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㊴ 비릿한 멸치가 그리운 날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㊴ 비릿한 멸치가 그리운 날
  • 김준 박사
  • 승인 2021.05.11 20:5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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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현대해양] 우리나라에서 멸치축제가 열리는 포구는 부산 대변항과 남해 미조항이다. 코로나19로 그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포구에서 봄철에 멸치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미조항에서는 축제기간에 여행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북항 포구에서 멸치털이를 한다. 평소에는 남항 후미진 바다에서 털기에 직접 보기 어렵다. ‘어야라 차이야, 어야라 차이야’ 소리에 맞춰 그물을 털면 멸치가 하늘로 날았다가 떨어진다. 멸치는 유자망 그물에 걸려 배위로 올라오고, 멸치털이 때는 하늘을 날은 후 비로소 젓갈이 되어 밥상에 오른다.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는 남해도의 최남단에 있는 포구로 남항과 북항으로 나누어져 있다. 북항에는 천연기념물 무인도인 미조도가 있으며, 남항에는 수협 위판장이 있다. 미조리는 남해군에서 가장 많은 섬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모두 260여 가구에 360여 명이 살고 있다. 미조리는 조도와 호도 등 유인도 2개와 미조도, 애도, 사도 등 무인도 16개를 포함한다. 누에섬이라 불리는 남항 앞에 있는 미조도에는 동백, 잣, 해송 등이 어우러져 있다. 마을 앞에 있는 방풍림도 천연기념물로 후박, 육박, 생달, 감탕, 도나무, 사스레피나무, 광나무, 모실짓밥나무 등 상록수와 느티나무, 팽나무가 있고 그 아래 조록싸리, 보리수, 붉나무, 쥐똥나무, 작살나무, 예덕나무 활엽수가 울창하다.

활어위판장
 물미해안도로에서 본 미조리

그는 어떻게 마을신이 되었을까

미조리 나들목에 무민사라는 사당이 있다. 처음에는 바닷가에 있는 절이려니 생각했다. 최영(崔瑩)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일명 장군당이라고도 하는데, 신상(神像)같이 그려진 장군의 화상이 봉안된 데에서 연유한다.

어찌하여 최영은 남해도 끝 포구에 마을신으로 자리를 잡았을까. 1358년 왜구가 출몰하자 그는 양광도(경기도 일대)와 전라도의 체복사가 되어 서해와 남해의 왜구를 격파한다. 체복사는 고려왕조 공민왕과 우왕 연간에 왜구가 침입한 지역에 민정을 살피고 출정군을 감독하고 지방관을 관리하는 역할도 했다. 당시 최고 벼슬에 오른 장군은 요동정벌을 계획한다. 직접 팔도도통사를 맡고, 우군통사는 이성계가 좌군통사는 조민수가 맡았다.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원정에 나섰지만 이성계가 좌군통사를 회유,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건국한다. 고려왕조를 지키려 했던 최영은 이성계의 손에 죽는다. 그는 죽었지만 남해안 곳곳에는 그를 마을신으로 모시고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고 있다.

약 500년 전, 미조진 첨사의 꿈에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최영장군의 영정과 칼이 바닷가에 있으니 잘 모셔라’고 했다. 깜짝 놀라 일어난 첨사는 바닷가에서 나무 사장에서 영정과 칼을 발견해 잘 모셨다. 예전에는 미조진에서 제사를 주관했으나, 1950년 경 이 지방 유지들로 구성된 고적보존회가 허물어진 사우를 중수하고, 해마다 섣달그믐날과 8월 보름날 두 차례 제향을 지내고 있다. 비록 정적으로 최영을 쳐냈지만 태조도 그를 인정해 최영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무민’이라 시호를 내렸다.

역사는 참 아이러니하다. 남해도의 명산인 금산에는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 100일 동안 치성을 드린 기도처가 있다. 그렇게 함께 왜구를 물리치고, 요동정벌에 나섰던 고려말 두 장군은 남해에서 다시 다른 일로 조우해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최영장군을 모신 곳은 통영 사량도, 통영 미륵도, 제주도 추자도, 부산 감만동에도 있다. 특히 부산의 감만동 사당은 이름도 무민사다. 최영장군이 감만포에서 왜구를 격파하자 마을사람들이 그를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공덕을 기렸다고 한다. 왜구의 피해가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불태우자, 해방후 터에 향을 올리다 1968년 다시 지었다. 마을신만 아니라 많은 무속인들은 삼국지의 관우처럼 최영을 호명해 신으로 모신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 100일 기도를 했다는 금산 ‘이태조단’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위해 100일 기도를 했다는 금산 ‘이태조단’

 

멸치쌈밥에서 멸치젓갈까지

남해를 상징하는 특산물은 땅에는 마늘과 고사리, 바다는 멸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멸치는 어법에 따라 낭장멸치, 죽방멸치, 정치망멸치, 유자망멸치 등이 있다. 또 크기에 따라 소멸, 중멸, 대멸로 나누기도 한다. 남해의 멸치로는 정치망멸치와 죽방멸치가 유명하며 유자망멸치는 기장에 미치지 못한다. 봄이되면 남해의 미조항과 부산의 대변항에서는 멸치축제가 펼쳐진다. 코로나19로 최근에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김장용 젓갈을 구하려는 손끝 매운 분들은 봄나들이로 이곳을 찾는다. 유자망에 꽂힌 멸치는 터는 과정에서 멸치대가리와 내장이 빠져나기도 해서 젓갈로 담그기 좋다. 정치망에 갇혀 잡힌 멸치의 경우엔 대가리는 물론 은빛 비늘마저 오롯이 남아 있어 쌈밥이나 구이로 좋다. 이렇게 봄철 잡힌 대멸은 잡히는 방법에 따라 운명이 달라진다.

멸치회
멸치회

 

미조도 옆에도 멸치를 잡는 커다란 정치망이 설치되어 있다. 남해의 바닷마을에서는 정치망의 크기나 위치가 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농사지을 땅이 적고 지금처럼 교통이 편하지 못했던 시절에 돈은 오롯이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었다. 정치망 하나를 운영하려면 너댓 명의 장정이 있어야 하고, 뭍에서는 멸치를 삶고 말린 후 선별을 한 후 상자에 담는 사람까지 손이 많이 필요하다. 지금은 선별작업과 건조작업을 기계에 의존한다. 그래도 적잖은 사람이 필요하다.

아침부터 멸치털이를 시작해 오후에 마무리되었다. 상장에 가득 담은 멸치가 위판장으로 올라온다. 경매가 시작되고 뒤쪽에서는 싱싱한 멸치를 구입하는 사람들을 위해 바로 소금에 버무릴 준비를 한다. 구매자는 두 눈으로 확인하고 소금도 살핀 후 버무려 달라고 주문한다. 이렇게 볼 일을 마치면 인근 식당으로 옮겨 새콤달콤한 멸치회나 멸치쌈밥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멸치쌈밥에 보리밥은 봄철 주린 배를 채우던 별식이었다. 봄철에 올라온 고사리나 겨우내 갈무리해 둔 시래기를 넣고 한 솥 조리한 쌈밥은 보리밥을 넘기는데 더 없이 좋았다.

활어위판장
활어위판장

 

아름다운 자동차길 ‘물미해안도로’

우리나라는 전국에 빼어난 해안도로들이 있다. 서해엔 노을이 아름답고 칠산바다를 곁에 두고 달리는 백수해안도로, 동해엔 물이 들 듯 짙푸른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와 하얀 모래와 갯바위와 석호를 들락날락하며 달리는 헌화로가 있다. 그리고 남해에는 남해도의 미조항에서 물건리항까지 이어지는 물미해안도로가 있다.

물미해안도로는 35.2km에 이르는 자동차도로다. 물건항에서 미조항에서 이르는 길이라 ‘물미해안도로’라 했다. 그 길 위에 초전마을, 항도마을, 대지포, 은점마을, 독일마을, 물건리 등 아름다운 남해의 어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길 외에도 창선도에서 사천에 이르는 다리, 명승 가천다랭이논을 보면 돌아보는 남면이 해안길도 아름답다. 물미해안도로는 봄에도 좋지만 가을에 단풍과 함께 달리면 더욱 좋다. 미조마을, 초전리, 항도마을, 노구마을, 대지포, 은점, 독일마을, 원예예술촌, 물건리로 이어지는 길이다. 곳곳에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이 있고, 식당도 있다. 한려해상 쪽빛바다와 숨박꼭질하듯 달린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매력적인 남해안 해안경관도로 15선 중에 남해도에만 남면해안도로, 동대만해안도로 그리고 물미해안도로까지 세 개가 있다. 지금껏 여러 해안도로를 달려보았지만 경관은 아름다워도 어촌의 정취까지 물씬 나는 곳은 드물었다. 물미해안도로는 어촌, 포구, 바다, 그리고 만까지 고루 갖춘 어촌해안경관의 끝판왕이다.

미조항에서 배를 타면 10여분 이내에 새섬과 호랑이섬에 갈 수 있다. 경남이 추진하고 있는 ‘살고 싶은 섬’ 사업을 주인공인 섬이다. 조도라 부르는 새섬은 민자를 유치해 숙박시설을 비롯해 힐링섬으로 만들기 위해 추진하고 있다. 새섬은 낚시객들이 많이 찾는 섬으로 폐교를 숙박과 식당을 겸한 체류형 섬으로 계획 중이다.

미조항 북항, 앞에 보이는 섬이 미조도다
미조항 북항, 앞에 보이는 섬이 미조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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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근 2021-05-13 05:01:10
남해 미조 풍경 https://youtu.be/76AgxQcF02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