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2 - 이순신 장군을 활용한 어린이용 연극
월간 현대해양·이주홍문학재단 공동기획_향파 이주홍과 해양인문학 이야기 32 - 이순신 장군을 활용한 어린이용 연극
  • 남송우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1.02.02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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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강희하고는」에 나타난 화해의 정신

[현대해양] 향파 선생은 어린이들의 올바른 정신 교육을 위해 역사적 인물을 많이 활용했다. 그 대표적인 대상이 이순신 장군이다. 향파는 1952년에 《민주신보》 오백만 환 현상모집에 희곡 「성웅 이순신」이 당선되었으며, 같은 해에 《소년세계》에 작품 「강희하고는」을 발표했고, 1954년에는 소년소설 『이순신 장군』(남향문화사)을 출판했다. 이순신 장군이란 인물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표한 것이다.

이 작품 중 「강희하고는」은 짧은 단편 소년소설이다. 발표된 이후에는 제목이 「비오는 들창」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향파 선생이 지니고 있는, 이순신을 통한 어린이 교육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소설은 학교 교사인 현 선생이 직접 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란 제목의 연극을 학생들과 함께 공연하기 위해 그 연습과정을 이야기로 꾸며 놓은 소설이다.

전부 5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막은 원균의 모함으로 충무공이 서울로 잡혀가는 내용, 둘째 막은 충무공을 옥에 가둔 정부가 충무공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고 서로 싸움질하는 내용, 셋째 막은 원균이 술 잔치에 녹아 빠져 칠천도 싸움에 크게 패하는 내용, 넷째 막은 명량 바다에서 남은 배 열두 척으로 일본 배 수백 척을 침몰시키는 내용, 마지막 막은 충무공이 노량 바다 위에서 죽어가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조금은 소화하기 힘든 분량과 무게를 지닌 연극이긴 하지만, 여러 학생들과 함께 종무와 강희가 주축이 되어 현 선생의 지도로 연극 연습을 열심히 해 나간다. 이 작품이 씌어진 때가 1952년 한국전쟁 중이었기에 이들이 마련하는 연극 무대에 필요한 물자들은 미군부대에서 나온 밀가루 푸대 종이를 활용하기도 한다. 지금과 같은 무대 설비가 거의 불가능한 시절이었으나 지도교사인 현 선생과 참여 학생들은 힘을 합쳐 모든 것을 준비하며 연극 연습에 열을 올린다.

연극 연습과정에서 현 선생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여러 장면들이 흥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마지막 오 막인 충무공이 돌아가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충무공이 적탄에 맞아 눈을 감고 난 뒤 충무공의 큰 아들 회와, 중위장으로서 끝날 때까지 충무공의 대장선에 같이 타고 충무공을 받들던 유형과 충무공이 가장 아끼던 김대인이 충무공의 주검 가에 둘러앉아 통곡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큰 아들인 회 역은 사학년 영식이가 맡았고, 중위장 유형 역은 급장 인식이가, 장교 김대인 역은 종무가, 그리고 충무공 역은 강희가 맡았다.

종무는 죽은 충무공인 강희의 얼굴 옆에 앉아 대사를 외웠다. “정녕 하늘이...” 하다가 보니 “정녕”이 아니라 “정니엉” 하는 소리가 났다. 이는 그 동안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현 선생님한테 몇 번이나 지적을 받은 부분이었다. 몇 차례 발음 수정을 하여 간신히 바른 발음이 나왔다.

“정영 하늘이 우리 백성을 구하실려고 내려보낸 인물이 아닐진대, 어찌 칠 년 전쟁을 한 손에 지탱해 오다가, 하필 이날의 마지막 싸움터에서 거두어 갔겠소 대감! 통제대감! 그렇게 좋아하시던 이 김대인이를 외로 두고서 대감은 어디로 가시려 이러시오.” 이렇게 대사를 마치자 종무는 진땀이 났다.

그래도 지도하는 현 선생은 다시 종무에게 “마지막 대사가 아무래도 기분이 모자라”라고 주문을 한다. 그러나 다른 역을 맡은 종무의 친구들은 “종무 최고다”라고 격려한다. 특히 충무공 역을 맡은 강희는 “자꾸 연습만 하면 돼”라고 힘을 북돋어 준다. 종무는 그런 강희가 좋다.

그런데 이들이 연극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현실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여름날 가뭄으로 인해 벼가 자라고 있는 논이 다 말라서 물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종무가 집에 와서 염소 풀을 뜯으러 저수지 보쪽으로 갔는데. 종무 아버지와 강희 아버지가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윗논은 강희네 논이고 아랫논은 종무네 논이었는데, 윗논에는 물이 가득 차 있는데 아랫논은 말라있어 종무 아버지가 삽을 가지고 강희네 논의 물고를 파 끊었던 것이다. 그러자 강희 아버지가 삽으로 막았고, 그러자 다시 종무 아버지가 물고를 파 다시 끊었다. 이렇게 반복하면서 결국은 두 사람이 엉켜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치고받고 할 뿐만 아니라 논에 처박히는 죽기살기식의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이 싸움은 달려온 종무 어머니로 인해 집안 싸움으로 번진다. 종무 어머니가 강희 아버지의 허벅지를 무는 바람에 강희 아버지가 논두렁에 나자빠지자 강희 엄마가 다시 달려들었다. 두 여자가 엉켜붙어서 싸우기 시작하자 힘이 센 강희 엄마를 종무 엄마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종무가 참지를 못해 강희 엄마의 팔을 물어뜯었다. 옆 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달려와 말리는 바람에 싸움은 진정되었지만, 서로 다 상채기를 입고 온 몸이 흙탕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온 종무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희 엄마의 손을 문 게 후회가 되었다. 이날 밤에 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어서 거의 잠을 자지 못하고 다음 날 학교로 갔다. 연극 연습을 위해 아이들이 다 모였다. 종무는 강희를 보자 그를 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 때 강희가 주머니에서 강냉이를 꺼내 한 토막씩 분질러 나눠주었다. 강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종무의 손에도 쥐어 주었다. 종무는 목에 무엇이 차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곧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종무는 눈을 감고 누워있는 충무공 역을 맡은 강희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제 연습했던 그 장면을 다시 시작했다. “정영 하늘이 우리 백성을 구하실려고 내려 보낸 인물이 아닐진대, 어찌 칠년 전쟁을 한 손에 지탱해 오다가, 하필 이날의 마지막 싸움터에서 거두어 갔겠소 대감! 통제대감! 그렇게 좋아하시던 이 김대인이를 외로 두고서 대감은 어디로 가시려 이러시오.” 종무는 자신도 모를 눈물을 줄줄 흘렀다. 이 때 교실 들창 쪽에서 보고있던 두 여학생이 흑흑하고 얼굴을 가리면서 울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교실 안은 물을 뿌린 듯이 잠잠했다. 순간 지도하던 현 선생이 종무를 바라보며, “잘했어, 참 잘했어, 오늘은 아주 잘했어”라고 하며 종무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칭찬했다.

그 때 밖에서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아이들이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소낙비가 세차게 몰려왔다. 종무는 계속해서 비가 오기를 빌었다. 비만 오면 물싸움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종무와 강희는 세차게 비가 내리는 들판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향파 선생은 이렇게 이순신의 정신을 아이들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매개로 연극을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삶과 유리되지 않는 문화활동이 어떻게 훌륭한 교육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작품으로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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