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5 - 부지런해진 개미가 된 사연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5 - 부지런해진 개미가 된 사연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5.12 2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벗』 창간호
『새벗』 창간호

[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어린이들에게 항상 유익한 지식을 재미있게 전해주려고 힘썼다. 그 수단이 된 것이 주로 동화였다. 향파 선생은 이런 동화 창작을 위해 오래된 옛이야기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어떤 사물이나 대상의 근원을 이야기로 풀어냄으로써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자아내게 했다. 그런 이야기 중의 하나가 ‘개미’에 대한 것이다. 개미의 허리가 잘룩해져 있는 것은 왜 그럴까? 어린이들이 의문을 가질만한 소재를 생물학적으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로 풀어내었다. 《새벗》 (1963.12)에 발표된 「부지런해진 개미」가 바로 이 중의 하나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 《새벗》은 1952년 1월 5일자로 피난 수도 부산서 창간되어 2000년 9월호로써 통권 500호를 기록, 오늘날까지도 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잡지이다. 창간사에는 “일천만 어린이를 생각하고 좋은 동무, 착한 친구, 참된 벗이 되어지려고 애를 쓰기 시작한 것은 벌써 2년 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중략>

그런데 어찌 뜻했겠습니까? 6·25 공산당의 우리 서울 침입으로 해서, 우리들의 소중히 아끼고 곱게 곱게 만들어 내려던, 어린이의 잡지는 송두리째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어찌 우리의 잡지뿐이겠습니까? 우리의 편집실도 우리의 굉장하던 회관도 우리들의 살던 집도 무너지고 불타버려, 남쪽으로 피난하기를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피난처에서 천막 속 흙바닥에서 고생하고 애쓰면서 공부하는 것을 보게 될 때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주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씩씩하고 올곧게 자라나야겠습니다. 튼튼하고 담대하고 또 솔직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잡지 《새벗》은 이러한 의미에서 여러분의 참된 동무가 되려는 것입니다. 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싸우고 같이 공부해서 같이 자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하략〉”

이런 정신으로 창간된 《새벗》에 개미의 허리가 가늘어서 잘룩해지게 된 과정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옛날의 일이었습니다만, 개미란 놈은 아주 게름뱅이어서 처음엔 토끼의 등 위에 붙어서 피나 빨아먹고 사는 고약한 기생충이었습니다. 그러니 일이라는 것은 할 필요가 없이 배가 고플 만하면 남의 피만 빨아먹고 사는 얄미운 벌레였던 것입니다.

어느 날도 개미들이 피를 빨아먹으려고 토끼의 등에 새까맣게 올라가 있으므로 토끼가 고개를 돌려 말을 했습니다.

“너희들 오늘 좋은 수가 있구나.”

“좋은 수가 뭐니?”

“밥이라는 거 먹어본 일 있어?”

“듣기만은 했지만.”

“그러니까 좋은 수라고 한 게 아니니. 자, 그럼 오늘은 그 밥이라는 걸 먹여 줄 테니 모두들 내 등에 붙어 있질 말구서 내려오라구.”

밥이라는 것을 맛보겠다고서 개미들이 쏟아지듯 죄다 땅으로 내려와 보니까, 과연 말대로 토끼는 나무 이파리 위에다가 밥 한 덩어리를 얹어 놓고는 입으로 그 이파리의 한끝을 물었습니다.

“자, 나 있는 데로 와….”

개미들이 밥을 먹으려고 우우 몰려가니까, 토끼는 이파리를 입에다 문 채 뒷걸음으로 깡충 뛰어가면서,

“자, 예까지 와 봐라. 예까지 와 봐라.”

했습니다. 밥을 먹어보고 싶은 생각에만 급해서 개미들이 우우 좇아가면 토끼는 또 뒷걸음으로 깡충 뛰어가면서

“예까지 와 봐라, 예까지 와 봐라.”

했으므로 개미들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 어디까지고 토끼를 좇아갔습니다.

“예까지 와 봐라! 예까지 와 봐라!”

그러다가 등에 무언가 툭! 받히는 것이 있기로 돌아다보았더니 그것은 큰 바위였습니다.

“이크! 이거 큰일 났구나!”

사정이 위급해진 토끼는 그 옆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하마트면 개미 떼들한테 포위를 당해서 꼼짝없이 피를 빨리워 죽게 될 지경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냐 요놈아! 네가 내려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개미들은 나무 사이로 삥 에워싸고서 장기전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토끼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토끼는 나무 이파리에 담아 가지고 있었던 그 밥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갔으므로 하루나 이틀쯤은 아무 고통 없이 지낼 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거와는 반대로 이 동안에 죽을 지경인 것은 개미들뿐이었습니다.

“인제는 우리가 다 죽게 됐지.”

“먹을 것을 너무 여러 때 굶어 놓았기 때문에 모두 허리가 가늘어지고, 눈이 폭 꺼져 들어갔어!”

그러고 있을 때에 토끼가 먹고 있던 밥알 한 낱이 나무 아래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야아 밥이다! 밥이다!”

개미들은 밥알 하나를 나눠 먹고서 겨우 정신이 돌아올 수가 있었습니다.

꺼졌던 눈도 얼마쯤은 다시 뜨여져서 길을 찾아 걸을 만한 기운은 되살아났습니다.

“자, 내 앞으로 다 모여라!”

두목의 개미가 큰 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장기전을 하려면 우선 무엇이든 먹고서 기운을 잃지 않아야 한다. 전원을 이 분대로 나누어서 일 분대는 이 나무 아래를 지키고 있기로 하고, 일 분대는 사람 사는 마을로 파견을 해서 밥을 얻어 오기로 하자!”

모두 옳은 말이라고 손벽들을 쳤습니다.

그래서 얻어 온 밥으로 해서 목숨만은 보존할 수가 있었으나, 정작 이 싸움을 받아 주어야 할 토끼는 어느샌지 도망을 치고 없었습니다.

개미들이 자고 있는 동안에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내뺀 것이었습니다.

개미들은 하는 수 없이 싸울 생각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피 빨아먹을 자리도 없어졌기 때문에 그때부터 시작해 토끼하고도 인연을 끊고서 저희들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개미의 허리가 지금도 가늘어서 잘룩해 있는 것은 그때에 고생을 한 까닭이라고 합니다. 눈도 그때부터 폭 기어들어 갔기 때문에 그 두 개의 뿔을 작지로 해 길을 찾으면서 남보다 더 부지런히 일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게으름뱅이였던 개미들이 부지런한 개미로 바뀌게 되는 사연을 흥미있게 전개하고 있는 향파 선생의 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이다. 아이들에게 게으름뱅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야기 속에 숨겨놓으면서도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이는 토끼와 개미를 등장시켜 개미들이 부지런하게 된 연유를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야기 전개 방식에 구어를 사용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직접 들려주는 동화가 되고 있다. 읽는 동화보다는 들려주는 동화가 아이들에게는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음을 향파 선생은 꿰뚫고 있는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