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㉟ 귤 농사 대신 생태 농사 짓는 마을
김준의 어촌정담 ㉟ 귤 농사 대신 생태 농사 짓는 마을
  • 김준 박사
  • 승인 2021.01.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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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남원읍 하례리
하효항
하효항

[현대해양] 제주 감귤빵 체험을 마치고 내창 트래킹에 나섰다. 여기는 평소에도 미끄러워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고 조심조심 트래킹을 해야 한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소식에 감귤빵을 만들어 오븐에 넣고 트래킹에 나섰다. 하례리 꼭 가고 싶었던 것도 15년 전 효돈천 트래킹 기억 때문이었다. 인간사도 걸림돌이 삶의 디딤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을사도 다르지 않다. 내창이 그랬다. 하례리 앞에 흐르는 효돈천을 주민들은 내창이라 부른다. 일찍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마을개발에 걸림돌이었다.

하례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에 속하는 마을로 주민들은 ‘알예촌’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1416년(태종16) 정의현에 속했다. 2020년 1월말 기준 하례1리(태성동, 장성동, 망장포)는 488가구에 1,090명, 하례2리(학림동)는 238가구에 559명이 살고 있다. 제주마을치곤 크지 않다. 효돈의 옛이름이 쉐둔이었다. 한자어로 우둔이라 하다가 18세기 중반에 효돈으로 바뀌었다.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곳으로 감귤의 맛이 좋아 조선시대 진상을 했다. 한라산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생태계를 갖춘 마을로 숲, 오름, 하천, 마을, 바다 등 제주 다움을 모두 살필 수 있는 마을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주도생물권보전지역 중 효돈천은 한라산국립공원 등과 함께 핵심구역이다.

 

생태관광, 꺼내지도 마라

지금은 주민들에게 생태관광이 낯설지 않지만 얼마 전까지 말도 꺼낼 수 없었다. 효돈천이 일찍 천연보호구역으로 묶여 반듯한 도로도 내지 못하고 개발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귤 값은 떨어지고, 일할 사람은 없는데 누가 나서서 마을을 찾아온 사람을 안내하겠는가. 게다가 마을도 한 마을은 감귤 밭으로 먹고 살고, 또 한 마을은 ‘바당(마을어장)’으로 먹고 산다. 두 마을이 함께 의견을 모은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주민들이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달갑지도 않았다. 그러니 생태관광을 해보자는 말이 귀에 들어오기는 했겠는가.

지금은 어떤가. 사무장 현씨가 그 사이 변한 마을의 분위기를 보여주겠다며 70대 중반 할망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과장한다면, 요즘 인기 있는 이날치의 비디오 못지않다. 마을주민 환경교사 10여 명이 초등학교 학교에서 현장교사로 아이들에게 강의를 한다. 또 견학을 온 여행객에게 마을을 안내하는 마을해설사, 내창 트레킹을 신청한 여행객에게는 안전요원과 훈련을 받은 마을주민이 가이드로 나선다. 여기까지 오는데 어려움은 없었겠는가. 15년 전, 효돈천 트래킹을 할 때만해도 이렇게 마을 체험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을지 생각도 못했다. 더구나 마을주민이 안내하고 해설을 할 것이라 생각도 못했다.

효돈천은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이며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이다.
효돈천은 백록담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이어지는 하천이며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구역이다.
15년 전에 걸었던 효돈천
15년 전에 걸었던 효돈천

 

내창에 깃들다

하례리 생태관광 체험프로그램 중 감귤점빵체험이나 카페는 하례리 생태관광 파트너이다. 이런 파트너들은 수익금의 일부가 마을 생태관광기금으로 적립된다. 이 외에 효돈천 트래킹과 고살리숲길 탐방프로그램이 있다. 효돈천과 고살리숲은 나란히 이어진다. 효돈천은 돈내코를 지나 온 영천과 합해져 개소, 남개소, 긴소를 지나 쇠소깍에서 바다와 만난다. 이렇게 한라산에서 바다로 흐르는 하천을 하례리에서는 ‘내창’이라 한다. 내창은 하례리의 우물터요 빨래터요 목욕탕이고 놀이터였다. 평소에는 물이 많지 않지만 비가 오면 갑자기 폭포수처럼 물이 쏟아진다. 이를 주민들은 ‘내친다’라고 한다. 빨래를 하거나 물놀이를 하다가 내친다는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 올라와야 한다.

마을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내창은 하례리의 보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새벽이면 내창에서 물을 길러다 밥을 했고, 일을 마치고 내창에서 목욕을 했다. 마소에게 물을 먹일 때도 내창으로 내려갔고, 땔감을 구할 때도 내창을 찾았다. 열매나 산나물 등 먹을 것을 얻기 위해서도 내창과 고살리숲을 찾았다. 고살리숲은 내창과 나란히 있는 곶자왈이자 숲길이다. 이곳에는 무엽란, 매화노루발, 솔잎란, 죽절초 등 귀한 식물들이 자란다.

상수도가 놓이면서 잊고 있었던 내창은 요즘 삼촌들의 삶과 체험이 어우러져 생태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효돈천이 끝나는 곳에 쇠소깍이 있다. 효돈의 옛날 지명인 쇠둔의 ‘쇠’와 웅덩이를 뜻하는 ‘소’, 그리고 강 하구를 뜻하는 ‘깍’이 합쳐진 지명이다. 하효리 마을 사람들이 떼배를 이용할 때 포구였다. 쇠소깍은 기암괴석, 송림, 검은모래(모살) 등 하천지형이 아름다워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쇠소깍 나무보트 체험
쇠소깍 나무보트 체험

 

내창에 있는 소 중에서 가장 크고 깊은 남내소
내창에 있는 소 중에서 가장 크고 깊은 남내소

감귤마을에서 생태관광마을로

하례리는 따뜻해 오래 전부터 감귤이 재배되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감귤은 진상되어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제주에서 감귤이 올라오면 황감제라는 특별시험을 치렀다. 황감제는 성균관과 사학에 머무는 유생들에게 감귤을 나누어 주고 시제를 내려 시험을 치르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성균관과 사학 유생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1653년) 과원조에는 정의현 지역에 ‘금물’이라는 곳이 등장한다. 이는 임금님께 진상할 과일을 재배하는 곳으로 유자 55그루, 산귤 2그루 외에 각종 과수, 치차, 옻나무, 뽕나무, 동백나무 등이 있었다. 하례리는 금물관원을 관리하는 감귤원 감독관 조세진이 입향해 설촌했다고 한다. 제주감귤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하례1리 중산간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하례리가 가장 번성했던 때는 감귤값이 좋았던 1970년대였다. 그때 감귤 한 관(3.75㎏) 값이 지금 감귤 값과 비슷했다. 반면에 감귤을 따는 사람의 일당은 6~7천원에서 6~7만원으로 10배나 올랐다. 당시 감귤이 얼마나 큰 소득이었지 알 수 있다. 하례리 마을소득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미깡농사’ 농사만으로도 부러울 게 없는 마을이었다. 당시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지금은 제주도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감귤농사를 짓고 있다. 이제 마을의 미래를 감귤밭에만 맡길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마을점빵에서 감귤빵을 만들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물애기 삼촌을 찾다

하례리는 마을사업(생태관광)을 하기 위해 먼저 한 일이 자원조사였다. 하례리 출신 대학생들과 젊은이로 구성된 조사단이 삼촌들을 찾아다니며 기록했다. 삼촌들은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가 이야기를 듣겠다고 찾아가면 모두 반겼다. 또 내창과 고살리숲과 바닷가에 어떤 생물이 사는지 어떤 자원이 있는지 조사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역시 마을주민들이 나섰다.

내창 트레킹으로 가는 길의 안내판이 없다. 마을주민들이 식수를 찾아서, 빨래를 하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오르내렸던 길이다. 주민들이 모두 아는 길이다. 안내판을 만들어 놓는 순간 그곳은 쓰레기장이 되고 말기 때문에 만들지 않는다고 했다. 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가면 되기 때문이다. 공모사업을 준비할 때 원칙이 있다. 마을주민이 감당할 수 있는 사업인가 아닌가를 먼저 판단한다. 감귤점빵협동조합, 과즙사업, 생태관광, 마을카페 등도 이런 논의과정에서 결정된 것이다. 하례리가 꿈꾸는 것은 삼촌들이 감귤밭으로 지켜온 마을을 생태관광으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감귤밭을 가꾸듯 내창과 고살리숲과 바다를 가꿀 계획이다. 마을발전의 걸림돌이라 여겼던 생물권보전지역을 마을자원으로 적극 활용하는 생태관광에 주목하는 이유다.

이제 하례리 주민들은 마을재산이 감귤 밭이 아니라 숲과 ‘내창’(효돈천)과 바다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감귤 밭이 아니라 생태자원이라는 것도 느끼고 있다. 15년 전과 달리 마을과 숲과 내창을 걸을 때 마을주민의 안내를 받고, 마을주민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제 ‘주민이 주인인 생태관광마을’을 꿈을 꾼다. 

주민이 안내하는 내창 트래킹
주민이 안내하는 내창 트래킹
주민들이 운영하는 내창살롱
주민들이 운영하는 내창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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