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불립(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
  • 김성욱 본지 발행인
  • 승인 2014.06.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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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욱 본지 발행인
민주주의의함정- 우민정치(愚民政治), 여론정치가 나라를 망친다

“내게 술을 권하는 것은 홧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오.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사회라는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 (중략) … 여기 회(會)를 하나 꾸민다 합시다. 거기 모이는 사람놈 치고 처음은 민족을 위하느니 사회를 위하느니 그러는데, 제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놈 하나도 없어. 하다가 단 이틀이 못 되어 되지 못한 명예싸움, 쓸 데 없는 지위 다툼질, 내가 옳으니, 네가 그르니, 내 권리가 많으니, 네 권리가 적으니 … 밤낮으로 서로 뜯고 찢고 하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요. 하려는 놈이 어리석은 놈이야. 정신이 바로 박힌 놈은 피를 토하고 죽을 수 밖에 없지. 그렇지 않으면 술밖에 먹을 게 도무지 없지 … 내가 술을 먹고 싶어 먹는게 아니야…”

우리나라 근대 단편문학의 대표작가로 평가받는 현진건 선생의 『술권하는사회』에 나오는 술 취한 남편의 독백이다. 작품 중 남편은 중학을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나섰던 일제시대의 엘리트청년이었다. 부인은 남편의 성공을 위해 신혼의 꿈을 접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왔다. 일본유학길에서 돌아온 남편은 무엇 하나 되는게 없는 부조리한 조선사회에서 삶의 희망과 의욕을 잃어간다. 오로지 남편의 성공만을 기대하며 뒷바라지를 해왔던 순박한 아내는 절망한 어조(語調)로 소곤거린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술권하는사회」의 말미에 나오는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현진건 선생이 살았던 1920년대 우리사회의 모습이나 9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의 모습이나 양심적인 지식인이 겪는 번민과 고뇌는 전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천박한 자본주의, 민주(民主)의 탈을 쓴 우민정치(愚民政治), 국민을 팔아먹는 시대착오적 이념논쟁, 오로지 권력욕에만 눈이 먼 타락한 정치꾼들 … 이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순박한 국민들은 저들이 만들어낸 조작된 여론에 따라 울고 웃는 꼭두각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친미분자(親美分子)로 몰리면 왕따를 당하고, 내편이 아니면 친일(親日) 반민족의 올가미를 씌워 인격살인을 자행하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맨정신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만 느껴진다. 미국산쇠고기의 광우병파동으로 전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었던그 참담하고 부끄러운 기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언론의 자유’라는 미명(美名)아래 국가의 근간을 흔들고, ‘국민의 알권리’라는 얄팍한 속임수로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파렴치한 언론인과 정치집단에 대해서는 끝까지 그 책임을 따져 물어야 한다.

지금은 우리 국민들의 각성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사퇴파동을 단순히 여야(與野)의 권력다툼이나, 보수와 진보의 이념논쟁의 희생양쯤으로 어물쩍 덮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진실을 호도한 채, 조작된 여론으로 국가의 근본을 흔들고 우리사회를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또다시 몰아넣는 행위를 이상 더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거짓선동과 혼란의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엄청난 부담으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핵폭탄으로 무장한 비정상적인 공산집단을 머리 위에 이고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생존과 번영, 나아가서는 통일을 위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지, 눈을 크게 뜨고 통찰(洞察)해 보아야 한다. 집권 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차기 정권을 노리는 야당에게 있어서도 ‘진실’만큼 훌륭한 통치수단은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언론이 진실을 외면한다면 이 나라 민주주의는 희망이 없다”며 비장한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남기고 떠난 언론인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충언(忠言)을 정치인을 비롯한 모든 계층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들이 가슴 속 깊이 되새겨주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人事가 萬事, 공직사회에 활력이 필요하다

세월호의 비극이 아직 끝나기도 전에 인사청문회 회오리 바람이 국민들의 가슴에 커다란 응어리만 남긴 채 또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우리 사회를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싸움판으로 몰아 넣고 있는 이념적 갈등이 극(極)에 달했다는 생각이 든다. 갈등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평가하는 사회학자들도 있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대전제(大前提)가 따른다.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조정할 수 있는 대화의 메카니즘이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직만큼 위대한 정책은 없다’는 명언이 생각난다. 공자(孔子)는 제자 자공(子貢)에게 민무신불립(民無信不立)이라고 가르쳤다. 백성들을 배불리 먹이고, 국방을 튼튼하게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국가는 존립할 수가 없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다시 말하자면 신뢰는 정직하고 진실한 언행으로부터 나오는 법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이후 이주영 장관이 사고현장에서 몸소 실천한 진실한 몸가짐이 실의와 울분에 빠진 유가족들 믿음을 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월호 사고의 주무장관이면서도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은 것은 믿음과 진실한 행동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 장관 앞에는 수산중흥이라는 수 많은 난제(難題)가 가로놓여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극도의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공직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 난마처럼 얽혀 있는 학연(學緣), 지연(地緣), 전관예우(前官禮遇) 등의 사슬을 과감하게 걷어내고 능력위주, 현장 위주의 탕평인사를 하루 빨리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양수산부가 「관피아」 논란의 중심에 서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실제 보다 과장되게, 마녀 사냥식으로 조직의 명예가 훼손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평생동안 국민의 공복(公僕)으로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공직자들도 많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의 시발점이라고 했듯이 극도의 패배감과 죄책감에 빠져있는 공직자들에게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는 혁신적 인사가 이주영 장관에게 주어진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민주정치에 있어서 무관심이 최대의 적(敵)이라 했듯이, 공직사회에 있어서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이 최대의 적이다. 하지 않아도 욕먹고, 해도 욕 먹는 일이라면, 하고 욕 먹는 사람에게 보상이 돌아가는 인사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추진하지 않음으로써 실패하지 않은 공직자보다는 정책수행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시행착오를 저지른 공직자에게 더 많은 가점(加點)이 주어지는 그러한 인사정책이 뿌리내려야 한다는 얘기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요, 진실과 신뢰가 최고의 정책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칭찬을 하면 고래도 춤을 춘다는 격언을 꼭 기억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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