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매생이 채취 현장 - 겨울 바다 초록빛으로 물들다
[르포]매생이 채취 현장 - 겨울 바다 초록빛으로 물들다
  • 글_김엘진 기자, 사진_박종면 기자
  • 승인 2021.02.0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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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해역에서 자라는 무공해 식품

[현대해양] 지난 1월 20일 오전 7시. 몇 년 전 완공된 장보고대교를 건너 도착한 완도군 고금면 매생이 양식 작업장은 하루를 시작하는 어민들로 이미 분주했다. 일고여덟 개의 작업장이 조르르 늘어선 골목의 끝에서 우리는 배상윤 대명수산 대표이자 완도매생이생산자협회장을 만났다. 그는 배가 방금 나갔다며 손가락을 들어 바다쪽을 가리켜 보였다. 그의 손 끝에 막 작은 부두를 떠나 양식장으로 향하는 작업선이 걸려 있었다. 작업선은 곧 양식장에 도착했다. 희뿌옇게 밝아오는 바다 위 대나무 숲 사이에 떠 있는 작은 배는 꼭 한 폭의 수묵화 같이 고요했다.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만 자란다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매우 달고 향기롭다’ 조선의 문신 정약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계 서적이라 불리는 「자산어보」에서 매생이를 소개한 문장이다. 「동국여지승람」에서도 전라도 관찰사에게 ‘좋은 매산을 가려 많이 올리라’고 한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로 매생이는 오래 전부터 사랑받았던 식품이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 한동안 대접을 받지 못한 매생이는 90년대까지만 해도 그저 김 사이에 끼어있는 이물질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웰빙 열풍과 함께 맛과 효능을 인정받고, 겨울의 대표 보양식이 된 매생이는 지난 1월 해양수산부의 ‘이달의 수산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완도에서 매생이 양식을 하는 곳은 총 329 어가다. 이들이 운영하는 358㏊의 양식장에서 전국 생산량의 약 70%의 매생이가 수확된다. 매생이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바다에서만 자라는데, 특히 완도 매생이는 정화작용 및 생리활성촉매 역할을 하는 맥반석으로 형성된 해역에서 자라나기에 이물질 부착이 없고 더욱 깨끗하다.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구정이 끝날 무렵까지 채취하는데, 완도군 수산경영과에 따르면 지난 12월 말까지 완도군에서 총 120톤의 매생이가 생산됐다.

배상윤 회장은 “이번 겨울에는 햇매생이 출하가 조금 늦어졌다. 작년 냉동매생이 재고량이 부족해 이번엔 채취 후 바로 냉동하는 어가도 많고, 어가마다 채취 시기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며 “수확량이 많지는 않지만 비교적 높은 가격으로 거래하고 있다”고 전했다.

완도 고금면 매생이 단지
완도 고금면 매생이 단지

간조 시간에 맞춰 매생이 채취

보통 매생이 채취 어민들의 일과는 오전 6시가 넘으면서 시작된다. 해가 뜨기 전 간조 시간에 맞춰 매생이를 채취하고 오후에는 채취한 매생이를 포장하는 작업까지 한다.

찬 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매생이 양식장은 갯벌에 박은 대나무 장대로 빽빽했다.

우리가 탄 배를 모는 사람은 정선동 선장이었다. 그는 노란 양식장 가득 빽빽하게 꽂아둔 대나무 말뚝에 매달린 노란 리본을 가리켰다. 그렇게 원색의 천조각으로 어가마다 각자의 구역을 표시해둔 것이다. 대명수산의 경우 6ha정도의 양식장에서 하루 2톤에서 5톤 가량의 매생이를 수확한다. 매생이 채취는 전날 주문량에 맞춰 유동적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결국 매생이가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평균적으로는 비슷한 양을 수확하게 된다고.

그는 설명을 하면서도 대나무 말뚝 사이로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이어 첫 번째 말뚝을 잡고 갈고리가 달린 긴 막대로 말뚝과 말뚝 사이에 묶여 물 속에 잠겨있던 대나무 발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태국에서 온 두 선원이 재빨리 대나무 발을 잡아 배 위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짙은 초록의 명주실같은 매생이를 몸에 두른 대나무 발이 바닷물을 튀기며 배 위에 차르르 올라앉았다. 4m쯤 되는 대나무 발은 10개를 묶어 ‘한 때’라고 부른다. 배는 한 번 나오면 서른개의 발, 그러니까 ‘세 때’를 수거해서 돌아간다. 정 선장이 “한 번에 너무 욕심을 부리면 파도를 만났을 때 배가 가라앉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겨울 이른 아침에 차가운 바다에서 매생이가 잔뜩 붙은 발을 건져올리는 일인데 손이 시렵지 않을리 없다. 그래서 선원들은 보온통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배를 탄다. 발을 두어 개 걷어 올리고 차갑게 언 손을 뜨거운 물에 담그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바다에서 돌아오자 굴 반 국물 반의 따뜻한 떡국과 햇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떡국과 라면 등을 선택해 아침을 먹는다. 6~7시경 하루를 시작하고 9시 아침, 12시 점심 식사, 그리고 15시에 휴식을 취하고 17~18시경 작업을 마무리 하는 것이 이곳의 시간표다.

 

까탈스러운 매생이 기르기

매생이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 말경까지 자란다. 10월에 매생이 포자를 붙인 대나무 발을 바다에 걸고, 가장 추운 1월부터 수확을 시작한다. 지주식 김 양식법과 비슷하지만 김보다 생육 조건이 까다롭다. 처음에는 포자 붙은 발을 수면 살짝 위로 걸어준다. 그리고 단계별로 조금씩 내려주는데, 수심 조정은 매우 중요하다. 수심이 얕은 순대로 매생이, 파래, 김이 자라기 때문에 수심이 조금만 깊어져도 김이나 파래가 섞여 버리고, 그런 경우 상품 가치가 전혀 없다.

“매생이는 실보다 여리고 가는 모양처럼 아주 예민하다. 바다가 조금이라도 오염되면 바로 녹아버리고 수심이 너무 얕아도 햇빛에 녹기 때문에 항상 적당하게 비슷한 환경을 유지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배상윤 회장의 설명에, “오리도 조심해야 한다. 매생이가 수면과 가까이에 있으면 오리들이 몰려다니며 매생이를 모두 뜯어먹는다. 그래서 양식장 가운에 막사를 지어놓고 밤새 자며 오리를 쫒아내기도 한다”고 정 선장이 덧붙인다.

2월말까지 조심히 관리한 매생이를 수확한 뒤에는 발을 수리하는 기간이 찾아온다. 건져올린 발은 보통 여기저기 부러지고 줄이 풀려있기 마련이다. 작업선을 점점하고, 굴유생을 붙이는 일도 이때 진행된다.

1. 선원들이 매생이가 붙은 대나무 발을 배위로 끌어올린다. 2. 매생이 채취 작업을 마친 작업선이 부두로 돌아오고 있다. 3. 채취한 매생이는 이렇게 크레인으로 옮긴다.4. 대나무 발에서 매생이를 훑어내는 훑기 작업. 5. 세척을 마친 매생이는 동그랗게 재기로 만든다. 6. 재기 작업을 마친 매생이. 이 박스는 근처의 시장으로 간다.
1. 선원들이 매생이가 붙은 대나무 발을 배위로 끌어올린다. 2. 매생이 채취 작업을 마친 작업선이 부두로 돌아오고 있다. 3. 채취한 매생이는 이렇게 크레인으로 옮긴다.4. 대나무 발에서 매생이를 훑어내는 훑기 작업. 5. 세척을 마친 매생이는 동그랗게 재기로 만든다. 6. 재기 작업을 마친 매생이. 이 박스는 근처의 시장으로 간다.

밥상에 오를 때까지

작업배에 실린 세 때의 매생이는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나란히 늘어선 비닐하우스 작업장 안으로 가져간다. 이때부터는 작업장에 준비된 긴 탁자 위에 발을 하나하나 길게 펼쳐놓고 매생이를 ‘훑는 작업’을 시작한다. 몇 명의 직원들이 탁자 양쪽에 나눠 서서 작업을 시작한다. 두 명이 발의 양쪽에 붙은 매생이를 장갑 낀 손으로 훑어내 통에 담고 발을 탁자 뒤쪽으로 밀어내면, 다음 직원이 발의 중간에 붙어있던 매생이를 훑어 모아 칼로 잘라낸다. 그리고 마지막 직원은 대나무 발에 남은 마지막 매생이 조각을 모아내고, 초록빛 매생이 옷을 벗은 발을 둘둘 말아 차에 싣는다.

통에 담긴 매생이는 부두 옆에서 ‘세척 작업’을 거치고 실내 작업장으로 들어온다. 이제 ‘제기 작업’ 차례다. 깨끗한 물을 담은 대야를 사이에 두고 앉은 직원들이 매생이를 물에 담궈 엉킨 부분을 풀어내고 한움큼씩 집어내 결대로 뭉쳐낸다. 꼭 동그랗게 묶은 머리 모양 같은 이것을 재기라고 하는 데, 한 재기 당 250~400g 정도다.

이제 마지막 ‘포장 작업’이다. 재기들은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도매시장으로 가기도 하고, 작은 포장지에 담겨 온라인으로 주문한 소비자에게 가기도 한다. 내년 매생이 철이 오기 전 기간을 대비하기 위해 급랭실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재기, 포장 작업을 지켜보다 작업장 밖으로 나오자 어느새 태양이 꽤 높이 떠 있었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다 위에 그날의 마지막 매생이 작업선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오리 몇 마리가 매생이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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