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과 거리두기’, 해양안전의 첫걸음
‘태풍과 거리두기’, 해양안전의 첫걸음
  • 최정환 해양경찰청 구조안전국장
  • 승인 2021.06.0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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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환 해양경찰청 구조안전국장
최정환 해양경찰청 구조안전국장

[현대해양] 코로나-19가 촉발한 팬데믹 상황이 2년 가까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해 집단 감염 사태로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확진자를 기록한 적도 있었으나, K-방역을 통해 성공적으로 대규모 확산을 막아내어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K-방역의 성공요인 중 하나는 ‘거리두기’이다.

 

올해 찾아올 태풍과 거리두기

여름이면 거리두기를 실천하고 싶은 달갑지 않은 손님, 바로 태풍이 찾아온다. 기상청 전망에 따르면 올해에도 평년과 같이 2~3개 정도의 태풍이 국내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현상인 태풍을 막을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코로나-19의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한 것처럼, 태풍으로부터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한다.

태풍과의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항해사들이 처음 항해술을 배울 때 태풍을 피해 항해하는 ‘태풍 피항법’을 배운다. 선박이 대형화 되고 운항 성능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오늘날에도 태풍을 극복하는 방법보다 태풍을 피하는 방법을 배우는 이유는 해상에서 태풍의 위험을 피해가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선박이동 대피명령

태풍과 거리두기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선박이동 대피명령’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나와 나의 주변사람들을 보호하는 것과 같이 선박이동 대피명령의 이행으로 운항 선박은 물론 바다를 터전으로 삼는 수많은 해양종사자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 해양환경의 보존도 가능하다. ‘선박이동 대피명령’은 수상에서의 수색·구조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양경찰 관서장이 조난사고가 우려되는 선박에 대하여 대피를 해야 하는 이유를 고지하고 대피 해역, 기간 등을 정하여 발령한다. 명령을 받은 선박을 특별한 이유 없이 따르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도 있다.

지난 해 8월 제8호 태풍 ‘바비’가 북상했을 당시 해양경찰은 태풍 이동경로 상 해역으로 진입 및 이동하는 선박에 대해 대피명령을 발령하였다. 그러나 외국 화물선 한척이 명령을 어기고 태풍의 이동경로를 향해 위험한 항해를 계속하였다. 해양경찰은 위 화물선에 과태료 처분을 하고 안전해역으로 이동할 때 까지 지속적으로 선박 안전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선적국 해상구조조정본부(RCC) 등 해상교통관리 기관에도 긴급서한을 보내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명령에 잘 따르도록 지도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다행스럽게도 1차 위반은 있었으나 이후 안전항해를 이어갔다.

태풍과의 거리두기 효과는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태풍 특보 발효 시 우리나라 인근 해역에서 240척의 크고 작은 선박사고가 발생하였으나,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았다. 많은 해양인들이 ‘태풍과의 거리두기’를 실천한 결과이다.

 

한층 강화된 태풍 대비 방안

해양경찰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에 대비하기 위해 선박이동 대피명령 제도를 적극 활용하여 소중한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박 안전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또한 해양경찰청에는 해양에서의 수난구호활동을 총괄하는 중앙구조본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인력을 보강하여 더욱 촘촘한 바다 안전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중앙구조본부는 평상시에는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 주관부서와 종합 상황실이 기본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난이 발생하면 해양경찰청장이 본부장이 되어 별도의 조직을 편성하여 24시간 비상근무 체계에 돌입하고 있다.

그동안에는 기상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정보를 입수하면 최소 인력으로 비상근무에 돌입한 후 태풍이 한반도에 인접한 경우에야 비로소 인력을 증원하였으나, 올해부터는 조기 선박 대피 등 보다 적극적인 안전관리를 위해 중앙구조본부가 구성된 초기부터 경비·항공·선박관제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여 우리 해양인들이 태풍에 피해를 받지 않도록 상황관리를 강화할 것이다. 또한, 올해는 선박 관제도 강화할 계획이다. 태풍이 북상할 경우 한시적으로 교통관제구역을 법으로 정해진 구역 바깥쪽 까지 확대하여 교통관제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원거리 선박에게도 태풍 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뿐만 아니라 민간해양구조대원과의 협력도 강화한다. 민간해양구조대원이란 해양경찰이 수색구조 민·관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시행하는 제도로, 지역 해양사정에 정통한 어민, 레저사업 종사자 등이 가입하여 해양경찰을 도와주고 있다. 지난 해 태풍 북상 시 지역 해양경찰관과 민간해양구조대원이 합동으로 해안가 및 항·포구 순찰을 시범적으로 운영하였는데 시범운영 결과 위험요소를 사전에 발견하는 등 안전관리에 많은 성과를 보여 올해부터는 정식으로 운영한다.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 민관이 협업하여 극복하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1951년부터 2020년까지 70년 동안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연 평균 3.2개인 반면 최근 30년간(1991~2020) 연평균은 3.4개, 최근 10년간(2010~2020) 연평균은 4개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슈퍼태풍의 경고 또한 계속되고 있다. 따뜻한 지구가 낳은 괴물이라고 불리는 슈퍼태풍은 1분 평균 최대 풍속이 시속 234km 이상인 태풍을 의미한다. 이렇듯 태풍은 강해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찾아오는 빈도 또한 많아지고 있다.

처음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할 때에는 마스크 착용과 전자출입명부(QR코드) 사용에 불편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마스크 없는 외출이 어색하다. 선박이동 대피명령도 이와 같다. 원치 않은 우회는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해양안전을 위해 우리가 꼭 익숙해져야 할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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