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목항이 꿈틀댄다
장목항이 꿈틀댄다
  •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㊵
  • 승인 2021.06.10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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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거제도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앞에 보이는 섬은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다.
거제도와 가덕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 앞에 보이는 섬은 대통령 별장이 있는 저도다.

[현대해양] 장목리는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포구마을이다. 인근 섬과 산자락 등에서 발견된 패총, 지석묘, 주거지, 청동유물 등으로 볼 때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으며, 권력이 있는 부족이 마을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을 뒤에 제석산이 있고 앞에는 칠천도를 사이에 진해만과 장목만이 접해 있다. 자연마을로 매동, 동촌, 서촌 등이 있다.

장목리는 긴 만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장문포, 장목포라 했다. 1981년 지방어항으로 지정됐다가 20년 만에 국가어항으로 승격됐다. 수산업과 관광을 겸한 어항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목리에는 거제를 대표하는 장목수산시장이 있고 통영과 부산을 오가는 많은 여행객이 오가는 길목이다.

 

거제 잠수기어업의 중심

장목리는 거제시에서 잠수기 어업이 가장 활발한 어촌이다. 잠수기 어업은 잠수부가 직접 바다로 들어가 개조개, 키조개, 왕우럭조개 등 패류를 채취하는 어업이다. 잠수부는 어선에서 공기압축기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으며 물속에서 도구를 이용해 한 시간 정도 조업한다. 흔히 ‘머구리’라 부른다. 잠수기 어업은 배를 운전하는 선장, 배 위에서 산소를 공급하며 잠수부를 살피는 선원, 바다 속으로 들어가 패류를 채취하는 잠수부 등 3명으로 구성된다.

잠수기수협은 일제강점기 잠수기수산회를 모태로 만들어졌다. 이 수협은 부산, 경남, 울산, 경상북, 강원도 일대를 아울러 230여 명이 참여하는 1,2구 잠수기수협(통영)과 여수와 서해 일대 80여 명이 참여하는 3,4 잠수기수협(여수)으로 나뉜다. 거제에는 35척의 잠수기어선이 있으며, 이 중 26개의 어선이 장목항 선적이다.

장목항 잠수기어선은 어둠이 가시기 전에 출항한다. 오후 4시 무렵에 위판이 있기 때문에 오전에 작업하고 배위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도 한다. 여름보다 겨울이 ‘조개눈’이 잘 보이고 시야도 좋아 작업하기 좋다. 조개눈은 개조개 등이 호흡하며 만들어 놓은 작은 구멍이다. 호스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아 물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배 이동, 잠수부 위치, 줄 조절 등 세 사람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선원은 물속에 있는 잠수부 위치를 올라오는 공기방울을 보고 확인하며 줄을 조절한다. 잠수부는 30-40m 깊이에서 일하기 때문에 수압을 조절하며 물속으로 들어가고 나와야 한다. 많은 잠수부들은 고령이다. 보통 한 번 조업에 나서면 3, 4차례 잠수를 하며 200㎏ 내외의 패류를 채취한다.

점심시간이 지나자 한 두 척씩 잇따라 잠수기 어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배가 들어오면 작은 크레인을 통해 채취한 패류를 운반해 위판장으로 옮긴다. 장목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패류는 개조개다. 개조개는 1㎏에 1만 2,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 정도 무게면 6개에서 7개 정도의 개조개가 올라간다. 주문을 하면 직접 조개를 까주며, 택배주문을 통해 유통되기도 한다.

 

장목항에 정박해 있는 잠수기어선
장목항에 정박해 있는 잠수기어선
택배로 주문한 개조개를 까는 상인
택배로 주문한 개조개를 까는 상인

 

거제도에 성이 많은 이유

거제도에는 당산성, 옥포성, 지세포성, 가배량성, 율포성, 탑포산성, 다대포성, 수정봉성, 폐왕성, 오량성, 사등성, 구영등성, 구율포성, 대금산성, 고현성, 수월산성 등 성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율포, 옥포, 지세포, 조라포이며, <대동지지(1863)>에는 율포, 조라포, (신)율포, (신)영등포 등이 등장한다. 경상우수영에 속하는 이들 수군진은 모두 거제도 동북쪽과 동남쪽에 배치돼 있다. 왜적의 소굴이었던 대마도와 마주보는 곳이다.

왜구의 수탈이 심해지자 섬을 비우고 거창현으로 갔다가 세종에 이르러 돌아오기도 했다. 이후 왜군의 침입에 대비한 거제7진을 두었다. 장목리는 조선시대 수군진이 형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생성됐다. 조선 거제부에 속하는 7진보 중에 하나인 장목포진 관아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면사무소로, 이후에는 노인정으로 활용했다. 1978년 폭풍우로 지붕이 내려앉아 철거하려는 것을 지역 유지의 도움으로 보전해 지방문화재로 지정했다.

송진포로 가는 길에서 본 장목리, 소나무 뒤로 보이는 산에 장문포왜성이 있다.
성종21(1490)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성(구영등성), 장목리와 가까운 곳에 있으며 진해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목리에 일본성이 있다.

일본여행을 하다보면 오사카성이나 구마모토성 등 일본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흔히 왜성이라는 하는 구조물이 우리 남해안 곳곳에 있다. 조선과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 3국이 한반도와 남해안 바다에서 치른 7년 전쟁의 결과물이다. 부산과 거제도와 진해만에서 순천만에 이르는 연안에 있다. 당시 왜성은 적굴, 왜의 진영, 증성(甑城) 등으로 불렸다. 19세기에 이르러 왜성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왜’라는 글자를 빼고 ‘OO성’이라 사용했다. 해방 후 우리 성과 구분이 되지 않아 문화재청에서 지역 명에 왜성이라는 말을 붙이면서 공식명칭으로 자리를 잡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주요 왜성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해 관리했으나, 1997년 지방기념물과 문화재자료로 위상을 낮췄다. 이렇게 방치되면서 무너지고 나무와 풀이 자라면서 숲으로 바뀌기도 했고, 접근하기 좋은 곳은 돌을 가져다 집이나 농경지를 만들 때 축대를 쌓기도 했다.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7년 동안 머물면서 쌓은 성은 전남 순천(1), 남해(1), 사천(1), 진주(1), 고성(1), 거제(4), 창원(7), 김해(2), 부산(11), 양산(2), 울산(2) 등 31개로 확인됐다. 지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해안에 집중해 있다. 왜성은 바다와 강 등 사방을 살필 수 있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언덕 위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천수각이라는 지휘소도 만들었다. 그리고 옆에 작은 봉우리에 지성을 두어 본성을 지켰다. 성은 치소를 위한 조선의 읍성과 달리 산정상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여러 개의 곽(郭)을 배치하거나 본성 안에 겹겹이 성곽을 배치해 외곽이 무너져도 쉽게 점령할 수 없는 구조로 이뤄졌다. 또 외곽에는 해자를 배치했다. 성벽은 일본성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60~70도의 경사를 이루게 쌓았으며, 성벽 외면은 면으로 쌓고 안에는 작은 돌을 채우고 흙으로 다졌다. 성벽은 각이 지게 굴곡을 주어 측면 방어를 용이하게 했다.

거제도 왜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직접 지시한 것이다. 1592년 7월 한산도에서 일본 수군이 대패했다는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는 ‘싸움을 피하고 거제도에 성을 쌓으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다음해 봄 직접 조선으로 건너가 조선군을 격파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산대첩으로 전세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일본군은 거제도 북쪽 영등포, 송진포, 장문포에 왜성을 쌓고 머물며 조선수군과 전투를 피했다. 거제도 서쪽 견내량에 추가로 성을 쌓은 것은 정유재란 때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쌓은 세 개의 성은 모두 장목리 주변에 있다.

장문포왜성과 송진포왜성은 칠천도를 앞에 두고 장목리로 들어오는 길목 좌우에 있다. 장문포왜성은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북쪽 야산 정상에 있으며, 송진포왜성은 장목리 증산 정상에 있다. 두 왜성은 장목항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영등포 왜성은 송진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구영마을에 있다. 그리고 바다 건너 북쪽 창원에는 웅천왜성, 안골포왜성, 명동왜성이 마주보고 있다. 그 물길은 진해만 입구로 일본으로 오가는 길목이다. 러일전쟁기에 일본군은 송진포에 해군기지를 설치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후 진해만 섬과 연안을 일본해군 요새로 구축했다. 지금은 거가대교가 만들어져 자동차가 오가는 길이다.

송진포왜성
송진포왜성
송진포로 가는 길에서 본 장목리, 소나무 뒤로 보이는 산에 장문포왜성이 있다
송진포로 가는 길에서 본 장목리, 소나무 뒤로 보이는 산에 장문포왜성이 있다

 

조개만 넣고 끓였어요

지난번에는 급한 일이 있다며 문을 닫는 바람에 문 앞에서 쫓겨났다. 대신 근처 식당을 찾아 장어탕을 시켰다가 크게 실망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지역 장어탕은 콩나물을 넣고 맑게 끓인다고 한다. 전라도사람 입맛에 맞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조개탕은 달랐다. 몇 년 전 친구들과 들러 먹은 이후 거제 북쪽으로 오면 반드시 들른다. 현지인들이 즐겨가는 집이다. 요즘엔 여행객들도 그런 집을 찾아가는 추세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조개탕집에 방문했다. 살짝 우려가 됐지만, 아내는 흡족해 했다. 반찬은 단순하다. 톳무침, 감자조림, 배추물김치, 돌나물물김치, 부추전 등이다. 그래도 조개탕에 만족하니 반찬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거제에서 조개는 개조개를 말한다. 메뉴에도 그냥 ‘조개탕’이라 적혀 있다. 개조개 네 개에 바지락이 한 두 개 섞여 있다. 물어보니 바지락을 넣어야 국물이 진하다고 한다. 물론 조개탕에 들어간 조개는 상품이 아니다. 크기도 작다. 개조개는 거제와 통영에만 아니라 여수, 태안 등에도 서식한다. 지난밤 술을 마신 듯한 옆 테이블 남자 세 명이 흡입하듯 조개탕 국물을 마시더니 속이 다 풀렸다며 금새 소주를 한 병 시킨다.

조개탕 백반
조개탕 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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