하는 조선과 해운 분야의 사업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마리타임 유니버스’를 창조하자는 것이다.

‘마리타임 유니버스(Maritime Universe)’라는 말은 ‘메타버스’만큼이나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보다는 훨씬 피부에 와 닿는 개념이다. 보통 ‘생태계(Eco-system)’라는 말은 많이 쓰이고, 이미 익숙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유니버스’는 우주라는 의미로 생태계보다 공간적으로도 훨씬 크고 시간적으로 훨씬 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거기에 ‘마리타임’이라는 목적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붙여줌으로써 ‘물’ 또는 ‘바다’와 관계된, 우주에 버금가는 개념이라는 걸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왜 ‘마리타임 유니버스’인가

그렇다면 “왜 ‘마리타임 유니버스’인가?” 유니버스가 생태계보다 더 넓은 개념을 나타내듯이 ‘마리타임 유니버스’로 흔히 쓰이고 있는 ‘마리타임 에코시스템(Maritime Eco-system)’보다 큰 개념을 나타내고자 한다. 왜냐하면 보통 ‘마리타임 에코시스템’이라고 하면 선박, 항만, 물류, 그리고 그에 응용되는 기술을 묶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리타임 유니버스’는 ‘마리타임 에코시스템’을 부분집합으로 포함하는 확장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3차원 공간이나 분절된 과거-현재-미래가 아니라 공간과 시간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인 것이다. ‘물’과 ‘바다’와 관계된 모든 인간의 활동을 우주적인 공간에서 영속적인 시간의 스케일로 준비하자는 게 ‘마리타임 유니버스’다. 여기서는 조선, 해운, 수산업을 따로 보지 않는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의 이익 극대화만 고려하는 수준도 아니다. 선박의 건조와 운용, 그리고 활용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나아가 해양공간의 적극적인 개발이 뒤따른다. 당장의 문제해결보다는 영원히 지속 가능한 인간의 활동에 동반하는 시간을 모두 다룬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니버스’의 개념이 필요하게 되고, 현재 ‘물’과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이 앞장서야 한다.

 

유니버스 제1법칙은 ‘공존공영’

그런데 ‘마리타임 유니버스’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수만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을 바라볼 때 떠오르는 것들만 따져 보자.

우선, 고질적인 칸막이 사고방식이다. 정부 부처도 그렇고, 산업도 그렇고, 심지어 학계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는 고질병이다. 진정한 유니버스의 제1법칙은 ‘공존공영(共存共榮)’이다. 더불어 존재하고 서로 함께 발전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물론 새로 생기거나 사라지는 천체도 있다지만, 그마저도 전체의 ‘공존공영’을 위한 현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네 일, 내 일을 가르고, 내 건 절대 내어주려고 하지 않으면서, 네 건 챙겨오려고 하는가? 어떻게 내 일은 선박을 지어서 파는 일이니, 선박을 사가서 쓰는 건 네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힘을 모아 선박과 해운 관련규정을 선도해 나가도 어려운 판에, 남이 만들어 놓은 규정을 조금이라도 미리 알아채서 빠르게 대처하려고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도 칸막이에 갇혀 사는 사육 가축의 신세를 벗어나길 간절히 원한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면

두 번째로 떠오르는 건 경제공동체 정신의 결여다. 조선과 해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금융 때문에 항상 어렵다고 한다. 금융은 영원한 악당이고, 정부는 그 편만 드는 대부(Godfather)인 것 같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면 금융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 정부도 손 놓고 있을지 의문이 든다.

필자의 먼 친척뻘 아저씨는 미국 메릴랜드에서 20여 년째 테이블 10여 개의 작은 일식당을 운영 중이다. 뉴욕에서 부부가 델리와 네일숍에서 모은 돈으로 어렵사리 식당을 연 것이다. 미국에서 이민자가 그 정도 규모의 식당을 오랜 기간 운영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분의 성공 가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인 이민교회에서 받은 주위 분들의 금전적인 도움이었다고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집도 없고, 기술도 없고, 신용점수도 변변찮은 이민자에게 대출을 해주는 은행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인들의 상부상조 지원에 은행도 대출을 해주게 됐고, 그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는 아름다운 얘기다. 우리 ‘마리타임 유니버스’에도 이런 아름다운 얘기가 넘쳐나면 좋겠다.

 

심각한 생존 문제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의 부족이다. 요즘 엄마들이 조선이나 해운에 갖고 있는 인상은 그야말로 역대급 최악인 것 같다. 그러니 우리 분야를 전공으로 평생을 바치겠다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필자가 가르치는 유체역학에는 기본적으로 만족해야 하는 다섯 가지의 법칙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을 제외하고는 모두 보존법칙이다. 들어온 건 나가야 하고, 생성된 게 있다면 소산된 것도 있어야 한다. ‘마리타임 유니버스’에도 마찬가지일 터, 물리적 법칙에 위배되지 않는 ‘유니버스’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지식과 경험의 축적으로 엔트로피의 계속적인 증가를 말하는 열역학 제2법칙도 만족하게 될 것이다.

안정적으로 유입되는 미래 세대가 없어진다면 유니버스는 쪼그라들다가 없어지게 된다. 모쪼록 하나의 커다란 ‘마리타임 유니버스’ 안에서 우리나라 조선해운산업이 영원히 번영하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