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는 왜 예비타당성조사 벽을 넘지 못할까
해수부는 왜 예비타당성조사 벽을 넘지 못할까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04.12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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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우 부족에 의지까지…”
해양수산부. 사진=박종면 기자

[현대해양] 중요한 해양수산 사업계획이 ‘예비타당성 조사’라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번번이 실패하고 있어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예비타당성조사제도(豫備妥當性調査制度)는 대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 경제성 분석, 투자 우선순위, 적정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따위의 타당성을 검증함으로써 대형 신규 사업에 신중을 기하고 국가재정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를 말한다. 무분별한 개발에 따른 국가예산 소모를 막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기도 하다. 정치인, 지자체 단체장 등의 선심성 공약 남발과 정부부처의 예산 낭비를 막는 기능도 한다.

흔히 ‘예타’라고 줄여서 부르는 이 제도는 500억 원이 넘는 사업 중에서 국비 지원이 300억 원 이상 들어가는 사업에 대해 경제성, 효과 등을 따져 사업을 할지 말지 조사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해양수산부에는 넘지 못할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예타를 통과하지 못한 대표적인 해수부 사업으로 △진해신항(부산항 제2신항) 건설계획 △제2쇄빙선 건조 △아쿠아팜4.0 혁신기술개발사업 △신자산어보 프로젝트 등이 있다.

 

진해신항(부산항 제2신항) 건설계획 예타 탈락

먼저, 진해신항(부산항 제2신항) 건설계획은 ‘제4차(2021~ 2030) 전국 항만기본계획’에 포함된 해수부 역점사업이다. 이 사업계획은 대통령과 국무회의에 보고된 계획이다. ‘진해신항’이라 명명된 ‘부산항 제2신항’ 건설계획은 정부가 창원시 진해구 연도 서측에 총 12조 543억 원을 투입해 완전자동화 시스템 도입을 통한 스마트물류허브항만으로 조성하려고 한 해수부 사업이자 경남 사상 최대의 국책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진해는 경남 경제의 새로운 심장이자 동북아 물류중심지로 도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17일 국무회의에서 “오는 2030년까지 진해신항을 3만 TEU급 초대형선이 접안할 수 있는 완전 스마트 항만시설로 만들겠다”고 문 대통령에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불발, 즉 실패했다. 대통령 보고 1주일 뒤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예타 결과가 ‘탈락’으로 전해졌다. 비용 대비 수익효과를 따지는 경제성 분석(B/C)에서 0.92,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을 평가하는 종합평가(AHP)에서 0.497점을 받은 것이다. 전자는 1, 후자는 0.5점 이상이 통과 조건이다.

해수부의 기대와 달리 KDI는 사업 규모가 너무 커서 전체 기본계획 아래 단계별로 예타를 받는 게 적합하다고 권고했다. 또한 대규모 재원 투입 감안 시 경제성 항목이 중요하고 건설·운영 과정에서 환경성 및 부정적 영향 등 해소 추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받았다.

국무회의에서 장관이 직접 발표한 뒤 1주일 만에 예타 탈락 소식이 전해지자 장관은 물론 차관, 실장, 국장, 과장 등 간부 공무원들은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했다.

 

제2쇄빙연구선은 왜 안 될까?

다음은 제2쇄빙연구선 건조사업. 남·북극 극지연구에 꼭 필요하다고 하는 제2쇄빙연구선 건조사업도 2018년, 2019년 두 차례 도전했지만 예타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사업을 평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과기평·KISTEP) 자문회의 평가점수가 낮았다. 2018년 첫 예타 평가 때 제2쇄빙선사업은 AHP값이 0.291에 그쳐 고배를 마셨다.

제2쇄빙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나왔다. 그럼에도 예타의 벽을 넘는 데는 부족함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제1호 쇄빙연구선인 아라온호가 취역한 지 10년이 넘은데다 아라온호 1척만 1년 365일 중 300일 이상 남극과 북극을 오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 피로도가 심해 극지연구에 많은 제약이 따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극지연구는 기후변화, 나아가 기후위기라는 문제를 풀어줄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들은 극지연구에 매달리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쇄빙선의 주요 임무는 북극해와 남극해를 오가며 결빙해역 연구 및 남극 2개 과학기지(장보고·세종과학기지)에 보급을 지원하는 것이다. 아라온호는 연간 300여 일을 홀로 운항하며 북극에서 1~2개월, 남극에서 6개월을 보내고 있다. 또한, 아라온호의 쇄빙(碎氷) 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영역이 한정된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예타의 벽에 막혔다가 3차에 도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쇄빙선 아라온호
쇄빙선 아라온호

 

아쿠아팜4.0은 왜?

아쿠아팜4.0 혁신기술개발사업(아쿠아팜4.0사업)도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한 대표적인 사업이다. 아쿠아팜4.0사업은 7년간 국비 6,000억 원이 투입되는 역대 최대 규모 양식 연구개발(R&D)사업이다. 이는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양식 연구개발(R&D)사업’이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해수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다부처 주도 R&D 사업인 아쿠아팜 4.0프로젝트를 추진, 지난해 2월 과기평(KISTEP)에 사전평가서를 제출했다. 이 또한 예타 대상에 선정되는데 까지는 성공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실패했다. 아쿠아팜4.0사업의 핵심내용은 △IoT 센서 등을 활용한 수질·사료·질병관리 등 전 과정 데이터화 △스마트양식 빅데이터 센터 구축 △양식데이터 유통시스템을 통한 거래 기반 마련 △생육·기기·수질 등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최적의 사육 알고리즘 구축 △맞춤형 사료 개발과 지능형 먹이공급시스템을 통한 사료효율 극대화 △AI기반 질병 예방 솔루션 구축 통한 수산질병관리 등이었다.

아쿠아팜4.0사업이 예타를 통과할 경우 국내 양식산업에 획기적 발전이 기대된다는 희망이 있었다. 사전평가를 통과한 사업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아쿠아팜4.0 프로젝트가 추진된다면 국내 양식산업 발전사에 큰 획을 긋게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이 또한 과기평에서 주관한 예타의 벽을 넘지 못했다.

뼈아픈 사례가 또 있다. 신(新)자산어보 프로젝트다. 신자산어보 프로젝트는 부활 해수부 초기 야심작이었다. 신자산어보 프로젝트는 수산자원 조사에서부터 조성, 관리는 물론 이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산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국민에게 질 좋고 안전한 수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수산계 최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2014년 1차 도전에서 처참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 1차 도전에서 실패한 뒤 다음 해 2차 도전에 가까스로 예타 대상에 선정됐다. 그리고 ‘물고기 지도를 만든다’고 대대적으로 알리기도 했던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부활한 해수부 최초의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이었다. 하지만 1차 도전에서 프로젝트가 너무 방대한 반면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와 2차 도전에서 그 예산 규모를 반으로 축소하는 수모를 겪었다.

예산의 축소는 곧 과제의 축소로 이어졌다. 당초 8개 과제에서 4개로 축소되며 예산 또한 1,500억 원으로 줄었던 것. 이렇게 살을 깎아 예산을 낮췄음에도 예타 심의위원들로부터 경제성을 따지는 비용-편익비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결국 과기평이 실시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편익비가 0.23으로 낮게 평가됐다. 연구개발 사업은 점수가 0.8이 넘을 경우 사업이 가능한 것으로 판단한다. 결국 신자산어보 프로젝트는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신(新)자산어보 프로젝트는…

해수부가 추진하려는 주요 사업들이 예타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꾸로 신자산어보 프로젝트부터 살펴보면, 신자산어보 프로젝트는 아이디어만 있을 뿐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전해서 실패한 케이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사업을 담당했던 한 간부는 “경제학자를 설득할 경제성 조사나 사업의 타당성에 대한 보고서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필요성만 판단해서 무모하게 도전해 얻은 참패였다”라고 고백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다른 부처의 지원사업들은 최소 1~2년 전부터 산하기관, 혹은 관련 연구기관에 용역과제를 주고 다양한 방법으로 보고서, 특히 경제적 이득면에서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포함된 경제보고서를 준비하는데 해양수산부의 보고서에는 그런 요소들이 빠져 있어 수산학자가 아닌 경제학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아쿠아팜4.0사업의 경우는 매우 아쉽게 탈락한 경우다. 신자산어보 프로젝트의 경우 해수부 부활 초창기에 이뤄진 도전이라 ‘경험 부족’, ‘운영 미숙’이라는 한계가 있었던 반면 아쿠아팜4.0의 경우 준비과정과 내용이 꽤 만족스러웠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리고 준비과정에서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었으며, 다시 도전한다면 통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또 제2쇄빙선 건조사업의 경우 그 필요성 때문에 지난해 8월에 세 번째로 예비타당성 조사 신청하고 9월에 기술성 평가 통과에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달 중순에 과기평에서 자료 보강요청이 있어 자료를 보강했다. 이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2022년부터 2026년까지 5년 동안 총사업비 3,250억 원 규모로 책정됐다.

1, 2차 예타 시도에서 제2쇄빙선 건조사업이 탈락한 이유는 평가위원들을 설득하기에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자체 평가다. 수요의 문제와 시급성의 문제에서 해수부가 밝히는 수요보다 실제 수요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당장 시급하지 않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이해와 설득이 이뤄진 것 같다는 자체 진단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해수부 관계자는 “우리에겐 매우 절실한 것인데 평가위원들이 보기에는 당장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것이 아니니 덜 시급하다고 평가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요령 부족한 해수부

아쿠아팜4.0사업은 어떨까? 아쿠아팜4.0사업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준비가 상당히 많이 됐는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예타 결과를 분석해보니 뇌과학, 유전공학, AI 이런 것들과 요즘 핫하다는 그럴듯한 다부처 사업 위주로 통과됐다”며 “우리가 힘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다음에 도전할 때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겠다는 교훈도 얻었다”고 털어놨다.

진해신항 건설의 경우, 정치권의 힘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힘을 얻을 것으로 이해했는데, 아깝다는 평가와 다소 무모했다는 자체 평가가 동시에 나온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경제성·정책성·지역균형발전을 평가하는 종합평가(AHP)에서 0.497점을 받았다. 0.5점이면 되는데 매우 애매했다”며 “뭔가 부족하긴 한데 정치적으로 작용한 것이 아닌가”하고 추측하기도 했다.

결국 해수부는 재정평가위원회의 제언에 따라 지난 2월 사업을 2개 단계로 나눠 예타에 재도전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15개 선박 접안시설(선석)을 짓는 전체 사업 가운데 9개 선석 건설(총사업비 7조 7,000억 원)을 1단계로 정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추진해 사업 추진 타당성을 확보했다. 수요 불확실성 우려 등에 대해서도 물동량 수요 분석기관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과 면밀히 재검토했다. 사업 추진에 따른 환경 영향 저감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해 사업 추진 위험성도 최소화 했다”고 말했다.

즉 이번에는 1단계로 2029년까지 3선석을 개장하고, 2032년에는 6선석을 개장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은 6선석은 2단계에서 추진한다. 1단계에서는 방파제 1.4km, 호안 808km, 항만 배후단지 67만 4,000㎡도 조성된다. 해수부 관계자는 “11월까지 예타를 통과시키고, 2022년 착수예산 확보를 위해 예산당국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이 매우 주요하고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매번 ‘예타’라는 큰 장벽에 가로 막혀왔다. 그 이유로 ‘힘의 논리’를 지적하는 이들이 꽤 있다. 힘의 논리, 즉 해수부가 타 부처에 비해 힘이 약하기 때문에 힘 있는 부처 사업 위주로 선정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나름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부족하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힘 있는 부처가 유리하고 힘없는 부처는 늘 불리하다고 하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고 일축했다. 이 관계자는 “평가위원들을 설득할 논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얼토당토 않은 것이 예타를 통과하는 경우는 없다. 예타에서는 민간 전문가들이 과학기술적 타당성, 정책적 타당성, 경제적 타당성 모두 따지기 때문에 막연히 필요하다, 있으면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감정적 논리만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개관적 논리가 있어야 하고 근거가 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진해신항 조감도
진해신항 조감도

실패 경험도 중시해야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예타 통과가 어렵기 때문에 예타 면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예타 통과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될 만한 사업을 신청하는 것이다. 역사가 짧거나 체계가 덜 잡힌 부처의 경우 가능성이 희박한 사업으로 예타 신청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해수부도 초창기에는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꼭 필요하고 절실한 것을 절실히 추진하는 게 노하우다. 이런 노하우와 요령이 있는 부처의 사업은 실패확률이 낮다”고 조언했다.

실제로 해수부 한 간부는 “예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담당자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 거기에는 분명 경험에 따른 노하우가 있다. 그런데 해수부는 경험 있는 직원이 부족하고 그나마 경험해본 직원들도 한 번 실패하면 다른 과로 이동시키는 등 문책성 인사를 하기 때문에 노하우를 축적할 기회를 잃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 신자산어보 프로젝트에 깊게 관련했던 한 직원은 “예타를 준비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어떤 식으로 예타를 준비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지를 알게 됐다. 그런데 아까운 시간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노하우를 익혔는데 노하우를 활용할 기회와 의지를 꺾어버렸다”고 말했다.

한 해양수산 원로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실패도 경험이다. 그런데 실패를 탓하거나 성공 의지가 부족한 사람을 프로젝트에 투입하는 것은 결국 실패를 거듭하게 하는 요인이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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