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전의 후예들과 수산연구 100년
정약전의 후예들과 수산연구 100년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04.1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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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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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지난 3월말 개봉한 이준익 감독 영화 자산어보’(The Book of Fish)가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이 영화는 동명의 책 자산어보가 탄생하게 된 배경, 당대 민초의 삶과 가치관, 실학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소재가 된 자산어보(玆山魚譜)’는 순조 1(1801) 신유박해로 머나 먼 고도(孤島) 흑산도로 귀양 보내진 실학자 손암 정약전이 그 곳에서 수산생물에 매료돼 장창대라는 청년어부의 도움을 받아 쓴 어류대백과사전이다.

손암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활홍어를 처음 먹어보는 등 뭍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며 해양생물도감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14년간 자산(어두운 느낌의 흑산을 달리 부른 말)의 수산생물 관찰, 분석, 기록에 매진했다.

손암은 자산어보 서문에서 이 책은 병을 치료하고, 쓰임을 이롭게 하며, 재물을 잘 관리하는 여러 박물자(지금의 과학자 의미)에게 진실을 바탕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 있을 것이라며 학문이 삶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철학을 강조했다.

놀라운 것은 1814년에 펴낸 이 자산어보에는 동해의 청어와 서해의 청어 척추수가 다르다고 기록돼있을 정도로 계군(系群)이라는 집단 사이 형질 차이 개념을 이미 200여 년 전에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는 서양에서 청어를 대상으로 형질 차이를 최초로 밝힌 과학자 하잉커(Heincke) 보다 100년가량 앞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세계 최초로 수산생물 계군을 기록한 것이 우리의 자산어보라는 뜻이 된다.

자산어보는 지난 224일 국립중앙과학관에 동의보감등과 함께 국가중요과학기술자료로 등록되기도 했다. 디지털 혁명, 첨단과학의 길을 달리는 이 시대가 2세기 전 실학자의 성과물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2021, 근현대 수산연구 100년의 해

올해는 근현대(近現代) 수산연구 100년이 되는 해이다. 국립수산과학원(원장 최완현)은 오는 26일 개원 72주년을 맞아 근현대 수산연구 100년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조촐한 행사를 한다고 한다. 견해에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근현대적 의미의 수산연구는 1921년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수산시험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단편적이었고 어로, 제조, 해양 등 수산업 전 분야를 종합적으로 시험한 것은 조선총독부 수산시험장이 처음이라고 보는 것이다.

일본이 한반도에 수산시험장을 설치한 이유는 우리 수산자원을 효율적으로 수탈하기 위함이었다. 비록 의도는 순수하지 못했지만 일제강점기 이뤄진 수산연구 역사마저 의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 중 의미 있는 작업이 하나 있다. 우치다 게이타로(內田惠太郞, 1896~1982)의 연구와 저술이 그것이다. 우치다 게이타로는 1927년부터 1942년까지 조선총독부 중앙수산시험장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나라 수산생물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채집했는지 1964치어를 찾아서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 책은 1994년 현대해양사(現代海洋社)에서 한국어판(변충규 역)으로 출간됐다. 이는 비록 일본인에 의해 저술되긴 했지만 정약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주요 어종의 생활사와 생태를 자세히 기술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사료로 구분된다. ‘치어를 찾아서-한 번역을 맡았던 변충규 전 제주대 교수는 이 책을 보지 않고는 우리나라 수산업과 수산생물을 논할 수 없다고 역자의 말로 남겼다.

이처럼 손암으로부터 시작됐던 우리의 자발적 수산생물 연구는 일제강점기에 주춤하긴 했지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인 1949426일 상공부 중앙수산시험장 개장(開場)으로 다시 발전기를 맞게 된다. 상공부 중앙수산시험장은 몇 번의 기관 변모를 거쳐 지금의 국립수산과학원으로 개칭, 발전돼 왔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사명

국립수산과학원은 개원 72주년을 맞아 국내 수산정책 지원과 현장기술 보급을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할 계획이다. 더불어 수산생물 및 어구 도감 발간 연근해 해양자료 DB 구축 김양식 기술 개발 전복양식기술과 육종 개발 넙치양식기술과 유전체 기반 생산성 고도화 원양어장 개척 조사 등 100대 성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수산과학을 연구하는 유일 최고 국립기관이다. 만큼 그 책임과 역할, 사명이 매우 막중하다할 수 있다. 대한민국 수산생물 자연사 연구는 물론 수산기술 발전이 정약전의 후예들, 즉 이곳 연구사, 연구관들 손에 달려 있다.

수산과학원 연구자들은 손암이 고도(孤島)에서 십수 년 간 수산생물 연구에 몰두했듯이 어업인들을 위한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또한 손암이 자산어보에서 실학의 정신을 강조한 것처럼 우리 어업, 어촌, 수산에 적용할 수 있는 연구와 실용화에 더욱 힘써야 한다. 미래 수산연구 100년이 이들 정약전의 후예들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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