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전성시대
사냥꾼 전성시대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08.10.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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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판 엽관제도(獵官制度)의 부활

 요즘처럼 사냥꾼이 득세하는 세상도 없었던 것 같다. 총 들고 멧돼지나 꿩이나 잡는 사냥꾼은 사냥꾼 축에도 끼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M&A(기업 인수 합병)로 떼돈을 벌어들이는 「기업사냥꾼」. 정권을 잡았다 하면 낙하산 타고 내려와 알짜배기 고위직책을 싹쓸이하는 「공직사냥꾼」. 신정아겫?映?사건에서 보았듯이 사건의 본질과 몸통은 온데 간데 없고 그저 특종기사에만 혈안이 되어 그 죄 많은 여인을 또다시 발가벗겨 놓은 「마녀사냥꾼」에 이르기 까지, 우리 서민들은 「꾼」이 판치는 난장판 속에서 하루 하루를 정신 못차리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그러나 ‘꾼’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M&A는 산업발전과 기업구조를 안정시키는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집권세력이 공직을 사냥하는, 소위 말하는 엽관제도(獵官制度)도 민주국가에서는 사라져야 할 인사정책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중심의 정당정치 하에서는 나름대로의 장점도 지니고 있다.

 엽관제도는 1928년 미국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된 앤드류 잭슨시대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관직이 오로지 인민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나라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공직에 취임함에 있어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은 고유의 권리를 가질 이유가 없다」고 하는 소위「관직교체제」의 원칙에서 엽관제도의 필요성과 그 의의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정권을 거머쥔 세력이 공직을 맡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론이다. 공직에 있어서의 정실인사(情實人事)는 절대군주 시절과 시민혁명기를 거쳐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정치권력의 부패와 행정의 비능률이 두드러지게 발생하면서 극심한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직업공무원제도가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잭슨대통령이 죽은 지 1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21세기 신판 엽관꾼들이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고 있다는 생각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절망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치판은 또 어떤가? 대선을 한 달 여 앞둔 시점에서 여겲煞?벌이고 있는 진흑탕싸움에 정말 신물이 난다. 제269회 정기국회 국정감사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도 차갑기만 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쥐꼬리만한 기대감마저도 완전히 짓밟히고 말았다. 국정이 정치판에 농단되고 있는 이 참담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가? ’ 자문(自問)하게 된다.

 나라를 지키고 국민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다. 모든 국민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요 의무인 것이다. 요사스런 입답이나 궤변으로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정권쟁취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정치놀음을 이제는 걷어치워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문제가 신문지상에 도배질을 하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건(件 )은 ‘건도 안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지난 달 23일 해수부 국감 이후 이어지고 있는 항만공사 인사문제잡음을 접하면서 또 한번 실소(失笑)를 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본질은 덮어둔채 곁가지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

 대통합민주신당 김우남의원은 인천항만공사의 경우 전체 인원 127명 가운데 해수부 출신이 67명으로 53%나 차지하고 있다며 “이 정도면 그 조직의 문화나 항만관리 등에 민영화의 장점을 찾아볼 수 없는 무늬만 민영화이고, 결국 인천항만공사는 짝퉁해양수산부가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김의원은 이어 부산항만공사의 직급구조도 관리층의 70%가 공공기관 출신이며, 상급직원인 3급이상 직원이 전체 직원의 51%로 피라미드구조가 아닌 역삼각형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KMI(해양수산개발원)의 용역조사에서 지적했듯이 이런 체제로는 자체적인 사업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정감사에서는 국회의원들의 폭로성 질타가 주류을 이루고, 장관의 옹색한 변명과 그리고 ’앞으로 잘못된 점은 개선해 나가겠다‘는 상투적인 답변으로 위기를 넘기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왔다. 김의원의 질의도 대충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싶더니 ’그놈의 언론‘이 문제였다. 10월25일자 중앙일보에 『항만공사, 퇴직관료집합소 - 해수부 출신이 직원의 절반』이라는 제목으로 국정감사 박스기사가 실린 것이 화근이 되어버렸다. 이 신문은 인천항만공사의 인사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과도한 연봉문제까지 들춰냈다. 그리고 “부산항만공사가 부산북항을 개발하면서 부산마린토피아(주)를 설립하고 100%의 자본금을 출자한 것은 효율경영에 반하는 처사라며 자(子)회사, 손자(孫子)회사까지 거느린 해양수산부 그룹을 보는 것 같다”는 김우남의원의 질문내용까지 곁들였다. 김의원의 여당답지 않은(?) 파격적인 질문과 장관의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끝날 문제가 그놈의 신문 때문에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버린 것이다.

 해수부에서는 김의원의 질의와 신문보도에 대한 해명보도자료를 돌렸다. 항만관리업무를 해수부에서 분리하여 항만공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피치못할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김의원이 잘못 이해한 부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보도자료에 따르면 김의원의 국정감사 지적사항들이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 시켜주었고, 업무의 특수성이나 항만업무를 공사화(公社化 )과정에서 과도기적 조치가 필요했던 점은 이해가 되지만, 인사편중의 정도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북아 물류허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우리나라 항만정책의 본질은 덮어둔 채, 정부와 언론과 국회의원들이 곁가지에만 매달려 과잉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범여권’이라는 정치적인 용어만 살아있고 실제여당은 존재하지 않는, 대통령 임기말의 이상한 정치행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하기 이를데 없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당정협의 과정을 통해 정책을 조율하고 상호 견제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큰 일은 큰 일대로, 사소한 일은 사소한 대로 당정간에 조율하고 협의해 나가는 것이 국력소모를 막는 정치의 근본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꾼’이 아니라 전문가가 기업을 이끌고, 정부를 이끌고, 언론을 이끌고, 국가를 경영하는 그러한 시대를 열어나가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바이다.

 

 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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