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세계사를 바꾼 대구
⑮세계사를 바꾼 대구
  • 정석근 제주대학교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 승인 2021.04.1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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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근 제주대학교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정석근 제주대학교 해양생명과학과 교수

[현대해양] 생선과 사람을 맞교환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둘 다 상품으로서 파고 살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교역이 진행되는 동안 손상되지 않고 잘 보존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수산 시장에서 거래되는 생선은 활어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냉동 또는 냉장된 선어이다. 지금처럼 비행기나 철도와 같은 빠른 운반 수단과 냉장고가 없었던 수백 년 전에는 몇 주 이상 보존하기 힘든 대부분 생선들은 교역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가까운 어촌에서 생계형으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일부 생선들은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면서 그 보존기간을 늘려 교역의 대상이 되어왔다. 가령 조선시대를 보면 참조기를 말린 굴비, 고등어를 소금에 절인 간고등어, 그리고 각종 생선 젓갈은 해안가뿐만 아니라 내륙 깊은 곳까지 운반하여 팔 수 있었다. 특히 영남, 영동 지역 해안에서 잡아 말린 건대구는 조정에 바치는 세금으로, 또 조선정부에서는 중국에 바치는 공물로도 수백 년 동안 쓰여 왔다.

어업 생산물이 자본주의 시장에 본격 들어가게 된 것은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통조림이 개발되면서이다. 자본주의 시장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생계에 필요한 만큼 잡는 것이 아니라 잡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잡는, 다른 말로는 ‘남획’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통조림이 개발되기 전에는 말려서 소금에 절인 대구만이 국제 교역 대상 수산물이었다.

 

대구와 인간 흥망

사람을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는 경우는 노예들이다. 말린 대구(大口)와 노예를 배로 교역하는 일이 불과 200년 전까지 북대서양에서 벌어졌다. 미국 언론인이자 작가인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가 1997년 펴낸 ‘대구: 세상을 바꾼 물고기 일대기(Cod: A Biography of the Fish that Changed the World(1997)’, ‘세계 역사를 바꾼 물고기 대구 이야기(2006 이선오 옮김)’는 북대서양을 무대로 대구를 두고 지난 1,000년 동안 벌어졌던 인간의 흥망성쇠 역사를 다루고 있다.

그림1. 대구: 세상을 바꾼 물고기 일대기
그림1. 대구: 세상을 바꾼 물고기 일대기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북해를 비롯한 북유럽 연안에서 아이슬란드까지 해역이 대구 어장이었으나, 아마도 10세기 무렵 지금 스페인 북부와 프랑스 남부 지역에 있는 바스크 사람들이 캐나다 뉴펀들랜드와 미국 뉴잉글랜드에 연안에서 대구 어장을 발견하고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들만의 비밀을 유지하면서 수백 년 동안 대구를 어획했을 것이라는 여러 가지 증거들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그 뒤 이 새로운 대구 어장과 관련되어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는 숨겨진 역사, 또 이 북아메리카 식민지 지역에서 생산된 대구를 선박을 통한 동서 횡단 무역을 통해서 유럽에 공급하고, 또 남북 종단 무역을 통해서 서인도제도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노예들의 값싼 단백질 식량으로 공급하게 되면서 뉴잉글랜드가 급격히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되고 이는 유럽 열강끼리 식민지 지배 분쟁은 물론, 결국 미국독립전쟁까지 일으키게 된다.

 

 

수많은 어부들 희생 속에서 이뤄진 대구 어획

세상은 도전하는 자들이 결국 지배하게 마련이다.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국가들이 농업에 치중하여 해양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반면, 유럽은 그리스 시대부터 꾸준히 해양을 개척하고 해상무역을 해왔다. 바다는 위험한 곳이다. 그럼에도 유럽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미지의 해양을 탐험해왔는데, 이것은 아마도 작은 산악 도시국가들끼리 내부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해양으로 또 다른 영토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지형적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는 일본 사무라이들이 내부 전쟁을 통해서 경쟁하다가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통일을 하자 곧 대륙침략을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것에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북서대서양에서는 20세기 초까지 스쿠너(Schooner)라고 하는 2개 이상의 큰 돛을 단 어선들이 대구를 주로 잡았는데, 여기에서 도리(Dory)라고 하는 한두 사람 정도 탈 수 있는 작은 배들을 내려서 손낚시로 대구를 잡았다. 스쿠너의 속도를 더 내게 하려면 돛이 더 커져야 하는데, 갑자기 부는 광풍에 뒤집어질 확률도 높아진다.

또 도리 1척에서는 많게는 수백 마리의 대구를 한꺼번에 잡아 실을 수 있는데, 대구를 많이 잡을수록 작은 파도에도 쉽게 가라앉았다. 따라서 북대서양 대구 어획 역사는 수많은 어부들의 희생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가령 대표적인 대구 양육항인 지금 미국 매사추세츠 글라스터(Gloucester)는 당시 인구가 1만 5천이었는데 1830-1900년 70년 동안 물에 빠져 죽은 어부 숫자는 3,800명이었다. 지금도 다른 농업이나 건설업에 비교해서 어업에서 산업재해율이 가장 높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주역

아무리 많이 잡아도 자연의 조화로 대구는 계속 많이 잡힐 것이라는 19세기 빅토리아 낙관주의 믿음은 증기기관을 갖춘 트롤어선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기존의 무동력선이나 낚시 또는 수동적인 자망(Gillnet)과는 어획강도에서 비교가 안 되는 터빈엔진과 오토 트롤로 무장한 동력선이 바다 바닥을 싹쓸이하면서 지나가는 환경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어업이 20세기 후반에 전 세계에서 시작된다. 수백 년 동안 연안에서 작은 무동력선으로 대구를 잡았던 아이슬란드는 동력 트롤어선을 도입하고 2차 세계대전동안 대구를 단백질 영양공급원으로 영국 등 유럽에 독점적으로 공급하게 되면서 반어반농 기반 수백 년 빈곤국가에서 탈피하게 된다.

대구 어업이 경제에서 아주 일부인 영국과 전부인 아이슬란드 사이에 1950년에서 1970년대에 걸친 세 차례 대구 전쟁은 어업권 분쟁이며, 실제 전사자는 운 좋게도 한 명도 없었다. 인구 30만 밖에 안 되고 변변한 군함도 없는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는 ‘대구 전쟁’에서 인구가 200배나 더 많고 항공모함까지 갖춘 영국에 모두 이겼다. 전쟁은 단순한 무력 싸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유럽 방어에 지정학적으로 결정적인 아이슬란드에 소련 공군이나 미사일 기지가 들어가는 것을 미국이나 NATO 국가들 모두 두려워했기 때문이다(그림 2). 처음 어업권을 두고 벌어진 이 대구 전쟁은 결국 해양영토분쟁으로 발전하게 되고 결국 지금 세계 각국이 선포하고 있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림 3. 뉴펀들랜드가 있는 그랜드 뱅크의 주요 해류
그림 2. 서유럽 방어 전략 요충지로서 아이슬란드 위치

유럽 대구 어획 역사가 한국 수산업의 미래

북유럽 연안에서도 대구 어획량이 감소하는 위기가 있었지만 이미 국제해양수산기구인 ICES(International Council for the Exploration of the Sea)가 20세기 초에 설립되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수산자원 관리를 통해서 그 위기를 무난히 넘겼다. 그러나 북서대서양 뉴펀들랜드와 뉴잉글랜드의 경우 1990년대 중반 갑자기 대구가 거의 사라졌으며, 약 3만 명에 달하는 캐나다 대구 어업인들은 지금도 정부가 주는 생계지원금으로 살아가고 있다.

뉴펀들랜드에서는 지금 약 20년 동안 대구 어획 모라토리엄을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구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대구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연구조사용 대구를 전통적인 손낚시로 잡으러 가는 뉴펀들랜드 어업인의 하루 일상으로 이 책은 시작된다. 대구 어획 1,000년 역사가 모두 14장에 걸쳐서 전개된다.

책 곳곳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곳곳의 전통 대구 요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책 마지막에는 다시 처음 뉴펀들랜드로 돌아가서, 대구가 더 이상 안 잡히자 어부들이 다른 직종으로 전업하고 선박은 묶여있거나 관광유람선으로 바뀌게 되면서, 앞으로 이 지역 대구 관련 문화가 완전히 사라질 것을 걱정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유럽의 대구 어획 역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수산업의 미래를 다시 볼 수 있으며, 해양 개척과 이용으로 어떻게 유럽이 19세기 후반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게 되었는지 대구라는 한 생물종으로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림2. 서유럽 방어 전략 요충지로서 아이슬란드 위치
그림3. 뉴펀들랜드가 있는 그랜드 뱅크의 주요 해류

명태는 어디로 갔을까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대구는 대서양 대구(Gadus morhua)와 거의 비슷한 태평양 대구(Gadus macrocephalus)이다. 유럽인들은 대서양 대구가 훨씬 맛있다고 생각하며, 실제 어획량에서도 대서양 대구가 압도적으로 많이 잡힌다. 유럽인들은, 특히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대구를 뼈와 껍질까지 버리는 것 하나도 없이 다 먹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대구도 마찬가지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곳곳에 대구가 언급될 정도로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대구는 중요한 어종이었겠지만 유럽 역사에서 대구의 중요성에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대구가 많이 잡히는 진해만 인근 대한해협, 그리고 동해 연안은 대륙붕으로 그 해양학적 특징이 심해에서 올라오는 찬물과 따뜻한 표층이 서로 만나는 뉴펀들랜드가 있는 그랜드뱅크(Grand banks)를 비롯한 다른 북서대서양 대륙붕과 유사하다(그림 3).

냉수어종인 대구가 많이 잡힐 때는 청어도 따라 많이 잡히는데,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 바다에서 대구와 청어가 꾸준히 많이 잡히고 있다. 대구와 청어 서식지 서남방 한계가 우리나라 바다이기 때문인데, 동남해 저층 수온이 내려갔기 때문이다(현대해양 2020.6월호 연재 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45 참고). 그러나 같은 냉수성 어종인 명태는 대구, 청어와는 반대로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줄어서 지금은 우리 바다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는데 북한 원산 앞바다 부근에서는 표층과 저층 수온이 모두 올라갔기 때문이다(현대해양 2020.5월호 연재 http://www.hdh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122 참고).

또 대구는 바다 바닥 기질에 붙은 침성란을 낳는 반면에, 명태는 알이 바다 속에서 위아래로 둥둥 떠다니는 부성란을 낳는 차이 때문에 기후변화에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반응을 보이는데 것으로 추측되는데 앞으로 구체적인 연구 조사가 필요하다. 명태와는 달리 대구는 황해에서도 서식한다. 황해는 대구가 서식할 수 있는 경계 해역이라 그 환경이 대구에게는 가혹하다. 따라서 동남해 대구보다 천천히 자라는 반면 성숙은 1~2년 정도 빨리 하므로, 흔히 황해 대구를 ‘왜대구’라고 한다(이경환 외, 2016. ‘동해와 황해 대구(Gadus macrocephalus)의 생물학적 특성 비교’ 한국수산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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