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와 칭기스칸으로부터 배우는 물류
장보고와 칭기스칸으로부터 배우는 물류
  • 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 승인 2021.04.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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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수 한국종합물류연구원장

[현대해양]

창조적 글로벌 물류체제 선도자 장보고

통일신라나 몽골의 시대적 배경으로 볼 때 장보고의 해상운송과 칭기스칸의 육상운송은 최적의 물류시스템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당시 물류의 기본적인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장보고와 칭기스칸은 놀랍게도 현대물류처럼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글로벌 물류체제를 구축했다.

장보고는 1,2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중국과 한반도 그리고 일본의 3국을 연결하는 해상항로를 장악하여 효율성이 높은 국제물류조직을 구축한 한국이 낳은 세계 최초의 국제물류 창시자이다. 장보고는 청해진에 물류클러스터를 설치하고 중국과 일본에 해외거점을 구축하여 인적 네트워크로 연결된 통합물류체제를 구성했다. 따라서 그는 동북아 해상교역 네트워크 창설자, 동북아 통상협력 모델의 선구자, 한 걸음 더 나아가 ‘해상무역왕’이라는 민간인 최고의 평가를 받고 있다.

칭기스칸은 13세기 동아시아 동쪽 끝에서 유럽의 문턱까지, 북쪽 몽골 초원부터 남쪽 말레이시아, 인도, 페르시아까지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을 통합했다. 그리고 그 위에 육로 물류네트워크를 확고하게 구축한 글로벌 물류시대의 선도자였다. 칭기스칸은 동서 간을 육상으로 연결하는 탄탄한 실크로드를 건설하여 동서양 간 교역이 증진되고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손자 쿠빌라이는 남송 해양세력을 포용하여 육상과 해상을 아우르는 통합물류체제를 완성하였다.

 

해상물류의 꽃 청해진

장보고 대사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해상왕이라는 명성까지 얻게 된 것은 그가 미래를 내다보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효율성 높은 해상물류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청해진을 동북아 해운중심지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또한 장보고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청해진 무역체제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는 비전을 제시하는 뛰어난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었다.

장보고는 도자기와 차(茶)를 중국으로부터 들여와 새로운 산업을 정착시켰으며, 종교, 문화, 학술 진흥에도 크게 기여했다. 장보고의 국제무역 성공요인으로 동북아 해상활동권의 중심이 되는 청해진에 교역본영을 설치했고, 교역 당사국의 전폭적인 인간적 신뢰와 공인을 얻었으며, 도자기와 차 등 교역가치가 높은 상품의 선정에 더해 신라인들의 뛰어난 항해술과 조선기술의 뒷받침 등을 들 수 있다.

 

중상주의 원대의 해륙(海陸)물류체제

몽골인들은 애초에 길의 개념이 없던 유목민이었다. 칭기스칸과 그 후계자들은 유목민 방식을 고수하여 이동이 자유스러운 말을 주 운송수단으로 광대한 지역을 연결하는 역참을 건설했다. 각 지방으로 향하는 전역에 걸쳐 40~50km에 하나씩 설치된 역참은 전쟁이 끝나감에 따라 점차 상업적 거점으로, 일부는 서방교역의 중심으로 바뀌어 광대한 육상운송체제가 구축되었다.

몽골제국 역사상 칭기스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제2의 창업자였다고 할 수 있는 원 태종 쿠빌라이는 역참제를 중심으로 한 육로만으로 세계제국 건설에 한계가 있음을 인식해 해상함대, 선박건조와 항해술을 갖춰 해상교통의 거점과 진로 확보에 나서게 된다. 원대를 통해 대대적인 개혁의 고삐를 죄었던 쿠빌라이는 군사와 통상이 하나가 된 국가건설을 구상했다.

쿠빌라이가 주도한 자유무역·중상주의정책은 몽골 지배의 힘이 미치지 않은 지역까지도 육상과 해상 교역의 테두리에 묶어 초광역의 군사국가·통상국가·물류국가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반이 탄탄했던 원대 물류는 명나라에 들자마자 원대의 통치이념, 조직체계, 물류시설들을 거의 무시하거나 파기하여 다시 물류제로의 암흑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탈(脫)국가적 협력이 물류 발전 관건

장보고에 의해 구축된 해상물류와 칭기스칸에 의해 구축되었던 대륙의 육상물류체제 그리고 쿠빌라이가 육상과 해상물류의 통합을 시도했던 원대의 물류체제는 거의 단일 운송수단을 활용하는 초보적 단순물류 단계였다고 볼 수 있다. 장보고의 청해진 물류체제는 해상운송을 주축으로 하고 몽골의 육상물류체계는 육상물자의 흐름을 주축으로 하는 단일 시스템이었다.

또한 당시의 물류활동은 시대별로 그 지향하는 방향이 달랐다. 신라시대에는 해외교역 확대의 일환으로 발전하여 국내물류와 깊은 연관을 짓지 못한 채 발전했고 원대에는 본격적인 교역활동을 추진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을 받는 공식적인 정책의 소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장보고 대사의 청해진 물류조직체제 경영방식은 오늘날의 다국적 기업조직 및 경영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장보고 대사의 조직통솔과 경영기술이 당시로서는 대단히 뛰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칭기스칸의 정복시기에는 역참제를 통해 효율적으로 정보가 관리되었으며, 상업중심의 쿠빌라이 시대에도 혼합된 문화 속에 정보관리의 중요성이 약화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 3국은 서로 다른 나라지만 황해라는 하나의 바다를 공유하는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각 국의 항만 정책 수립 및 추진에도 그 나라 이익만이 아닌 공동발전을 위하여 장보고, 칭기스칸 시대와 같은 탈국가적 사고의 적용이 필요하다.

장보고와 칭기스칸이 역사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탈(脫)국가적 사고의 실현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한국, 중국, 일본 각 국과 동북아시아인 모두가 번영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러한 통합적 사고가 뒷받침 되지 않아 중복투자, 지역과 시설의 효율적 활용의 어려움, 통합적 네트워크 구성의 어려움 등이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동북아시아 국가 간 협력증대를 통하여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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