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E 표준실험실’은 검·방역 기관에 둬야
‘OIE 표준실험실’은 검·방역 기관에 둬야
  • 박신철 수협 조합감사위원장(전 수품원 원장)
  • 승인 2021.02.06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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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생물 검·방역 업무 통합을 보며
박신철 수협 조합감사위원장(전 수품원 원장)
박신철 수협 조합감사위원장(전 수품원 원장)

[현대해양] 올 3월부터 수산물 검역업무와 방역업무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수품원)으로 통합된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검역, 방역 업무의 통합은 양식어민들이나 국가적 이익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통합의 목적은 양식장의 질병관리와 수입 검역 업무의 유기적인 협력체계 구축으로 양식어민들의 질병피해를 예방하거나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이다.

검·방역 통합추진 이전에 여러 사람들의 시도와 노력이 있었다. 그동안 검·방역 업무 분리에 따른 어민들의 피해를 보면서도 조직 이기주의 때문에 상당기간 방치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수산물 방역업무를 담당했던 과거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 원장들이 정책 부처의 차관으로 자리 이동함에 따라 많은 실무자들이 업무 분리에 따른 폐해를 알면서도 말하지 못했고, 그러는 사이 그 폐해는 순전히 양식어민들의 몫이 되었다. 과거 4~5년 사이에 일부 소신 있는 사람들이 차관의 방관이나 억압에도 공론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업무가 OIE 표준실험실 지위 획득 건이다. OIE 표준실험실은 OIE, 즉 세계동물보건기구가 동물 질병의 국가간 전염을 방지할 목적으로 세계 최고의 전문가를 보유한 기관을 지정해 과학적 기술적으로 지원하고 해당 질병을 확정, 진단케 한 국제공인 실험실(RL)이자 각 국의 진단능력 테스트 등을 담당하는 곳이다.

OIE 표준실험실은 검·방역 업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곳이다. 국제적인 질병이 발병하면 이 실험실에서 질병을 조사하고 확정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무슨 질병인지 알아야 그에 따른 방역 조치가 따라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광어와 연어의 경우 VHS(바이러스성 출혈성 패혈증)라는 질병이 치명적인데, 국내에서는 이것을 인정하길 꺼려 생긴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OIE 표준실험실, 검·방역 통합에 기여

검·방역업무 분리에 따른 피해사례는 여럿 있으나 한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멍게는 2000년대 초반까지는 남해 양식어민들의 중요한 소득품목이었다. 그러다 어느 해부터 시름시름 물러지는 병이 들기 시작해 그 피해가 400억 원 이상 발생했다. 수과원 연구진이 상당 기간 원인을 조사했으나 결론은 ‘원인미상’이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일부 연구진에 의해 멍게 물렁병의 원인이 밝혀졌다. 그 동안의 피해는 고스란히 어민들 몫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는 방어. 국내 방어업계에서는 일본 양식 방어 수입 금지를 강력하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검역당국에서는 수입금지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국제검역규정상 동등성의 원리를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방어에 대한 질병관리 수준이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본 방어에 질병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내 양식방어에 대한 방역 관리가 완전하지 못해 동일 질병이 상존하고 있다면 수입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검·방역 분리에 따른 피해다.

OIE 표준실험실 국내 유치가 수산물 검역과 방역 업무가 통합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럼, 정부의 통합 방향을 알아보자. 1단계로 수과원은 질병연구, 수품원은 행정업무 체계로 개편한다. 2단계는 질병연구와 행정기능을 2023년 이후 통합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수품원에 있던 OIE 표준실험실이 수과원으로 이관된다. 또 수과원의 방역인력과 수산물 안전관리과 인원은 수품원으로 이관되고, 시험분석팀이 신설된다. 이런 경우, 질병에 대한 방역, 검역업무의 통합으로 행정 효율성이 향상되고 질병에 대한 효율적인 안전관리가 가능하고 연구역량 또한 강화된다.

 

OIE 표준실험실, 수품원에 남아야

조직의 기능조정은 그 결과가 당초의 목적을 실질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지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일감으로 질병연구가 수과원으로 통합한다는 데 문제가 있어 보인다. 수품원은 집행기관이고 수과원은 연구기관이다. 애초에 수품원의 실험실은 검역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분석 진단 기능이므로 순수 연구 업무로 보기 어렵고, 수과원은 순수에서 실용연구까지 담당하는 연구기관이므로 본래 연구기관에다 질병연구를 통합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합리적이지 못하다. 종합연구기관인 수과원은 질병 분야 연구가 부족하다면 스스로 나서서 해야 함은 당연하다.

연구기능 통합으로 기존 수품원의 OIE 표준실험실을 순수연구기관으로 이전시킨다는 것은 당초 통합의 목적인 검·방역 통합으로 양식어민 질병피해 예방 및 경감과도 동떨어진다. 왜냐하면 OIE 표준실험실은 오직 효율적인 검·방역 업무를 위해 최소한 특화된 질병진단 및 분석 업무인데 이를 검·방역 기관과 분리하고 순수연구기관에 이전시킨다는 것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경우이다.

또한 검·방역 기관과 OIE 표준실험실이 분리된 경우는 국제적으로 사례가 없고, 표준실험실을 인정해준 국제기구 OIE와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기존의 기형적인 검·방역 업무의 기능조정은 국익 차원에서 진일보한 것임은 분명해 보이나, 세부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다.

통합의 근본 목적인 질병 피해 예방과 어업인 피해 경감을 위해서 검·방역 업무를 위해 필수적인 OIE 표준실험실을 당초대로 검·방역 기관에 존치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근시안적인 조직이기주의 때문에 국민의 편익을 도외시하는 정책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대안으로 2단계 질병연구와 행정기능 통합을 ‘2023년 이후’로 미룰 것이 아니라 대폭 앞당기는 조치가 양식어민들의 편익을 도모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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