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는 미덕
박수칠 때 떠나는 미덕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02.0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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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 기자
박종면 기자

[현대해양] 모 정부 부처 고위 공무원이 연초에 공로연수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를 두고 말이 많다. 당사자는 정년을 앞두고 절차에 따라 공로연수 들어가는 게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다. 굳이 따지면 문제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배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2급까지 올라간 사람이 정년을 꽉 채우고 나가는 경우가 어딨냐”, “전 부처를 통틀어 고공단이 정년까지 채우는 예는 처음 봤다”고 앞다퉈 한 마디씩 한다. 사실 공로연수에 들어간 고위직 공무원은 몇 년 전부터 명예퇴직 압박을 받았다. 자리를 만들어 줄 테니 조금 일찍 나가주면 좋겠다. 그러면 후배들도 승진의 기회가 생기고 선배도 새 인생을 조금 일찍 시작하되 정년 언저리까지 일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논리로 말이다.

그런데 그 고위공무원은 제안을 거부하면서 더 이상 승진의 기회를 잃고 지방 소속기관으로 인사 조치된 뒤 끝내 승진도 복귀도 하지 못했다.

남은 후배들은 이 상황을 보며 “결국 ‘가늘고 길게’ 근속기간을 다 채우고 나갔다”며 뒷담화를 했다. 그러면서 “저렇게 꽉 채우고 나가면 근무 중에도 환영받지 못하고 나가서도 누가 아는 척을 하고 경사든 조사든 챙겨주겠냐”고 한 마디씩 한다. 고위 공무원이 근무연한을 채우고 퇴임하는 것을 흠이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인심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달 20일 제3차 정부 개각이 발표됐다. 이날 모 부처 국장 전화기가 종일 뜨끈뜨끈 달아올랐다. “장관이 안 바뀌는거냐”부터 “왜 안 바뀌느냐”까지, “언제 또 개각이 있을 것 같으냐” 등 기자들의 문의전화가 이어졌다.

앞서 “차기 장관에 누가 하마평에 올랐다”, “누구랑 누구를 두고 막판 조율중이다”, “마지막 인사검증 중에 있다”에서부터 심지어 노골적으로 “모 부처 장관은 바뀐다”, “누구로 낙점됐다”는 식의 보도까지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기자들의 예측기사는 대부분 예상을 빗나갔던 것이다.

실제로 모 부처 장관은 연초 인사철임에도 이임 예정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고 나가는 건 도리가 아니라며 인사를 미루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교육 갈 사람, 다시 복귀해야 할 사람, 파견 연장여부가 결정되어야 할 사람, 전보 이동해야 할 사람 등이 이러지도 저러지 못하고 청와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개각에서 유임되고 안 되고는 중요하지 않다. 봉직 기간 동안 얼마나 합리적인 정책과 대안으로 부처와 업계를 잘 리드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떠날 때 박수 받으며 떠나는 사람이 가장 일을 잘 한 것으로 평가될 것이다. 언제 나가더라도 당당하고, 그리고 조금 일찍 나가더라도 떠날 때를 알고 박수 받으며 떠나는 것이 이상적인 이임 형태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가늘고 길게’가 미덕이 아니라 박수칠 때 떠나는 미덕이 참 미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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