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32] 허가받지 않은 어구를 적재하면 무조건 처벌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32] 허가받지 않은 어구를 적재하면 무조건 처벌될까?
  •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1.02.1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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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중 자루그물 헌법소원 사건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한수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른두 번째 여행의 시작>

‘기소유예’는 피의사실은 인정되나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검찰에서 기소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소유예는 불기소 결정의 한 종류입니다. 그러나, ‘혐의없음’이라는 불기소 결정과 달리 잘못한 점이 인정되었다는 결정이기 때문에 유죄 판결만큼 참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기소 결정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를 통해 다투어볼 수 있다는 점, 알고 계셨나요?

이 사건에서 A는 쌍끌이 대형저인망 어선의 선장으로 2011. 9. 5. 위 어선으로 조업하던 중 바다 속에서 2중 자루그물(어구)을 발견하였습니다. A는 2중 자루그물을 인양하여 어선에 적재한 채 다음날 08:00경 여수시 국동항에 입항한 다음 어획물을 하역한 뒤 위 어선 갑판에서 2중 자루그물 한 겹을 제거하다가 같은 날 11:30경 적발되었습니다.

A는 ‘어선은 면허·허가를 받거나 신고된 어업에 사용하는 어구 외의 어구를 적재하여서는 아니됨에도 불구하고, 2011. 9. 6. 11:30경 전남 여수시 ○○동 ○○수협 위판장 앞 해상에서 허가받지 아니한 2중 자루그물 1통을 어선에 적재하였다’는 피의사실로 조사를 받다가 결국 ‘피의사실이 인정되나 조업 중 인양한 2중 그물을 재사용하기 위해 그물 한 겹을 제거하던 중 적발된 것으로, 그 경위에 참작할 사유가 있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재범 방지를 다짐한다는 이유’로 2011. 10. 25. 기소유예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A는 위 기소유예 처분에 수사미진과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있고 이로 인하여 A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 기소유예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습니다. 과연 A는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 받을 수 있었을까요?

 

<쟁점>

허가받지 아니한 2중 자루그물(어구) 1통을 어선에 적재하면 예외 없이 처벌될까요?

 

<헌법재판소의 판단 – 헌법재판소 2012. 10. 25.자 2011헌마705 결정>

수산자원관리법 제23조 제1항, 같은 법 시행령 제10조 제3항 별표 13은 쌍끌이 대형저인망 어업에 2중 이상 자루그물(낭망)의 사용을 금지한다.

한편, 수산자원관리법 제24조, 제65조 제6호는 문언상 ‘어업을 목적으로’ 특정어구를 적재하는 행위만을 금지·처벌하고 있지 아니하고, 단지 ‘특정어구를 적재하는 행위’만으로도 수산자원의 보호라는 법익에 위험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아 위 행위를 금지·처벌하고 있으므로 위 조항들은 수산자원을 보호·회복·조성하고 수산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는 수산자원관리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그 목적을 불문하고 특정어구를 적재하는 행위를 금지·처벌하려는 취지로 해석함이 상당하다. 따라서 A는 2중 자루그물을 적재함으로써 수산자원관리법 제24조, 제65조 제6호의 구성요건을 충족한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인지는 구체적인 사정 아래에서 합목적적, 합리적으로 고찰하여 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하므로 이와 같은 정당행위가 인정되려면, 첫째 그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둘째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셋째 보호이익과 침해이익의 법익 균형성, 넷째 긴급성, 다섯째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A의 행위는 2중 자루그물을 재활용하기 위한 것으로서 그 동기가 정당하고, 조업 중 인양한 2중 자루그물을 적재한 채 입항하여 어획물을 하역한 뒤 입항 후 3시간가량 지나서 한 겹을 제거하다 적발된 것으로 그 방법이 상당하며, 어업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수산자원관리법의 실질적인 법익침해는 거의 없는 반면, 인양한 어구를 다시 바다에 투기하는 방법 외에는 회피 가능성이 없다. 이 경우 환경오염이 발생한다는 점에 비추어 법익 균형성, 긴급성 및 보충성이 인정되므로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정당한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

사정이 그렇다면 수사기관으로서는 A가 어획물을 하역하는데 소요된 시간, 선상에서 2중 자루그물을 해체하게 된 경위 등을 상세히 조사하여 A의 행위가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밝혀보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수사기관은 위법성 조각의 가능성에 관하여 추가 수사를 하지 아니한 채 바로 기소유예 처분을 하였으므로, 이는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중대한 수사미진 및 법리오해에 터잡아 이루어진 자의적인 검찰권의 행사라 할 것이고, 이로 말미암아 A의 기본권인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것이다.

 

<결정의 의의>

결국 헌법재판소는 A가 그 이유를 불문하고 2중 자루그물을 적재하였으므로, 형식상 수산자원관리법위반죄의 구성요건은 충족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범죄는 구성요건과 더불어 위법하고 책임이 있어야 하는데, A의 행위는 2중 자루그물을 해체하여 적법하게 사용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즉, 헌법재판소는 ‘사용할 목적’이 없는 사용금지 어구 적재 행위에 대해서는 형식상 구성요건에는 해당하나 실질적으로는 위법하지 않아 최종 무죄라고 본 것입니다.

 

<서른두 번째 여행을 마치며>

바다에서 우연히 사용금지 어구를 발견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와 같은 오해를 겪게 될까 봐 다시 바다에 버린다면 환경보호적 관점에서도 그것이 과연 올바르거나 장려할 만한 것일까요?

헌법재판소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정말 사용할 목적이 없었다면 그러한 어구 적재 행위에 대해 함부로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권리 보호를 위한 제도가 촘촘해지는 요즘, 억울한 부분은 결국 어떤 절차로든 해소될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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