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소 - 지구의 비밀을 간직한 세상의 끝에서 연구하다
극지연구소 - 지구의 비밀을 간직한 세상의 끝에서 연구하다
  • 김엘진 기자
  • 승인 2021.03.12 18: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극지연구 글로벌 선도기관
극지연구소
극지연구소

[현대해양] 겨울철 이상 한파, 여름철 역대 최장기간 장마 등 한반도 및 전세계 이상기후 현상의 원인을 쫓아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곳이 극지다. 극지는 지구상 양극 지역에 위치한 거대한 청정 환경 공간이자 지구 기후의 조절자로 기후변화에 대한 반응을 가장 먼저, 가장 민감하게 드러내는 곳이기에 기후변화 감지·예측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부설 극지연구소는 대기·지권·빙하환경·해양·생명과학의 5개 연구본부와 원격탐사빙권정보센ㅓ터, 저온신소재연구단, 그리고 5개 행정부서와 1개 사업단으로 구성돼있다.

강성호 극지연구소 소장은 “최근 환경에 대한 높아지는 관심과 이상기온 현상으로 인해 극지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라며 “극지연구소는 남극의 세종과학기지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북극의 북극다산과학기지, 그리고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까지 우수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연구성과를 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극지전문 연구기관이자 글로벌 네트워크 창구로서

극지연구소는 극지에서 일어나는 과학적 현상들을 관찰·분석하고, 앞으로의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남·북극 기지와 쇄빙연구선을 운영하는 것도 극지연구소의 중요한 임무다. 극한의 환경인 극지에 머물며 연구활동을 하기 위해서 기지와 쇄빙연구선은 필수적이다. 2009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건조되며 우리나라의 극지연구 영역은 크게 확대됐다. 아라온호는 여름에는 북극, 겨울에는 남극을 항해하며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다. 세종과 장보고 두 남극기지에는 1년간 체류하는 ‘월동연구대’가 기지 관리와 기지 주변 연구활동을 수행한다. 월동연구대가 아닌 다른 연구원들은 외부활동에 유리한 남극의 여름에 주로 기지를 방문한다.

강성호 소장은 “극지과학은 극지의 자연·환경적 특수성 및 국제조약 등으로 인해 개별 활동보다는 국가 간 협력에 기반한 국제 공동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극지연구소는 우리나라의 극지전문 연구기관이자 글로벌 극지 협력 네트워크의 창구로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와 극지 과학기지를 중심으로 대규모의 국제공동연구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국외 협력기관들과 양자·다자 공동연구협력을 위한 다양한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북극다산과학기지, 아라온호
남극세종과학기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북극다산과학기지, 아라온호(시계방향)

 

남·북극 최대 규모 프로젝트 참여

극지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많은 인원이 한 번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강성호 소장은 “그렇기에 이곳의 연구원들은 일당백의 장수처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며 “각각의 연구원들은 매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국가대표라는 각오와 실력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특히 최근 남·북극 연구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는데, 극지연구소는 두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했다.

북극 모자익(MOSAiC) 프로젝트는 북극해를 표류하며 1년간 북극해의 환경변화를 관측하는 연구였다. 독일의 쇄빙연구선 폴라스턴호가 2019년 9월 항해를 시작해 지난해 10월 돌아오는 동안 극지연구소는 폴라스턴호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인공위성 등 원격탐사로 폴라스턴호 주변을 감시·관측했고 바다얼음의 변화 양상 등을 분석해 전해준 것이다.

스웨이트(Thwaites) 프로젝트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우리나라 등이 참여하고 있는 남극 최대 규모 연구 프로젝트다. 서남극에 위치한 스웨이트 빙하는 남극 빙하 가운데 가장 붕괴에 취약한 곳으로 꼽힌다.

강성호 소장은 “스웨이트 빙하를 ‘남극의 수도꼭지’라고 부른다”며 “취약한 부분이 부서지는 경우 빙하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고, 이후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할 수 있기에 꾸준히 관측·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성호 극지연구소 소장
강성호 극지연구소 소장

 

독성물질 제거부터 의약품 개발까지

최근 극지연구소는 얼음을 활용한 독성물질 제거 기술 등에 대한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화학반응의 경우, 일반적으로 온도가 높아질수록 분자의 활동이 증가하며 반응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나 얼음이 얼 때에는 이와 반대되는 현상이 관측된다. 얼음 결정이 형성될 때, 그 결정 사이로 물에 녹아있던 성분들이 모이며 반응속도가 오히려 빨리지는 것.

극지연구소의 김기태 선임연구원 연구팀은 이러한 얼음의 독특한 반응을 이용해 오염물을 없애거나 유용한 물질을 획득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작년 12월에는 크롬과 요오드가 혼합된 액체가 얼 때 나타나는 반응을 관측해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 ‘Environmental Science & Technology’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강성호 소장은 “특히 크롬과 요오드가 섞인 물질의 경우 LCD 공장에서 내놓는 폐수와 매우 유사한 성분”이라며 “지금 현장에서도 같은 반응이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있고, 테스트가 성공한다면 아주 획기적인 폐수 처리 방법이 등장할 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극지연구소는 또한 극지의 생명자원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녹조류·해조류, 균류 등의 극지 생물들이 지닌 유전정보는 의약품 등을 개발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혈액 동결보존제도 그 중 하나다. 이는 혈액을 냉동시킬 때의 성분 손상을 막아 혈액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도록 하는 첨가제. 이전에는 냉장 상태에서 한 달 정도 보관이 가능했던 혈액은, 동결보존제를 사용할 경우 6개월까지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현재 산업체로 기술을 이전해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강성호 소장은 “그 외에도 당뇨나 치매 등의 치료제, 신규 항생물질 등의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시대에 맞춰 뱃길로 이동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극지연구소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극지연구는 직접 현장에 가지 않고서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극지로 가려면 다른 나라들을 경유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의 감염 위험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작년, 극지연구소는 새로운 도전을 해냈다. 남극과학기지 두 곳의 월동연구대 교체를 위해 기존의 하늘길이 아닌 뱃길을 이용한 것. 월동연구대 전원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탑승해 긴 여정을 떠났다. 결국 아라온호는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현재 국내로 돌아오고 있다. 올 여름에도 중간 인원 교체 없이 두세달 간의 항해를 계획 중이라고.

강성호 소장은 “승선자를 교체하지 못하고 전원이 항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기에 최소한의 인원으로 갈 수 밖에 없고, 배에 타지 못한 다른 연구원의 연구를 대신 수행하는 경우도 있기에 연구원과 쇄빙연구선의 피로도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며 “힘든 코로나 상황에서도 극지연구소는 안정적으로 기지를 운영하고 효과적인 연구 성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극지연구소는 해수부 산하 기관이기도 하고 세금이 투입되는 기관이므로 과학적으로 필요한 연구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제 대다수의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고, 실질적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며, “세상의 끝 극지에서 우리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무형의 가치를 만들고, 극지연구 글로벌 선도기관이 되기 위해 연구팀은 물론 전 임직원들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