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여행 30] 담보물을 제3자에게 넘기면 배임죄가 될까?
[해양수산법 판례여행 30] 담보물을 제3자에게 넘기면 배임죄가 될까?
  • 김택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승인 2021.01.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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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선 이중양도담보 사건
김택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서른 번째 여행의 시작>

우리나라 법령이 5,500건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법령의 발달에 따라 중요한 판결들도 쏟아지고 있어 저희 같은 법조인들조차 아차 하면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이 전원합의체로 내놓은 판결들은 해당 대법원의 구성이 변하지 않는 이상 수년간 유지될 또 하나의 법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면은 바로 이렇게 정립된 ‘하나의 법리’가 전체 유사한 사안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사건에서 A는 2002. 11. 21. B 어선(20t 이하의 동력 어선이어서 선박등기법의 적용을 받지 않아 동산에 준하여 취급됩니다)을 피해자 C에게 점유개정에 의한 방식으로 양도담보로 제공하였습니다(점유개정 방식의 양도담보란 물건에 담보를 설정하기 위해 소유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하는 ‘양도담보’를 하면서 물건의 점유를 여전히 담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점유개정’ 방식을 이용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A가 B 어선을 C에게 매매하는 형식으로 담보로 제공하되(양도담보), 여전히 A가 B 어선을 점유(점유개정)해서 사용하게 됩니다).

이후 A는 2003. 8. 13. B 어선을 동생인 D에게 매도하는 매도증서를 작성하고 D를 어선원부상 소유자로 변경 등록하면서도 A가 계속 B 어선을 점유하여 사용하였습니다(점유개정). 그리고 A는 배임죄로 기소되었습니다.

1, 2심은 A와 D가 담보대출기간의 연장 등을 이유로 위와 같이 공부상 명의만 변경하였을 뿐 아무런 실질적 권리이전은 없는 사실을 인정한 다음, 어선원부 등은 행정상 편의를 위하여 소유자를 등록, 변경하는 공부에 불과할 뿐 사법상 권리변동과는 무관하므로 어선원부상의 소유자 명의 변경만으로는 양도담보권자인 C에게 사실상 담보물의 발견을 어렵게 하여 어떠한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킬 위험이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A가 진짜 B의 발견을 어렵게 하거나 다른 제3자에게 B의 소유권을 완전히 넘겼다면 배임죄가 성립할까요?

 

<쟁점>

점유개정의 방법에 의한 동산의 이중 양도담보제공 행위가 배임죄에 해당할까요?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07. 2. 22. 선고 2006도6686 판결>

동산을 양도담보로 제공하고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점유하고 있다가 이를 다시 제3자에게 역시 점유개정의 방법으로 양도하는 경우에는 제3자가 그 동산을 선의취득할 수가 없다. 따라서 최초의 양도담보권자에게 어떠한 재산상 손해의 위험이 발생한다고 할 수 없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동산으로 취급되는 B 어선에 있어서 어선원부 등은 행정상 편의를 위하여 소유자를 등록하는 공부에 불과하고 그로써 사법상 권리변동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판결의 의의>

이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사실관계는 A가 C에게 양도담보한 B 어선에 대해 D에게 또다시 양도담보를 하였는데, D에게 B 어선의 점유를 넘겨주지 않고 여전히 A 자신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판례는 이 경우 A가 점유를 가지고 있으므로 C에게 B를 넘겨줄 수 있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만약 A가 D에게 B 어선을 진짜로 넘겨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 C는 B 어선을 돌려받을 방법이 전혀 없게 됩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20. 2. 20. 선고 2019도9756 전원합의체 판결>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사무의 주체인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때 성립하는 것이므로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타인의 재산관리에 관한 사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타인을 위하여 대행하는 경우와 같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

이익대립관계에 있는 통상의 계약관계에서 채무자의 성실한 급부이행에 의해 상대방이 계약상 권리의 만족 내지 채권의 실현이라는 이익을 얻게 되는 관계에 있다거나, 계약을 이행함에 있어 상대방을 보호하거나 배려할 부수적인 의무가 있다는 것만으로는 채무자를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고, 위임 등과 같이 계약의 전형적·본질적인 급부의 내용이 상대방의 재산상 사무를 일정한 권한을 가지고 맡아 처리하는 경우에 해당하여야 한다.

따라서 채무자를 배임죄의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그가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는 등으로 담보가치를 감소 또는 상실시켜 채권자의 담보권 실행이나 이를 통한 채권실현에 위험을 초래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없다.

 

<서른 번째 여행을 마치며>

기존 판례는 A가 D에게 B 어선의 점유까지 넘겨주면서(점유개정이 아닌 경우) 이중 양도담보를 하는 경우 배임죄의 유죄를 인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11. 12. 22. 선고 2010도7923 판결등).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양도담보를 설정해 준 A가 C를 위해 B 어선을 보관할 의무는 있지만, 이 정도를 가지고 C를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결국 A가 D에게 B 어선의 점유까지 넘겨주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A에게 배임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법원이 일련의 형사 판결을 통해 사람간의 갈등에 대해 탈형법을 선언하는 듯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은 민사적으로 해결할 부분들은 민사 영역에 머물고, 굳이 형사적으로 문제삼아 서로 고소하면서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려고 하지 말라는 취지로도 보입니다.

기존 대법원 판결이 있더라도 민사적 다툼의 성격이 강한 부분들은 언제든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점,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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