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3 - 이주홍의 동화 「메아리」에 담긴 생태학적 사유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3 - 이주홍의 동화 「메아리」에 담긴 생태학적 사유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3.15 0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해양] 이주홍의 동화 중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작품 중 하나는 「메아리」이다. 이 작품은 1943년 8월 『야담』에 「내 산아」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작품으로, 『국제신문』에 1959년 6월 8일부터 22일까지 연재되었다. 이후에 발간된 여러 단행본 동화집에 수록되어 왔다. 그리고 2002년 『다시 읽는 국어책』(중학교)에 수록되었고, 여러 차례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다. 2015년에는 개정된 초등 국어활동 교과서에 수록됨으로써 어린이들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동화가 되었다.

이 작품은 깊은 산 속에서 홀로된 아버지가 딸과 아들 하나를 거느리고 화전민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순진무구한 막내 아들 돌이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아버지가 밖으로 일하러 나가면서 돌이에게 소 먹이를 주라는 당부로 작품은 시작되고 있다.

“돌아! 오늘은 소 배가 좀 이상하다. 밖에 몰고 나가지 말고, 네가 풀을 뜯어다가 넣어 주어라.”

아버지는 바지게에다 괭이를 담아지고 나가면서 돌이를 보고 이렇게 일을 시켰지만, 돌이는 방바닥에다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으면서 아무 대꾸도 안 했다. 아버지가 미워서 말도 하기 싫었던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돌이와 함께 정답게 지내던 유일한 친구인 누나를 아버지가 멀리 시집을 보내버렸기 때문이다.

엄마를 일찍 여읜 돌이는 누나가 시집가기 전엔 이웃도 없어 늘 외로웠기에 산꼭대기에 올라 소리를 치곤했다. 돌이가 오--하고 목을 뽑아 외쳐보면, 산 저쪽에서도 오—하고 대답이 들려왔다. 이 메아리가 돌이에게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가뜩이나 외로운 산 속 생활에서 누나마저 시집을 가자 모든 것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메아리하고 장난치던 것도 흥미를 잃었다. 메아리를 친구 삼아 놀았다는 것은 돌이가 얼마나 외롭고 순진한 아이인지 보여 준다. 자신의 외로움을 메아리와의 대화로 해소하는 아이들의 동심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지닌 순수성이 돋보인다.

이런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누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이는 무작정 산을 넘어 누나를 찾아 나선다. 돌이는 엄마를 기억하지 못한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가 농사일을 나가면 누나가 키우다시피 하였다. 그런 누나와 헤어져 겪게 되는 외로움과 슬픔에 누나를 찾아 나서는 돌이의 모습에서 순진한 아이의 동심을 볼 수 있다.

돌이는 산을 넘고 넘어 어느 곳에 있는지도 모르는 누나를 찾아 헤매었다. 가도 가도 산이었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 날이 저물었다. 돌이는 무서운 생각이 나서 되돌아섰다. 새들이 잘 집에 드느라고 여기저기서 날개를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돌이는 혼자 울면서 걷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길이 잘 안 보일 것 같아서,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도 산모롱이가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날이 어두워졌다. 돌이는 울면서 길을 더듬었다. 때로는 움푹 발이 빠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나뭇가지가 눈을 찌르기도 했다. 돌이는 그래도 쉬지 않고 길을 더듬었다. 사람의 냄새를 맡고서 호랑이라도 나타나면 어떻게 하나? 돌이는 제가 걷는 것이, 어디로 가는 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결국 돌이는 더 걸을 수가 없을 만큼 어두워지자, 그만 길바닥에 주저앉아서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그때, 산마루에서 사람의 소리가 나면서 횃불이 보였다. 돌이를 찾아나선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결국 돌이를 발견하여 업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돌이가 잠에서 깨어난 이후에 아버지는 돌이에게 동생이 하나 생겼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준다. 그 동생은 집에서 키우고 있는 소가 낳은 송아지였다. 외양간으로 가서 돌이는 자기 동생 같은 송아지를 보고 마음이 흡족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송아지를 보니, 그 송아지는 아버지가 입으시던 헌 저고리를 덮어 입고서 외양간 안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돌이는 아침을 먹고 난 뒤에 누나가 넘어가던 산으로 올라가서 길게 소리를 질렀다.

“네 산-- 아.” 그러자 한참 만에 메아리가 “내 산— 아. ”하고 대답을 해왔다.

“우리 집엔 새끼소 한 마리가 났어--.”라고 하니, “우리 집엔 새끼소 한 마리가 났어--.”라고 응해왔다. 또 “내 동생이야--.”하니, “내 동생이야--.”라고 대답해왔다. 그리고 “너두 좋으니--?”라고 하니, “너두 좋으니--?”라고 대답해 왔다. 메아리는 저도 반가운지 같이 흉내를 냈다. 그래서 돌이는 메아리가 누나 있는 곳에까지 가서, 그대로 이 소식을 전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는 이 동화는 21세기 인공지능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한다. 우선 돌이와 산이 메아리로써 서로 소통하고 있다는 것은 순수한 동심을 가진 돌이와 산이 하나로 소통하고 있음을 내보인다. 산과 인간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유기체로 인식되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송아지를 돌이의 동생으로 명명하고 있다는 것은 동물과 인간이 무관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생명체임을 동시에 드러내는 장면이다. 송아지가 돌이의 동생이 될 수 있는 생태학적 인식은 심층생태학적 입장을 내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즉 인간이 산이나 송아지를 지배하고 수단화 하는 단계가 아니라, 산이나 송아지나 인간이 서로 소통하고 관계하는 생태학적 관계망 속에 놓여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생명체들이 생명이란 관계망 속에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작품 속에서 잘 그려내고 있다. 생태계 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지구촌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지금 이곳에서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나게 하는 작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