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사 담합? 정기선 협약에 주목해야
해운사 담합? 정기선 협약에 주목해야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1.07.0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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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사전조치 못한 책임 커

[현대해양] 최근 해운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는 해운선사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사건이다. 공정위는 지난 5월 동남아 노선의 선사들이 총 122차례의 운임 합의를 시행했다며, 관련 매출액 8.5~10%(약 7,000억 원으로 추산)의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어 지난달 22일에는 한-일 노선과 한-중 노선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동남아 노선과 과징금 기준을 동일 적용할 경우 최대 2조원 가량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사건은 2018년 목재합판유통협회가 해운업계를 운임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며 시작됐다. 공정위는 23개 동남아 노선 컨테이너선사들(국내선사 12개사, 외국선사 11개사)을 심사대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HMM, SM상선, 팬오션, 고려, 장금, 흥아 등이 포함됐다. 그리고 3년만인 지난 5월, 공정위는 해당 해운선사들에 과징금 부과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해운업계는 황망하다는 반응이다. 지난달 8일 한국해운협회(회장 정태순)는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해운기업 공동행위 조사 기자간담회’를 열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해운업계의 주장은 “선사들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공동행위를 했으며,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공정거래법이 아닌 해운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한 공정위의 답변은 “해운법에서 명시된 부분도 지키지 못했다고 판단했기에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이었다. 적지 않은 과징금의 금액, 비슷한 선례가 없는 사건, 해운업계의 오랜 불황 등 여러 상황으로 인해 당사자인 선사들과 해운업계는 물론 해기사협회, 각종 경제·시민 단체, 국회, 그리고 관련법 전문가들의 관심과 의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운사 “해운법으로 처리 원한다”

해운업계에선 회원사들과 공동으로도, 그리고 선사 개별적으로도 총력을 다해 대응해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해운사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에서 허용하고 있고, 공정거래법에서도 타법에 의한 정당한 행위에는 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며 “해상·선박 관련 법 체계는 특수환경을 반영해 구축된 것으로 해운산업 내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라 규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공정거래법 58조 ‘사업자가 다른 법률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는 예외’라는 조항과 해운법 29조 ‘해운사들은 운임·선박 배치, 화물 적재 등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을 가리킨다.

김 부회장은 “1981년 경제기획원이 해운기업에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경쟁제한행위등록증(그림1)을 발급한 바 있으며, 공정위는 2019년 6월 공정위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가격담합에 대한 공정거래법 적용을 제외하는 대표사례로 해운기업의 운임공동결정행위를 언급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림1. 경쟁제한행위등록증(사진 제공_ 해운협회)
그림1. 경쟁제한행위등록증(사진 제공_ 해운협회)

 

그는 또한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통해 한국해운연합(KSP) 결성과 K얼라이언스를 추진한 것 역시 한진해운 파산 이후 해운업계를 살리기 위한 정부지원정책인데, 이번 공정위 심사대로라면 정부가 담합을 유도한 셈이냐”고 반문했다.

해운협회는 공정위가 부당행위라고 지적한 △화주단체와의 협의 부족 △해양수산부에 대한 신고 미비 △해운동맹 내 상벌제도 시행 등으로 자유로운 입·탈퇴 보장 미흡 등에 대해서도 모든 절차를 따랐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김 부회장은 “운임 담합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선사들의 운임비는 오히려 떨어졌으며, 이로 인한 이익도 없었고 피해자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해운선사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현재 정부의 해운재건 정책에 정면 배치되는 처사다. 과징금으로 인해 중소선사는 크게 흔들릴 것이고, 선복부족 현상이 심화돼 운임 상승과 물류 마비 현상도 올 수 있을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의 건의사항은 완결법인 해운법에 따라 조치해달라는 것 뿐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해운협회는 행정소송은 물론 법적소송까지 불사할 방침”이라고 선언했다.

 

 

공정위 “해운법 규정도 어겼다”

그러나 해운협회의 주장에 대한 공정위 답변은 단호했다. 한용호 공정위 카르텔조사국 국제카르텔과장은 “억울하다는 것은 단순히 해운선사들의 입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한 과장은 “해운법 29조에 대해서는 우리도 알고 있다. 그러나 화주단체와의 협의 미비, 해수부 신고 미비, 동맹 내 자유로운 입·탈퇴 보장 미비 등 해운법 규정도 어기는 등의 부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기에 심사보고서를 보낸 것이다”라며 “이에 대한 이견이 있다면 위원회에 증거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위원회는 공정위 조사부에서 제출한 자료와 해운협회 자료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처리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비슷한 사례는 항공업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판례를 보면 공정위의 제재가 부당하다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이 교수는 “이 사건의 쟁점을 해운법 제29조의 적용 여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에는 해운법 제29조 조항의 총족 여부가 더 문제”라며 “심지어 해운법의 규정을 따랐을 경우에도 그 규정이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공정위가 문제를 삼을 수 있다. 그런데 공정위의 주장대로 해운업계에서 해운법 규정을 어긴 것이 맞다면, 공정위에서 입장을 번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해운협회의 말처럼 국내 해운산업 재건은 정부의 주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한 공동행위이니 참작해야 한다는 주장은 감정적으로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공정위 신고가 들어왔고, 이러한 사건은 선례로 남아 다른 산업계의 주목을 받게 되기에 결국은 법적 논리에 따라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해외의 경우 비슷한 사건에서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는 판례도 많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해운업계가 다른 산업이나 전체 국내 여건과 법에 대한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역시 해운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해운법 규정이 공정거래법보다 먼저 생겼다. 이 사건의 쟁점 중 하나는 공정거래법 제58조가 해운법 제29조에 적용 되는지 여부”라며 “공정위는 정기선사들의 부당행위가 있었기에 공정거래법을 적용한다고 하고, 해운업계에서는 해수부 장관이 공정위에 통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위는 개입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화주와의 협의나 정기 선사들간의 협의 역시 진정한 협의였는지의 여부, 그리고 해수부에 신고한 것은 정말 미비했는지의 여부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해수부와 공정위가 관계를 조율하고, 처리과정을 미리 투명하게 안내했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보였다.

 

특별법 vs 신법, 해수부 vs 공정위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는 “신법 우선 원칙보다는 특별법 우선 원칙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는 “1981년 작성된 경쟁제한행위등록증에는 ‘실시 기간’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 제외 법률 제정 발표시까지’라고 명시돼 있다”고 언급하며, “이는 해운법이 새로 개정될 때까지는 이 법을 예외적용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공정거래법은 모든 영역에 적용되는 일반법이지만, 해운법 29조는 특별법이기 때문에 특별법 우선 원칙에 따라 해운법을 따르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특별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해운업계는 해양수산부 소관이며 해운법을 어긴 부분이 있다고 해도 공정위가 아닌 국무총리실이나 대통령실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정 변호사는 “인트라아시아의 경우 컨소시엄을 구성해 여러 선사가 동일 항로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인데, 동일 항로를 운영하며 운임비를 협의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해수부에서 좀 더 확실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 역시 해수부의 역할에 대해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해운업에는 다른 업계와 다른 특수한 상황들이 존재하고, 해운법에는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며 “해수부가 공정위에 해운업 특성을 제대로 전달하고, 과징금을 지금의 1/10 정도로 크게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현재 해수부에 비해 공정위의 힘이 너무 막강하다”며 선사들에게 “원칙적으로는 개별 선사들에 대한 과징금 부과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법적 대응에도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앞으로는 해운법에 해수부 신고 절차를 규정하고, 선주와 화주 간 협의기구를 규정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할 것”이라며 “지금처럼 선복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거액의 과징금 부과는 모든 선사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 A 변호사는 “공정위와 해운협회 양 측이 현재 원칙과 예외에 대해 반대로 해석하는 셈이라 앞으로도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그는 “공정위에선 특별법이 존재하는 경우라도, 모든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았다면 공정법 제재 대상이 된다는 입장인 것 같다”며 “해운법 제29조와 공정거래법 제58조는 어느 쪽이 상위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두 법의 접점”이라고 설명했다.

공정거래법은 원칙적으로 담합을 금지하고 있으며 공정위의 인가(공정거래법 제19조 제2항)를 받는 경우 이외에는 예외를 두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 특성상 공동행위를 허용해야 하는 경우 개별법에서 사업자간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조항을 두기도 한다.

A 변호사는 “이러한 경우 공정거래법과 개별법과의 충돌을 조정하는 장치로서 공정거래법 제58조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사건과 유사한 선례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 더욱 예측을 어렵게 한다”며 “항공사간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사례인 항공사간 운수협정 및 제휴협정의 경우엔 사전 인가제도로 운용되고 있고, 국토부 인가시 사전에 공정위와 협의하도록 제도적으로 정비가 돼 있기에 이번 사건과 같은 충돌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A 변호사는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발표일 1983.10.6.)(다자조약, 제820호, 1983.10.22.)」 (이하 정기선협약, 그림2)를 언급했다. A는 “해운법 제29조가 공동행위를 허용하게 된 것은 애초에 정부가 정기선협약을 국내에서 실행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라며 “정기선협약은 그 존재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 정기선협약이 존재한다는 것은 바로 국가에서 동맹을 인정했다는 의미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기선협약 14조에는 운임율 변경 시 화주에 통보하면 된다는 규정도 있는데, 이는 해수부 신고 미비 등이 문제라는 의견과도 충돌한다”고 말했다.

그림2.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 14조
그림2. 정기선동맹의 행동규칙에 관한 협약 14조

 

“해수부는 뭐하고 있나?”

해운법 제29조의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다. 따라서 해운법 제29조의 해석과 적용에 대해서도 해수부가 1차적인 권한을 갖고 있다. 전재훈 해수부 해운정책과 사무관은 “우리도 지속적으로 공정위에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있다”며 “부당행위가 있었다는 공정위의 주장에 대해서는 관점 차이가 있겠지만, 어쨌든 그 역시 해운법에 따른 것이니 해수부가 판단할 상황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해수부로서는 선사들의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고, 설사 부당행위가 있었다 하더라도 해운법의 규정에 따라 처리하자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공정위와 우리는 같은 정부기관이기에 공정위의 조사나 처분에 대해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기에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고 답변했다.

A 변호사는 “해수부는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해수부가 지난 십수 년 간 선사들로부터 운임에 대한 공동행위를 신고받고,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조치하지 않고 있다가 공정위에 선수를 뺏긴 것”이라며 “공정위의 사건 심의에도 해수부 책임자가 출석해 해수부의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의 과징금 사태는 없을까?

이번 사태에 대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감정적·정치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논리와 이론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공정위는 경쟁정책에 관한 일반 집행기관으로서 지난 40여 년간 공정거래법 집행을 담당하고 있다. 공정위는 그 동안 통신업, 금융업 등 정부의 전문 규제기관(방통위, 금융위)이 존재하는 산업영역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을 꾸준히 적용해왔다. 따라서 해운법에 대해서만 특별한 예외를 두지 않는 것은 공정위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해운업계에서는 해운업이 여타의 산업 영역과 다르게 취급되어야 하는 이유를 들어 공정위를 설득할 필요성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법리적이고 경제학적인 논거가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 B씨는 “탄탄한 논리 없이 감정적·정치적으로 접근한다면 공정위로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욱 강하게 해운업계를 제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공정위는 8월 6일까지 선사들의 의견서를 받고, 전원회의를 열어 10월초까지 심사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과징금이 부과되긴 할 것이나, 지금보다는 낮게 책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정위와 해수부 모두 각자의 주장이 있기에, 지금으로서는 과징금 규모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이 마무리 되더라도 향후 제2의 과징금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한 정비 역시 잊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A 변호사는 “해운법 제29조의 집행을 실질화하기 위해 관련 인원과 조직을 확충하고, 공정거래법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인현 교수 역시 “앞으로는 화주와의 협의 방식과 신고제 변경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며, 반드시 정부가 법률로 규율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화주와 제도를 만들 수 있는지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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