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권현망어선 멸치잡이 현장 - 은빛 멸치로 만선 이루리라
기선권현망어선 멸치잡이 현장 - 은빛 멸치로 만선 이루리라
  • 박종면 기자
  • 승인 2021.01.11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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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생산 50% 차지 ‘한려수어’ 탄생
멸치 양망. 사진=박종면 기자

[현대해양] 새벽 4시.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항.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12월 겨울 어항에서 배가 출항 준비를 한다. 통영 선적 98평진호 기선권현망어업 가공·운반선이다. 이 배와 한 선단을 이루는 어군탐지선(어탐선)과 본선(어망선)은 조금 앞서 어군(魚群)을 찾아 떠났다.

기선권현망어업은 대형 그물을 두 척의 배가 양쪽에서 끌면서 멸치를 자루그물로 유도한 뒤 어획, 양망하는 어법이다. 따라서 어군을 탐지하기 위한 어군탐지선 1척이 있으며, 그물을 끄는 어망선(그물배) 2척이 있다. 그리고 잡은 멸치를 삶아 건조장으로 실어 나를 가공·운반선 등 총 4척으로 한 선단을 이룬다. 선원은 25명 내외. 가공·운반선에 가장 많은 14명 안팎으로 승선하고, 어탐선 3명, 그리고 본선 에는 10여 명 정도 승선한다.

오늘 98평진호는 남해군 독일마을이 바라다 보이는 남해군 삼동면 앞바다로 향하고 있다. 통영 선적 배가 남해까지 가는 이유는 며칠 전까지 욕지도 앞바다에서 조업했는데, 어장이 기대에 못 미쳐 이 곳까지 향하게 됐다고 한다.

 

4척으로 1선단 이뤄

기선권현망 모식도
기선권현망어업 모식도

1시간 이상 달렸지만 여전히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상태에서 투망 후 그물을 끌던 본선 2척이 나란히 현측(舷側)을 맞대고 붙인 채 조명을 밝히고 있다. 본선 옆으로 뒤를 따라 달려온 가공·운반선이 붙고 어로장이 승선한 어군탐지선이 운반선 건너편 본선 옆으로 멈춰서며 어로장이 무전기로 “양망~”을 외친다. 2척의 배에 나눠 탄 선원들이 선미쪽으로 한 줄로 선다. 그리고 네트드럼이 돌아가며 그물이 올라온다.

권현망 그물은 크게 날개그물 부분과 자루그물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먼저 날개그물 부분이 올라오는데 날개그물은 400여 미터의 앞날개인 오비기(おびき)와 30여 미터의 안날개인 수비로 돼 있다. 오비기의 그물코는 무려 180cm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고래처럼 큰 어종도 걸려들지 않는다.

오비기의 역할은 어군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멸치 무리는 그물이 다가오면 혼란에 빠져 오비기를 거쳐 수비망에 이르고 이어 자루그물에까지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수비의 그물코는 60cm. 그물코가 넓은 만큼 혼획의 염려가 거의 없다고 한다. 반면에 자루그물은 속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촘촘한 세망이다.

 

자루그물에서 펄떡이는 멸치

두 척의 그물배에 끌려 올라오던 날개그물에 이어 부표가 보이면 자루그물 부분이 올라온다는 신호다. 양쪽 배로 끌어올리던 그물을 어느 순간부터 파워블럭(기중기)이 설치된, 어탐선 옆 본선 1척에서만 끌어올린다. 선원들이 온몸으로 수비를 감싸 안고 사이드 드럼으로 모은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양망이라 할 수 있다.

드디어 자루그물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파워블럭으로 자루그물을 양망하기 시작하면 선원들이 더욱 바빠진다. 그물 안쪽에 달라붙어있는 멸치를 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호스를 이용해 물을 뿌리고 장대로 그물을 찌르는 작업을 계속 이어 한다. 그물은 한참 올라왔다. 그물의 총길이는 650~700m에 이른다.

이렇게 자루그물에 걸려든 멸치를 한쪽으로 모으는 사이 먼저 올려진 자루그물은 갑판 후미에 쌓인다. 그리고 자루그물 끝부분이 양망되면 양쪽 그물배 사이 현측으로 그물을 옮겨와 팔딱팔딱 뛰는 멸치를 피시 펌프(Fish Pump)로 빨아들인다.

1. 본선 2척이 그물을 끄는 작업이 끝나면 선원들이 선미에서 양망을 준비한다. 2. 자루그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물을 뿌리고 장대로 찔러 그물에 붙은 멸치를 털어낸다. 3. 자루그물 끝부분이 양망되면 양쪽 그물배 사이 현측으로 그물을 옮겨와 피시 펌프를 이용해 멸치를 가공·운반선으로 보내는 작업이 이뤄진다. 4. 가공선 선원이 어창에서 삽 모양의 뜰채로 멸치를 퍼올려 플라스틱 발(판)에 담는다.
1. 본선 2척이 그물을 끄는 작업이 끝나면 선원들이 선미에서 양망을 준비한다. 2. 자루그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물을 뿌리고 장대로 찔러 그물에 붙은 멸치를 털어낸다. 3. 자루그물 끝부분이 양망되면 양쪽 그물배 사이 현측으로 그물을 옮겨와 피시 펌프를 이용해 멸치를 가공·운반선으로 보내는 작업이 이뤄진다. 4. 가공선 선원이 어창에서 삽 모양의 뜰채로 멸치를 퍼올려 플라스틱 발(판)에 담는다. 사진=박종면 기자

어획 즉시 삶아 높은 품질

피시 펌프로 흡입된 멸치는 바로 옆 가공·운반선으로 보내진다. 멸치가 가공·운반선 롤러에 옮겨지면 여기서 혼획물 선별이 1차로 이뤄진다. 덩치가 작은 멸치는 롤러 아래 어창으로 떨어지고 덩치가 큰 혼획물은 롤러에 남는다. 가공운반선 어창 바닥엔 은빛 멸치가 한 가득이다.

양망 장면을 주시하던 가공선 선원들이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가공선 선원 한 명이 어창에서 삽 모양의 뜰채로 연신 멸치를 퍼올려 플라스틱 발(판)에 담는다. 그러면 다른 선원 2명이 멸치를 고르게 편 뒤 다른 판으로 위를 덮어 팔팔 끓는 소금물이 담긴 자숙기로 보낸다. 자숙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다.

갓 잡은 멸치를 바로 삶는 이유는 물 밖으로 나오면 이내 죽는 성질 급한 멸치의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언제 삶고 건조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지고 가격차이가 많이 난다고. 바로 삶고 육지로 옮겨 건조해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발에 담겨 뜨거운 천일염분에 삶긴 멸치는 선원들이 레일을 따라 선미쪽으로 옮긴 뒤 가공선 지붕 아래에 차곡차곡 적재한다. 그리고 이것을 육상 건조장으로 옮겨 냉풍기로 말린 뒤 멸치권현망수협 멸치 브랜드 ‘한려수어’가 인쇄된 포장상자에 담아 다음날 아침 경매에 상장하는 것이다. 한 발에 담긴 멸치량은 약 2kg(건멸치 상태로). 위판 박스 한 상자가 1.5㎏이니 한 발이 한 상자 좀 넘는다고 보면 된다.

강흥순 98평진호 선장은 “하루 1억 원의 매출을 올려야 타산이 맞다”며 “1.5kg들이 건멸치 1박스에 2만원~3만원 꼴로 낙찰되니 하루 3,000발 이상 잡아야 타산이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류비, 인건비, 보험료, 회사 운영비 등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평진호가 생산한 건멸치는 보통 1일 3,500~4,000박스에 이른다고 한다.

 

1일 7~8회 이뤄지는 양망

멸치가 운반선으로 옮겨지기 무섭게 첫 조업을 마친 어탐선이 연기를 내뿜으며 이동한다. 새로운 어군을 찾아 두 번째 조업에 나서기 위해서다. 어군, 어장을 찾고 투망을 판단하는 것은 어로장의 몫이다. 어로장의 능력은 어장을 얼마 잘 찾고 얼마나 많은 양을 어획하는가로 결정된다. 이것이 곧 선사 이익이기 때문이다.

그물배에서는 그물을 다시 정리한다. 어탐선을 따라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어탐선 뒤를 본선 두 척이 따른다. 본선 두 척은 어탐선을 따라 나란히 함께 움직인다. 이선일체(二船一體)로 항해하는 것이다. 이런 어탐-투망-예망-양망-자숙이 보통 새벽부터 저녁까지 7~8회 반복된다고.

첫 조업에 따른 멸치삶기 작업이 마무리 되니 6시 30분. 가공운반선에선 어느새 조리장이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갈치 몇 덩어리에 호박을 둥둥 썰어 넣은 갈치국이다. 반찬으로 병어, 고등어 등의 생선구이도 보인다. 선상 식사가 특별할 것이 있겠냐마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노동한 뒤 먹는 맛은 늘 꿀맛이란다. 저 멀리 불그스럼한 태양빛이 부끄러운 듯 구름에 가려져 있다.

5. 멸치삶기 6. 삶은 멸치 적재하기7. 양망한 멸치가 가공·운반선으로 옮겨지면 어탐선은 다음 조업을 위해 이동한다.8. 본선을 따라 가는 가공·운반선 선장과 사무장
5. 멸치삶기 6. 삶은 멸치 적재하기 7. 양망한 멸치가 가공·운반선으로 옮겨지면 어탐선은 다음 조업을 위해 이동한다. 8. 본선을 따라 가는 가공·운반선 선장과 사무장. 사진=박종면 기자

당일 어황 따라 일희일비

식사가 끝난 뒤 가공·운반선은 또 항해를 시작한다. 앞서간 어탐선과 본선을 따라가야 한다. 이미 저 멀리 어탐선을 따라간 본선 2척이 어로장의 투망 지시에 따라 일제히 그물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간격을 넓히며 예망한다. 본선 2척이 펼치는 그물 간격은 500~1,000m 정도. 두 본선이 간격을 벌려 30여 분 예망한 뒤 다시 합쳐 양망을 하게 된다. 이날 남해에서 5회 양망 끝에 새 어군을 찾아 통영 욕지도로 다시 뱃머리를 돌렸다. 이날 바다 어황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통영 갈도를 지나며 장진경 사무장이 손가락을 뻗어 가리킨다. 저게 뭔줄 아느냐고 묻는다. “남동발전이 풍황계측기를 설치하다가 어민들 반발에 막혀 공사를 중단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장 사무장은 “풍력발전을 하면 주변은 음파로 인해 어장이 형성되지 않는다. 어민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데 뭐가 최소화냐. 평생 먹고 살게 해줄거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앞서 가던 어탐선에서 무전이 날아온다. 오늘 조업을 마치겠다고. 2시간 가까이 욕지도까지 달려왔지만 어황이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본선은 동호항으로 들어가 내일 출어를 준비하고 가공·운반선은 한산도에 있는 육상 건조장으로 들어가라고 전한다.

가공·운반선이 건조장으로 가는 길에 선원들 교대가 이뤄졌다. 운반선 1척이 건조장으로 향하면 대기하던 다른 1척의 운반선이 임무를 교대하는 것이다. 선장, 기관장, 조리장만 남고 나머지 선원들은 모두 다른 운반선으로 옮겨 가게 된다. 이들의 전승(轉乘) 과정을 사무장이 이끈다. 전승한 선원들이 손을 흔든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평소보다 일찍 조업이 끝났지만 강흥순 선장은 마음이 편치 않다. 강 선장이 키를 잡은 가공·운반선은 이미 건조장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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